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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지지 않는 평등의 불빛- [마틴루터킹]

작성일2010.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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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1968년 2월 4일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의 생애에 있어 마지막 설교를 한다. “내가 죽거든 나를 위해 긴 장례를 할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긴 조사도 하지 말아 주십시오. 또 내가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과 그 밖에 많은 상을 탄 사람이라는 것도 언급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 날, 마틴 루터 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살려고 노력했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려 했으며, 전쟁에 대해 올바른 입장을 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또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기 위해 애썼으며, 인간다움을 지키고 사랑하기 위해 몸 바쳤다는 것이 기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마틴 루터 킹은 고향인 조지아주 애탈란타의 에버니저 교회에서 자신의 죽음을 예견이라도 하듯 이와 같은 말을 했다. 이 연설이 있고 두 달 뒤 그는 39세라는 나이로 암살을 당했다.

 

 

미국 내에서의 흑인인권운동에 있어서 마틴 루터 킹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 그의 발자취가 곧 미국의 흑인인권에 대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는 꿈이 있었다. 흑인과 백인이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 입니다”

 

 

그 당시 흑인들은 차별받고 있었다. 백인이 출입하는 곳에는 들어가지 못 했으며, 버스를 타도 앞좌석에는 앉지 못했으며 백인이 탑승하면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아무리 나이가 든 흑인일지라도 백인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것이 그 당시에 미국의 법이었다. 마틴 루터 킹은 이러한 차별을 없애기 위해 비폭력 투쟁을 했다. 이 비폭력 흑인인권운동은 인도의 간디에게서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일년 넘게 ‘버스 안타기’ 운동이 1955년 12월 1일의 사건을 계기로 일어났다. 백화점 재봉사인 로사 파크라는 흑인이 일이 끝나고 버스에 탔다. 몽고메리시는 당시에 백인 전용 좌석이 꽉 차면 관행적으로 흑인 승객에게 좌석에서 일어나도록 요구할 수 있었다. 백인 좌석이 꽉 찬 것을 본 운전기사는 두세 명의 백인이 앉을 곳이 없자 로사 파크를 포함한 네 명의 흑인에게 일어날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로사 파크는 일어서지 않았다. 경찰이 오게 되고 로사 파크는 ‘짐 크로우 법’ 위반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흑인들은 흑인끼리는 차를 태워주거나,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고, 말을 타고 다니는 등 ‘버스 안 타기’ 운동을 시행했다. 그 중심에는 마틴 루터 킹이 있었다. 이 일로 마틴 루터 킹은 살해 위협을 받거나, 자택이 폭파당하는 일까지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끝내 인종 차별은 불법이라는 연방 법원의 선고를 받아냈고, 점차 흑인인권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마틴 루터 킹을 기념한 박물관 앞에는 불이 피워져 있다. 꺼지지 않는 불이다. 마틴 루터 킹의 사상과 의지, 그리고 흑인인권의 불빛이다. 마틴 루터 킹의 흑인인권에 대한 사상과 의지는 아직도 진행형인 것이다. 그를 기념한 박물관과 자택 인근에서는 흑인들이 범죄조차 저지르지 않는다. 범죄률이 높은 지역이지만 그의 자택과 박물관 약 500미터 인근에서는 범죄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은 흑인들의 자존심이자 가슴 속에 아직도 피워져 있는 인권운동의 불빛이기 때문이다.

 

 

마틴 루터 킹은 “우리가 자유를 울려 퍼지게 했을 때, 우리가 모든 마을에 모든 고을에 자유가 울려 퍼지게 했을 때, 모든 주와 도시에서 자유가 울려 퍼지게 했을 때, 우리는 더 빨리 그 날로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날은 신의 모든 자녀들, 흑인들, 백인들, 이교도인들, 신교도인들, 가톨릭교도들 모두가 손을 잡고 흑인 영가를 부를 수 있는 날입니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그의 무덤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자유가 왔다. 자유가 왔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드디어 자유가 왔습니다.”[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I`m Free at last]라고.

 

 

흑인의 역사를 거들러 올라가면 아프리카에서부터 시작한다. 노예의 신분으로 미국에 끌려와 인생을 마쳐야 했다. 그리고 그 미국에서 흑인들은 자신의 인권을 위해 투쟁을 했다. 마틴 루터 킹은 비폭력 투쟁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 사회에 변화를 요구했다. 그 정당한 요구 앞에 미국은 변화하기 시작했다.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집단이 모여 융합된 사회를 일궈냈다는 점과 함께 인종 차별이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두 얼굴의 사회다. 하지만 마틴 루터 킹은 한쪽의 얼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것이 바로 인종 차별이 초래하는 문제였다.

 

 

우리나라도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삶이 한국에도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점차 이주민의 수는 늘어가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그것이다. 인종차별은 바로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 우리와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차별을 한다. 이 인종차별은 바로 의식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의식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주민에 대한 차별을 초래하고 있다. 모두가 평등하다는 아주 간단한 사상을 위해 자신의 몸을 헌신한 마틴 루터 킹의 의식은 우리나라에도 유효하게 적용된다.

 

인종은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다. 다른 점을 인정할 수 있는, 그것을 품을 수 있는 마음을 마틴 루터 킹은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언젠가는 조지아의 붉은 언덕 위에 예전에 노예였던 부모의 자식과 그 노예의 주인이었던 부모의 자식들이 형제애의 식탁에 함께 둘러앉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언젠가는 불의와 억압의 열기에 신음하던 저 황폐한 미시시피주가 자유와 평등의 오아시스가 될 것이라는 꿈입니다. 나의 네 자녀들이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 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마틴 루터 킹의 연설은 그 당시의 그날과 그 장소에 머물러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포함한 전 세계에 외치는 목소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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