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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정주영 명예회장 10주기 추모사진전 - 이것이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다

작성일2011.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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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늦은 저녁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직장인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까지 꽤 많은 사람이 사진전에 있었다. 어떤 관람객은 다소 근엄해 보이는 표정으로 사진 하나하나를 지그시 바라보며 사진을 느끼고 있었고, 어떤 관람객은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자서전 글귀를 사진으로 담아가기도 했다.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이 살아온 시대를 단지 교과서를 통해 글로만 배워왔던 사람들에게 사진전이 갖는 의미는 특별해 보였다.

 

 

 

지난 10일 개막하여 11일부터 21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개최되는 아산 정주영 10주기 추모사진전은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일생을 담은 130여 점의 사진을 전시한다.

 

 

 

6편의 테마로 구성된 이번 사진전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까지의 모습을 담은 아산의 젊은 시절▲자동차, 건설, 중공업 등 아산의 경제적 업적을 다룬 사업보국▲소탈하게 직원들을 아끼고 사랑한 모습을 담은 아산과 현대가족▲현재 각 분야에서 우뚝 선 현대의 모습과 아산의 흔적을 담은 아산의 꿈▲정치 외교 활동 및 각종 사회활동에 앞장선 아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대한민국을 위한 앞선 발걸음▲아산의 가족과 그의 사람냄새 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아산의 향기로 이루어졌다.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삶은 곧 한국 경제발전의 역사

 

1915 11월 출생하여 2001년 생을 마감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삶은 한국이 가장 역동적이었던 시절을 고스란히 담았다.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어린 시절 한국의 모습은 GDP를 측정한다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의 최빈국이었다. 하지만 그가 떠나고 불과 몇 년 뒤, 한국은 GDP 2만 달러의 시대를 열었고 국제 사회에서 갖는 위상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드높아졌다. 도대체 100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런 말도 안 되는것만 같은 역사에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은 민간 주축으로써 한국 경제성장을 주도하였다.

 

 

 

 

현장이 최우선, 근로자와 함께 동고동락하는 소탈한 삶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작업 현장에서 강인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직접 진두지휘 하는 모습, 나머지는 근로자들과 함께 격 없이 해맑게 웃는 모습이었다.

 

 

 

 

실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은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막노동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때문에 경영자가 되어서도 누구보다 현장 근로자의 마음을 잘 이해하고 또 그들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현장 근로자와 한 몸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사원들과 씨름하는 것을 즐긴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에게서 그 누가 대기업 회장님을 연상할 수 있을까. 오늘날처럼 기업경영에 대한 각종 이론이 만연하지도 않았던 당시, 그는 진작 사람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들과 진심으로 소통해왔던 것이다.

 

 

 

 

한번 시작하면 어떠한 시련도 극복해내고야 마는 불굴의 의지

 

 

 

오늘날 현대라는 국민, 그리고 글로벌 브랜드를 구축하기까지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에겐 수많은 시련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된다는 확신 90%되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 10%로 완벽한 100%를 채워 임하였다. 1%의 회의나 불안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05달러에 불과하던 1965,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은 14 7,900만원의 해외 초대형 프로젝트를 수주, 공사시작 30개월 만에 완공하여 세상을 발칵 뒤집은 적이 있다. 비록 이 공사에서 그는 엄청난 적자를 보았지만, 최신 장비사용법과 선진공법을 익혀 후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필요한 기술력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당장 눈 앞의 이익이 나지 않는 것에 대해 후회하거나 불안해하지 않았다. 보다 멀리 바라보며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묵묵히 임하여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사진전 입구에 들어서면 아래와 같은 문구가 있다.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이 기업을 세우고 꾸려온 시대는 오늘날의 환경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경영자로서 고민도 차원이 달랐다. 오늘날 경영자들이 기존에 존재하는 사업에 대해 진출 여부를 고민한다면, 당시 아산 정주영 명예회장은 아예 창조자체에 대한 고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 고민이란 할까 말까를 의미하지 않았다. ‘어떤 방법으로 하느냐에 대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가 가진 긍정적인 사고는 결국 현대의 성장과 더불어 한국 경제의 눈부신 성장을 이룩하였다. 그의 10주기를 추모하는 사진전에서 오늘날까지도 한국 사회 곳곳에 뿌리내린 그가 품은 열정의 향기를 한껏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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