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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기]모래바람과 전투, 하지만 그리운 내몽골

작성일201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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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모래바람과 전투, 하지만 그리운 내몽골

[취재후기]-영현대 김선호, 박준영, 오단비 기자의 내몽골 취재기

 

 

영현대 글로벌 기자단 6기 김선호, 박준영, 오단비 기자는 해피무브의 해외 봉사활동 취재를 위해 8월 11일 중국의 내몽골자치구로 떠났다. 인천공항에서 중국 베이징공항, 그리고 차를 타고 10시간을 견디며 내몽골자치구 차깐노르에 도착했다. 영상 카메라와 사진기, 녹음기는 8박 9일 동안 강한 햇볕, 모래바람과 사투를 벌어야 했다. 하지만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으로 뜨고 지는 해와, 파란 도화지 위에 그려진 구름은 고생조차 잊게 했다.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 현지인의 마음을 담기에는 아무나 힘들었다. 구사일생! 통역을 맡은 스태프를 데려와 인터뷰를 했지만 하나같이 그들의 답변은 “예, 아니오”였다. 원래 이곳의 현지 인터뷰는 다 이렇단다. 최후의 수단은 그들과 친해지는 것이었다. 통역 스태프가 항상 같이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력으로 해결해야 했다.

 

먼저 깐주르(19)와 울란바토르(18), 응커(18), 우르르그(20)와 같이 놀기 시작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만국 공통어인 바디 랭귀지가 있었다. 온 몸으로 표현을 해가며 대화를 했다. 좀 더 세부적인 묘사는 한자를 통해서 해결했다. 땅에 나뭇가지로 한자를 써가며 대화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한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몽골어는 표음문자로 되어 있고, 같은 알타이어족이라 어순이 비슷했다. 깐주르는 가장 진지하게 한글을 배웠다. 토마토를 가리키면 깐주르는 우리에게 ‘씨홍씨’라고 중국어로 말해줬고(내몽골은 중국어·몽골어를 쓴다), 우리는 ‘토마토’라고 가르쳐줬다. 그런 식으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갔다. 드디어는 친구가 되어 마지막 날엔 헤어지기 싫어 우리는 그곳에 살고 싶을 정도였다.

 

■일몰과 일출을 담기 위한 3시간의 사투

 

 

내몽골의 자연을 담을 수 있는 좋은 풍경 중에 하나는 일몰과 일출이다. 우리는 이 모습을 찍기 위해 새벽 4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지기 때문에 그 이전에 일어나 카메라 앵글을 잡아야 했다.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내몽골의 새벽과 밤은 꽤 싸늘하다. 가만히 몇 분을 가만히 서있으면 한국의 늦가을 정도의 추위가 느껴진다. 일교차가 그 정도로 심하다.

 

새벽 4시에 기상해 카메라를 들고 게르 밖으로 나갔다. 파란 새벽 빛이 초원을 감싸고 있었다. 해는 저 멀리에서 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서둘러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작동시켰다. 그리고 3시간 동안 가만히 앉아 하염없이 기다렸다. 천천히 해가 떠오르고 그 자태를 모두 카메라에 담기 위해. 중간에는 추워서 카메라를 놔두고 게르에 들어오기도 했다. 외롭게 남겨진 카메라는 그렇게 일출을 담았다. 일몰도 마찬가지. 우리는 고독을 이겨낸 카메라에게 찬사를 보낸다.

 

■모래 바람과의 전투

 

 

본래 호수였지만 사막화된 차깐노르. 그 지역에서의 취재기는 모래바람과의 싸움이었다. 강한 햇볕은 다행히 우리의 피부색만 변하게 만들었다. 마치 썬크림 안 바르고 해변에서 피서를 즐긴 사람의 모습으로…. 그곳은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막을 길이 없다. 산이나 벽이 없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모두 맞아야 했다. 문제는 바람을 타고 수없이 날라 오는 모래. 모래바람이 불면 촬영이 불가능했다. 무조건 장비는 케이스에 담고 바람이 그치길 기다려야 했다.

 

주변에선 봉사활동을 하는 해피무브의 ‘퉤퉤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모래가 날려 입 안에 들어가 계속 뱉어야 했다. 그런데 안 뱉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침을 뱉을 때 더 많은 모래가 입 안으로 침투할 수도 있기 때문. 마스크를 쓰고 그 위를 손으로 덮는 것이 최선이다. 우리는 입보다는 장비를 감싸 안아야 했다. 이렇게 장비를 껴안 듯, 사랑을 했다면 애인이 있었을 텐데…이상히도 기자단 3명 모두 솔로였다.

 

■사랑으로 남은 그리움

 

 

내몽골을 사랑하게 됐다. 아니, 그리워하게 됐다는 표현이 맞겠다.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기에 그리워하게 됐다는 말이다. 내몽골을 떠나는 날 아침, 아쉬움 때문인지 다른 사람보다 일찍 일어나게 됐다. 혼자 멀뚱히 서있는 나를 울란바토르가 보고는 손짓을 하며 나를 불렀다. 춥지 않냐며 차 안으로 나를 안내해줬다.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보고 “꺼이 짤루”’라고 했다. ‘꺼이 짤루’ 그곳에서 배운 단어들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냈다. 잘생긴 남자라는 몽골어였다. 나는 “씨에씨에(감사합니다)”라고 답해줬다. 그리고는 나보고 애인이 있냐고 물었다. 역시 18살의 풋풋함이 묻어나는 질문들. 그리고는 초원에서 시원하게 소변을 보고 있는 깐주르와 응커를 손으로 가리키며 ‘꺄르르’내며 웃는 울란바토르. 그곳은 소변을 보기 위한 화장실은 따로 필요 없다. 게르에서 좀 떨어져 초원의 바람을 맞으며 시원하게 일()을 보면 된다. 그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 남는다.

 

처음에는 부끄러워 사진을 찍어준다고 하면 피하던 그들. 어느덧 그들은 마음을 열고 우리를 받아주었다. 그리고 기자단의 마음 속에도, 나에게도 잊을 수 없는 한 폭의 풍경처럼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기자단을 항상 곁에서 도와주고 아침이면 반갑게 아침인사를 나누던 무른, 류빈, 루창(중국 에코피스 스태프)도 기억 속 한 켠에 소중히 담아뒀다. 안타까운 건 그들을 향한 마음과 그들이 우리에게 벌려준 손까지 모두 카메라 속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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