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신뢰로 이룬 성공신화, 영산그룹 박종범 회장

작성일2010.10.24

이미지 갯수image 14

작성자 : 기자단

 

 

많은 20대, 대학생은 미래를 알 수 없는 시기이기에, 누구나 큰 성공을 꿈꾼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어 낸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에 수많은 노력, 끈기로 인생의 성공을 일군 우리의 인생선배가 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이지만, 여전히 ‘꿈’이 있다고 전하는 오스트리아 영산그룹의 박종범 회장을 만나보았다.

 

영산그룹은 199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 설립되어 한국의 자동차와 부품, 석유 화학 제품을 동유럽, CIS 국가에 수출하고 있으며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제품의 물류, 유통, 제조, 판매 등을 담당하고 있는 종합적 기업이다. 유럽 한복판에서 동양의 회사가 성공 하는 것은 드물거니와 ‘영산’이라는 한국식의 명칭을 딴 회사는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그 가운데 오스트리아와 동유럽을 넘어서 세계 12국가에 지사를 둔 자랑스러운 한국 기업이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수많은 노력과 끈기가 있었으며 수많은 과정을 거친 것이다. 박종범 회장은 그 간의 기억을 회고하며 참 많은 과정이 있었다고 설명한다. “영산그룹은 99년 7월부터 시작되었고, 지금처럼 처음부터 자동차 제품을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흔히 자동차 산업이 돈이 많이 든다고 하잖아요. 현지 여직원 한명을 두고 있는, 이제 막 시작한 기업은 그 산업에 뛰어들기란 정말 어렵죠. 그래서 사업 초기에는 한국산 필름지 소싱 사업을 시작해서 한국의 유화 제품을 우크라이나에 공급하는 것으로 시작을 잡았고, 그와 관련된 사업을 하다 더 나아가 배터리, 타이어, 자동차 대리점 금융 시스템 개발 등을 거쳐 본격적으로 자동차 시장으로 뛰어들게 되었습니다.”

영산그룹은 현재는 슬로바키아, 인도, 한국 등 다양한 국가에 차량 개조, 생산, 운송 등을 담당하는 공장을 운영 중이며 2008년도에는 매출액 1조원 달성과 함께 오스트리아에서 올해의 고객상을 수상했다. 박종범 회장은 “한국인이 오너인 오스트리아의 한 회사가 고객상을 받았다는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이죠.” 라며 그간의 보람과 끊임 없는 성장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지금의 위치를 이루었지만, 아시아가 아닌 유럽시장에서 한국의 자동차를 다루는 것은 사실 엄청난 도전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종범 회장은 지금까지 ‘한국산’을 고집해 왔다. 이에 대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박종범 회장은 “영산이 다루는 모든 무역제품은 모두 한국산입니다. 한국산 제품의 품질이 굉장히 좋을 뿐만 아니라 가격적인 측면에서 유럽산과 비교해서 상당한 경쟁력이 있습니다. 물론 가격면에서 더 싼 가격의 타 국가산 제품을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품질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품질이 안정성이 있고 믿을 수 있고 예측이 가능한 한국산 자동차를 고집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한국제품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때문에 한국적 정서를 잘 알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죠.” 라며 현지인들도 한국산 제품의 품질력을 인정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렇게 한국산 제품, 한국 자동차에 대한 유러피언들의 우호도가 높다고 하니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동시에 그 반응이 궁금했다. 우리 국민들도 자랑스러워하는 ‘한국의 품질력’에 대해 현지인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반응에 대해 물었다. 이에 대해서는 ‘정말 자랑스럽다’고 운을 띄우며 현지인들의 반응은 상당히 폭발적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현대 기아자동차 같은 우리 한국 차를 유럽 곳곳에서 정말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이제 글로벌 컴퍼니로 활약하고 있기도 하고요. 때문에 유럽 사람들의 한국 차에 대한 반응은 정말 좋습니다. 제가 현대기아차를 취급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객관적인 결과가 이를 말해주고 있어요. 또 현대 기아차가 한국산 자동차라는 것을 아주 명확하게 알고 있기도 하고요. 한국은 경제력에서도, 국가 이미지에서도 그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이 모든 결과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들이 정말 수고 많이 하고 있고, 한국 자동차에 대해 프라이드를 가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었던, 그야말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박종범 회장은 창립 11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성공을 이루게 된 밑바탕은 무엇보다 ‘신뢰’ 라고 설명한다.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상대방과 서로가 마음이 통하는 것,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앞을 좀 더 길게 보면서 ‘언젠가 내 진실을 알아주겠지’하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여러 번 설득하고 만나면서 그 사람들이 나의 진실된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아, 박종범, 영산은 약속한 것은 지키는 구나. 믿을 수 있겠다.’ 라고 말이죠. 철저히 관리를 하고 상대방에게 약속한 사항이 있다면 이를 꼭 지켰습니다. 이러다 보면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믿는 것이죠. 그래서 신뢰를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습니다. 아마 이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똑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라며 이를 강조했다. 한국산 제품, 한국, 한국 회사에 대한 믿음을 주었던 자세가 굴지의 현지 국가의 회사를 제치고 오늘날의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 영산그룹은 한인회 후원, 지역 후원을 포함하여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출처 - 영산그룹 홈페이지) 

