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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영화계를 뒤흔들다, 영화감독 조성형

작성일2010.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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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한국에서 영화 하는 것은 참 어렵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한국인으로 영화 하는 것은 또 다르다. 베를린 영화제 초청, 기록영화 최초로 슐레지엔 홀슈타인 영화제 대상, 기록영화, 외국인 최초로 막스 오필스 상 수상, 이 외에도 수많은 영화제 수상. 영화 선진국 독일에서 이룬 쾌거는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러한 결과를 한 사람이 모두 이룬 것이라면, 게다가 일본인도, 중국인도 아닌 한국인이 이룬 것이라면 우리는 믿을 수 있을까 아니, 실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모두를 이룬 조성형 감독을 우리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드디어 만났다.

 

 

“진짜 많이도 왔다~!!”라며 호탕하게 B.G.F를 맞이한 조성형 감독은 올해로 독일에 온지 21년이 되었다.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하고 바로 독일 행을 택한 뒤 내내 독일에서 생활하고 결혼하였다. 그렇지만 “2년만 지나면 딱 한국 산 거랑 독일서 산거랑 똑같아요. 그렇게 오래 됐어요. 워낙 오래 되어서 반은 독일사람 이고 반은 부산사람이에요.”라며 여전한 부산 사투리로 그간의 독일에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독일에서의 생활을 채 묻기도 전에 궁금했던 것은 역시 독일에 오기 전의 이야기들이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까지 하고,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평탄한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성형 감독은 독일 행을 택했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내가 좀 삐딱하거든. 그러고 보면 초등학교 다니면서부터 삐딱해서 선생님한테 야단을 많이 맞았어. 내가 워낙 틀이 있으면 적응을 잘 못하는 성격이거든. 그렇게 하다가 대학을 갔는데, 대학에서 공부하는 게 재미가 없더라고. 탐구하는 게 아니라 고등학교 중학교랑 똑같이 암기만 하는 거야. 이걸 공부라고 하는 건가 해서 공부를 전혀 안했어. 신촌 터미네이트라고 무서운 애들이 있었지. 하하하.”라며 특유의 웃음으로 답했지만, 지금의 독일 생활을 결정한 것은 단순히 자신의 성격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많이 좋아졌지만, 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엄청 힘들었거든. 학교 다닐 때 눈물을 흘리지 않고 백양로를 오르지 않는 날이 없었어. 그게 울고 싶어서 우는 게 아니라 최루탄 가스 때문에 매일 울면서 올라갔어. 나는 데모 하는 축도 아니고 안하는 축도 아니었는데 그런 상황이 견디기 너무 힘들었어. 그 때는 나처럼 인간답게 살고 싶으면서 사회의 일원이 되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거든. 데모를 하거나 완전히 순응해서 살거나. 극과 극으로 완전히 나뉘어진 상황이었어.” 라며 이러한 혼란스러운 사회 상황에서 독일에 오게 된 것은 오히려 자신에게 큰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사회와 자신의 갈등을 겪었다는 조성형 감독의 말은 지금의 대학생들에게는 두렵고 가슴이 아픈 일이다. 지금의 대학생도 느끼고 있을 현실의 두려움은 여전하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말이 고생이지 정말 즐겁더라. 한국에서는 돈 걱정도 없었는데 말이야. 독일 와서 스스로 일하면서 다녔어도 마음이 편하니까 고생스럽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 그리고 여기서는 옷을 뭐 입든, 차를 뭐 타든 아무도 뭐라고 안하거든. 자기가 살고싶은 대로 살면 되니까. 굉장히 편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어.”라며 독일에서의 삶은 행복했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도 조성형 감독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고, 누가 보아도 성공한 영화감독이었다.

 

 

