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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의 도시, 프라하

작성일2010.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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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프라하에서의 이튿 날, 체코에서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오늘의 일정은 시작되었다. 한국사람은 언제나 그랬듯, 정확히 8시 30분이 되니 단 한 사람도 늦지 않고 모였다. 아.. 하루를 부지런하게 시작했다.

아침의 프라하는 자욱한 안개로 뒤덮여 있었다. 유럽에서의 햇빛을 볼 수 있었으면 했지만 그런대로 유럽의 안개 낀 아침은 나름의 색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버스에서 보는 광경은 밤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하지만 또 드는 생각은 보면 볼수록 우리나라의 한강은 참 넓다는 것.

그렇게 만난 처음의 장소는 프라하의 유대인 지구였다. 작은 골목길을 길 따라 지나가면 유대인 교회당으로서 가장 오래된 시나구구 교회가 있다. 유대인의 상징이라 하는 육각형의 별도 벽 한 쪽에서 만나니 체코에도 다양한 민족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오래된 시간동안 지나쳐 왔을 수많은 역사들을 작은 골목 안에서 발견할 수 있음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눈에 띄지는 않지만 잘 찾아보면 곳곳의 여러 민족들의 역사와 흔적이 묻어나는 곳이 바로 체코이다.

프라하의 중심, 구시가지 광장은 우리나라의 광장과는 다른 모습이다. 유럽의 수많은 나라가 그렇듯 도시는 광장을 중심으로 하고 광장을 통해 길을 넓혀가고 발전한다. 도시의 일부분이며 비어있는 공간인 우리나라의 광장과는 달리 이곳의 광장은 도시의 중심이며 시민의 생활공간이자 관광지의 으뜸으로 여겨진다.

구시가지 광장에는 다양한 프라하의 상징들이 한꺼번에 존재한다. 천문시계로 유명한 구 시청사와 틴 성당 등 수백년이 지난 역사만으로도 놀라운 건축물들은 각기 다른 양식으로 지어져 있다. 같은 골목, 같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색과 양식, 크기, 형태 등 모든 것이 다른 건물들을 보는 것 자체만으로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듯 했다. 프라하 시민들도 다양한 건축물들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 옆 건물과는 다른 디자인의 건물을 짓도록 하는 법을 만드는 등 건축물에 대한 노력을 많이 기울이고 있다 한다. 보존인 동시에 나름의 발전인 셈이다.


10시가 되니 갑자기 사람들이 ‘오롤로이’라고 불리는 천문시계 앞으로 모여들었다. 프라하의 관광객이란 관광객은 죄다 모아놓은 듯 10시가 되기 몇 분 전 갑자기 검은 떼 (어딜 가든 사람들은 검정색을 잘 입는다. 게다가 날씨도 추웠고..) 가 한꺼번에 몰려들더니 일제히 구시청 앞에서 선다. 수많은 인파를 이루어서 광장은 복잡했지만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각국의 감탄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어쩐지 재미있기도 했다. 이 감탄은 아마 천문시계의 상징과 정교한 조각들 때문일 것이다. 시계를 보는 법은 위의 원에서 해는 해의 시간을, 주먹만한 쇠는 달의 움직임을, 별은 천체의 움직임을, 지구를 중심으로 만들어질 당시에는 천동설을 근거로 만들어졌고 밤이 되기 전 까지만 천문시계를 볼 수 있다.

 

 

구시가지를 지나 신시가지로 향하는 길, 또 다른 프라하를 만날 수 있었다. ‘구’와 ‘신’의 차이가 있듯 신시가지는 과거 중세시절 서민들의 동네였으며 지금은 오래된 건물에서도 글로벌 브랜드를, 그리고 오래된 건물 옆에는 막 새로 지은 신식 건물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에서도 광고를 통해 현대차를 만날 수 있었다.


신시가지의 중심은 바츨라프 광장이다. 600m 정도 이어지는 이 광장은 국립박물관과 기마상에 이어지며 양쪽에는 차들과 사람들이 바쁘게 오고간다. ‘신’ 시가지가 맞는 곳이다. 관광객이나 비즈니스 고객도 끊이지를 않는다. 구시가지에서 오래된 건물들의 관록과 역사에 놀랐다면 이 곳에서는 이러한 차이들에 놀라웠다. 몇 백년 된 르네상스식의 건물의 옆은 새로 지은 통유리 건물이다. 이런 차이는 놀랍고 당황스럽다.

 또한 건물의 역사 뿐만 아니라 이 곳에는 현재 체코의 역사도 묻어나 있는 곳인데, 지금 체코의 민주화를 있게 한 여러 혁명이 있었다. 국립박물관 아래 있었던 아름다운 동상 아래에는 소견 침공을 받았던 당시에 분신 자살을 했던 청년들을 기리기 위한 묘지가 있다. 흔히 영화나 소설에서 봐왔던 체코의 공산주의 시절을 기억하니 지금의 작은 공간은 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만큼 체코에서 자유주의가 보편화 되었으며 그만큼 프라하에서 사회주의의 흔적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실제로 체코에서 현대차를 볼 수 있을지 기대됐다. 어떤 차종이 지나갈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현대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한국과는 너무나 다른 도로 사정과, 끊임없이 만나는 수많은 회사와 국가들의 차들을 보면 마치 자동차 박람회에 온 듯 한 기분이 든다. 그 속에서 우리는 꽤 많은 현대를 만날 수 있었는데 주차되거나 지나가는 차 뿐만이 아니라 광고와 표지판 등 체코에서도 더 이상 현대는 낯선 브랜드가 아닌 듯 했다. 특히 독특한 색의 i20를 두 대나 발견했다.

 

체코에서 절대로 빼놓을 수 없는 상징은 까를교와 프라하 성이다. 까를4세의 영향으로 지금의 체코가 있게 되었다는 역사처럼, 이 둘은 체코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들이다. 다리는 거리의 악사와 화가들이 가장자리를 점령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그리고 닿은 프라하 성은 중세시대의 수많은 건물들과 함께 있었는데 날씨가 추웠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1001년 동안 건축했다는 성 니콜라스 성당에도 그랬는데 아쉽게도 이 날은 일요일이라 미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내부는 자세히 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렇게 우리는 프라하를 지나 또 다른 도시 오스트라바로 향했다. 오스트라바는 체코와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아주 묘한 도시다. 하지만 체코와 마찬가지로 오스트라바에서 만나는 현대차 역시 친숙하게 느껴졌다. 공항에서 첫 순간부터 마주치는 현대차의 환영문구부터 지역 신문에 나와있는 광고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체코에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었다. 일정이 끝날 때 까지 만날 현대차와 세계의 차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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