 

박종범 회장에게는 ‘영산그룹 회장’ 외에도 ‘오스트리아 한인 연합회 회장’ 이라는 또 다른 회장 직함이 있다. 두 회장으로서 매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박종범 회장은 현재 오스트리아 한인 사회를 위해 여러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저는 또한 오스트리아 한인 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또 저는 기업인이기도 하기 때문에 언제나 기업의 사회 환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기업인인 동시에 한인회 회장으로서 저의 역할을 다 하여 한인 동포 사회에 뭔가를 기여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여 매년 교민 스포츠 대회인 ‘영산 컵 대회’, 한국 유학생 후원, 한-오 오케스트라 후원, 문화 후원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 오스트리아 한인 문화 회관을 건립을 위한 설립 위원회의 부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모금과 홍보활동 등 다양한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고국이 아닌 외국에서 사는 외로움을 서로 어루만지고 위로하며 살 수 있는 끈끈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또한 박종범 회장은 이렇게 오스트리아 한인 사회에 대한 설명과 곁들여 오스트리아와 한국에 대한 관계까지 함께 설명하였다. “오스트리아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굉장히 깊은 인연을 지닌 나라입니다. 1882년도에 조선과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이 수교 조화를 맺은 적도 있고, 내후년에는 수교 120주년을 앞두고 있습니다. 또 우리나라 초대 영부인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오스트리아 출신이시죠. 뿐만 아니라 UN 반기문 사무총장께서 오스트리아 대사관을 역임하셨는데 그래서 그런지 현지인들이 반기문 사무총장에 대해 마치 자기나라 사람인 듯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이렇게 여러 관계를 통해 오스트리아와 한국은 이전부터 굉장히 친밀한 관계이며, 사돈 관계의 국가입니다.”라며 오스트리아인들은 한국에 대해 굉장히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두 국가의 관계 발전을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우리는 여기에 더하여 외국인이 아닌 한국 교민이 생각하는 ‘한국 자동차’에 대한 인식이 궁금했다. 왠지 한국에서 매일 한국 자동차를 탔으니 외국에서는 외제차를 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 교민들의 한국 자동차에 대한 사랑은 굉장하다며 현대· 기아차에 대해서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전했다. “많은 교민들이 한국차를 구입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슬로바키아 질리나에 있는 기아차 공장 탐방을 한 적이 있는데, 어르신들께서 ‘우리 한국이 이런 정도까지 올라와 있느냐’ 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던 것을 잊을 수가 없어요. 또 초등학교 5학년 학생이 ‘예전에는 학교에서 한국인, 동양인이라고 눈에 보이지 않게 따돌림을 받기도 했지만 한국 제품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당당해졌다’고 이야기 해주기도 합니다. 그 정도로 한국 교민들이 한국에 대해 자랑스러워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회장’ 이 아닌 과거 ‘청년’ 시절의 박종범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우리는 특별한 인생만큼 대학시절 역시 특별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청년 박종범은 그저 모든 일에 열심히 노력하며 성실한 ‘노력파’ 학생이었다. “대학 다닐 때는 공무원이 되고자 하는 학생이었습니다. 