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콥트, 10퍼센트가 지키는 이집트의 정체성

작성일2010.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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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콥트, 10퍼센트가 지키는 이집트의 정체성

 

무슬림이 주류를 이루는 이슬람 국가 이집트에서는 하루 다섯 번, 어디서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지하철역 안에서도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같은 시간 열 명에 한 명 정도, 히잡을 쓰지 않은 이집트 여성들 또한 거리를 활보한다. 이슬람의 기도시간에 연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 바로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에 이집트의 색채가 더해진 신앙을 가진 콥트인들이다. 

 

대표적인 콥트교회인 세인트조지교회

 

세인트조지교회 바로 옆에 위치한 세인트조지수도원

 

아랍어와 콥트어로 쓰인 문패

 

콥트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풍경

 

콥트박물관

 

왜 아랍어로는 미스르, 영어로는 이집트일까   
우리나라가 한글로는 ‘대한민국’, 영어로는 ‘코리아’로 불리는 것처럼 이집트도 국어인 아랍어로는 ‘미스르’, 영어로는 그와는 전혀 다른 ‘이집트’로 불린다. 이집트라는 국명에는 어떤 사연이 숨어있는 걸까
이집트라는 명칭이 이집트의 제 2의 종교인 콥트에서 유래되었음을 알고 있는 이들은, 심지어 이집트인들 중에도 그렇게 많지 않다. BC 7세기에 이집트에 이주한 그리스인들은 당시의 도읍인 멤피스를 아이깁토스(Aigyptos)라고 불렀다. 이 이름이 점차 전파되어 전체 이집트를 일컫는 말이 됐다. 오늘날 이집트(Egypt)라는 명칭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640년, 이집트를 정복한 아라비아인들이 그리스화된 이집트 지역에서 다시 이슬람화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토착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남아 있었다. 이들은 킵트(Qibt)라고 불렸는데 이 호칭은 후에 유럽을 거쳐  콥트(Copt)가 됐다.

 

콥트, 그 굴곡진 역사
이집트라는 국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콥트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콥트의 흥망성쇠에 이야기하자면 매우 긴 시간이 필요하지만 간단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콥트는 1세기 중엽 성 마가의 이집트 포교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BC 30년 무렵, 이집트 왕국이 멸망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 후, 이집트 지역에 있었던 고대 종교 중 하나인 오시리스, 이시스, 호루스의 3신 신앙은 그리스도교의 접근을 용이하게 해 주었다. 이윽고 콥트 교회는 독자적인 교의를 발전시키다가 451년 칼케돈공의회로부터 이단으로 결정되고 그 이후부터는 고립의 길을 걸었다. 이들은 외부로부터는 이단으로 취급되었지만 나일강 유역에서는 계속 세력을 넓혀, 6세기에는 이집트 남부지역이 세력권이 되었다.
이처럼 콥트는 1세기 중엽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갖고 있기 때문에 긴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유적들이 많다. 은둔수행을 행했던 수도원, 콥트교회의 건축양식, 그리고 각종 공예품 등은 과거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무엇보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콥트어다. 그리스 문자와 이집트 고유의 신관문자, 민중문자가 혼재되어 있는 콥트어는 비록 지금은 콥트인들의 예배어 정도로만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콥트교회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전체 이집트 역사에서도 중요한 사료로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콥트어 성서는 성서학적으로 그 연구 가치가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단한 10퍼센트의 정체성 
과거 이집트의 옛 도읍인 멤피스를 중심으로 강성했던 콥트. 콥트인들은 외부에서 이단 취급을 받아도 굴하지 않고 이집트 고유의 색채를 더해 굳건히 독자적 길을 걸었다. 하지만 90퍼센트에 달하는 무슬림들에 비해 고작 10퍼센트 정도에 불과한 이들의 숫자는 오늘날 이집트에서 그들의 위치가 그리 공고하지 않으리라는 예상을 하게한다. 실제로 이집트 사회에서 콥트교인들은 여러 가지 차별에 노출되어 있다. 먼저, 개종에 관한 부분이다. 이슬람에서 콥트로의 개종은 금기시하는 데 반해 콥트에서 이슬람으로의 개종은 합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리고 결혼에 있어서도 이슬람 남성이 콥트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용인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리고 현대 이집트 사회에서 각 분야의 요직, 특히 공직에서 콥트교인의 이름을 찾아보기란 더욱 어렵다. 때문에 이에 대한 항의 시위가 벌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유혈사태가 나기도 한다. 비록 두 종교 간의 갈등이 아주 빈번하거나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완전히 봉합됐다고 말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집트 정부가 2002년 콥트인의 성탄절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많은 콥트인들이 모여 사는 카이로의 미르기스역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감시카메라들과 어려운 콥트인들의 생활상은 아직도 정부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 


콥트는 이집트를 찾는 세계인들에게 큰 주목이나 관심의 대상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이집트 내에서조차 그리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하나의 종교 세력으로 분류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콥트인들이 지키는 10퍼센트의 또 다른 믿음은 그 자체로 이집트에 종교의 자유가 있음을 상징하고 있다. 또한 그들이 예배에서 사용하는 콥트어와 예배 장소인 콥트교회는 이슬람의 지배를 받기 이전에도 이집트 고유 문자와 독특한 문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스핑크스와 피라미드, 대형박물관 등 고대의 찬란했던 영광을 보여주는 유물과 유적들은 아주 많다. 그에 비해 오늘날 작은 박물관 하나와 몇몇 교회건물만을 가지고 있는 콥트의 모습은 조금은 초라해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콥트는 현재진행형이다.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린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10퍼센트의 이집트인들과 호흡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이집트 안에서는 종교의 다양성을, 바깥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을 지키고 있는 이집트의 10% 정체성, 그것이 바로 콥트이다.

 

mini interview

 

마르와 
(약사, 이집트 보건부 소속)

 

이집트 영국문화원 저녁반 강의에서 만난 마르와.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현재 이집트 보건부에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이슬람을 믿는 무슬림이지만 히잡을 두르고 다니지 않는다. 자유로운 사고방식을 가진 그녀와 짧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집트 내 콥트와 이슬람에 대해 중립적인 이야기를 해주길 기대하며.

 

Q. 외국인의 눈으로 보면, 콥트교인들은 차별을 받는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내 생각에 차별은 없어요. 단지 콥트는 이집트 내에서 소수이기 때문에 사회 각층에서 활약하는 일도 그만큼 드물 뿐이죠. 물론 무슬림 중에 완고한 사람들은 콥트에 대해서 다소 강한 적대감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이 역시 소수에 지나지 않죠. 이집트는 이슬람 국가 가운데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 중에 하나예요.

 

Q. 하지만 무슬림 남성은 콥트 여성과 결혼할 수 있고, 그 반대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하던데 이것은 명백한 차별 아닌가요 글쎄요. 무슬림과 콥트의 결혼은 양쪽에서 모두 다 꺼리는 일이죠. 어느 쪽이든 그들의 믿음은 개인만이 아니라 가족, 친척들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예요. 무슬림 남성들이 종교를 뛰어 넘어 콥트 여성들과 결혼해서 무슬림으로 변화시키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도 않은데 과거 발생한 정말 극소수에 해당하는 몇 건의 결혼을 가지고 차별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다시 말하지만 어차피 양쪽 다 원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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