대학 입학 시 전체 수석으로 입학했고, 4년 장학금을 받으면서 다녔습니다. 생각해 보면 대학생활 동안 참 많은 것을 했습니다. 학교 다니면서 지금 말하면 학생회 활동을 하기도 하고, 고시 공부 때문에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공부해보기도 하고요. 그러다가 공무원의 길이 아닌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직장생활 하면서도 1년 365일 중에서 350일 정도 회사를 나갔어요. 저는 원래 타고난 천부적인 소질은 별로 없지만 항상 열심히 노력하는 편입니다. 이는 대학시절에도 그랬고 지금도 변함없는 저의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이렇게 성실했던 학생이 지금은 한 기업의 수장이 되었으며 자기 계발서에서 볼 듯한 ‘부자’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늘 부자가 되기를 꿈꾸고 부자가 되기 위해 책도 읽고 강연도 듣는다. 하지만 진짜 부자가 되는 비결은 ‘돈에 묶이지 않는 것’ 이라 설명한다. 박종범 회장은 “사람이 돈을 쫓으면 돈은 도망가는 속도가 내 발보다 훨씬 빠릅니다. 돈이란 것은 항상 도망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돈을 쉽게 잡을 수가 없어요. 하지만 돈이 아닌 나에게 주어진 일과 꿈을 추구하다 보면 돈은 저절로 내 뒤를 따라옵니다. 물론 사업을 하는데 있어서도 금전적으로 상대방과 협상을 하는 부분이 있겠지요. 그 사이에서 당장 이익을 추구하고자 할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 주어지는 이익이 더 적더라도 상대방을 배려하고 베풀면 그 상대방도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아요. 또 그 사람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태도가 알려지면 더욱 많은 기회를 얻게 됩니다.”라며 돈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는 언제나 취업에 걱정하는 대학생이기에, 기업을 이끄는 CEO의 인재 기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CEO로서 직접 생각하는 인재에 대해 박종범 회장은 세 가지 기준을 꼽는다. “첫째,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느냐 부정적으로 평가하느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강렬한 집념을 가지고 끝까지 도전하는 사람은 무언가를 이루게 되죠. 세 번째는 신뢰가 있는 사람입니다. 당장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성실하게 신뢰를 보여주면 인정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라며 이 세 가지 가치를 잊지 말라고 하였다. 젊은이들이 언제나 남을 위해 배려하고 베푸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박종범 회장은 마지막으로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전한다.

“아무래도 제가 유럽에 살고 있다 보니까 출장을 많이 다니고 많은 사람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드는 생각은 나의 뜻을 펼치기에는 우리나라만으로는 그 세계가 참 작다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넓고 내가 할 일은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전하고 싶은 말은, 시야를 넓게 가지라는 것입니다. 자기 방에 세계지도도 걸어보고, 세상을 크게 바라보고, 다양한 시야를 가져 보세요. 언제나 세계를 보면서 움직이는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대학생활, 사실 얼마나 좋습니까. 미팅도 많이 하고, 공부도 운동도 열심히 하면서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내고, 추억을 많이 쌓아 보세요. 제가 지금 가장 부러운 시기가 바로 여러분의 시기이니까요. 열심히 하다보면 꿈은 저절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미래는 노력하는 자의 것입니다!”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