이렇게 조성형 감독이 말하는 독일에서,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조성형 감독은 먼저 상당히 많은 독일 사람들이 동양 사람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있다며 그 사실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했다. “한국사람 중에 조용한 사람 없잖아. 다 잘 놀고, 노래 잘 하고, 시끄럽고, 또 잘 싸우고... 조용하긴 얼어 죽을. 하하. 근데 독일 사람들은 동양사람 하면 일본인을 생각해. 아주 공손하고 좀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리고... 동양 사람이라고 하면 다 그런 줄 알거든. 특히 동양 여자에 대해서. 또 나를 처음 본 사람들은 내가 독일 말을 못할 거라고 생각하고 굉장히 신경을 쓰고 스트레스를 받는단 말이야. 근데 나를 알면 굉장히 직설적이고,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하니까 굉장히 재미있어해. 사실 한국 여자들 보면 조용한 사람 하나도 없잖아. 내 영화에 나오는 아줌마들도 바가지 팍팍 긁고 그러거든. 또 한국에서 여자한테 잘 못 하면 살기 힘든데.”라며 이렇게 동양인에 대해 편견을 가지는 것은 결국 그들이 한국 문화에 대해 모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직도 많은 독일인들이 ‘한국’ 하면 6·25 전쟁이나 80년대 데모 시절, 국회에서의 정치인들의 싸움 등 어두운 면만을 기억한다며 한국 자체의 위상을 더욱 높여야 한다고 전하는 조성형 감독의 말에 우리는 너무도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독일에서 한국과 고향에 대한 영화를 만드는 조성형 감독이 더욱 특별하게 느껴졌는데, 이는 이렇게 독일과 한국에서의 생활에서 겪은 자기 자신의 갈등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내가 한국에서 21년이나 살았잖아. 한국에서 교육 받고 사회화 되고 성장을 했으니까 한국을 묻어둘 수 없고. 그런데 독일에서 오래 살았으니까 독일이 새 고향이 된 것 같고. 그 사이에서 갈등을 하면서 산거지. 항상 한국에 대해 생각하지만 반은 독일 사람이 된 것 같은데... 내가 누군가 하고 말이야. 이렇게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한국 고향에 대한 관심으로 향한 거지. 나 말고도 이런 사람 많잖아. 유럽은 경계가 없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온 사람이 많거든. 국제화 된 사회에서는 자기 고향서 사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어. 나같이 고향이 2개인 사람이 점점 늘어나.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고향은 무엇인가. 그게 크게 화두로 떠오르는 거지. 물론 다문화사회 자체를 부정해서 독일 사회에 전혀 적응을 안 하고 자기들끼리 뭉쳐서 사는 사람도 있어. 하지만 그런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잘 순응하면서 이 사회를 잘 살 수 있는가. 그걸 자꾸 생각하니까 한국과 관계된 영화를 하게 돼.”

 

 

한국, 고향에 관련된 영화들을 찍어왔지만 그럼에도 조성형 감독은 극영화가 아닌 다큐영화만을 찍어왔다. 사실 다큐를 찍는 다는 것은 찍히는 대상에게는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있는, 어떻게 생각하면 피하고 싶은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성형 감독은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진정한 관심이 있고, 그 사람의 삶에 존경심을 가진다면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까지 보여주는 것이 아닌 기꺼이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고 답한다. “영화 만드는 사람의 태도와 철학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 우리가 찍는 사람들에 대해서 존경심을 갖는 것. 극영화에서 인물은 영화 끝나면 없잖아. 그런데 기록영화에서의 인물은 진짜 살아있는 사람들이거든.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굉장히 조심스럽게 대하고, 또 존중해야하고. 그 태도에서 내가 카메라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어떻게 찍을 것인가 하는 계획들이 다 나와요. 어떤 기술이나 미학의 입장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나는 누구를 가르칠 마음도 없고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지도 않고. 나랑 있을 때 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 있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거. 그걸 제일 바라지. 그래서 내 영화 보면 극영화 냄새가 많이 나거든. 그 사람들이 자기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야.” 이러한 철학 때문에 조성형 감독은 영화를 찍을 때 조명을 쓰지 않고, 상황을 반복하지 않는다고 했다. 간혹 주인공들이 슬픈 이야기를 하면서 혼자 눈물을 흘릴 때도 절대로 눈물이나 표정을 확대해서 찍지 않는다. 이렇게 거리감을 두는 것이 자신의 존경심에 대한 표현이며, 주인공들에게 무엇을 하면 좋을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늘 묻고 가장 편안하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이 영화 찍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사람에 대한 진정한 관심과 존경심을 가진다는 조성형 감독의 말을 통해 다큐라는 매체가 사람의 진솔함을 담을 수 밖에 없고, 그 때문에 감동과 재미를 느낀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할 이야기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더 좋다는 조성형 감독과 한국의 영화 상황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 조성형 감독은 한국에서는 영화하기 너무 힘들다며 영화하기 좋은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골고루 발전하려면 실험 영화도 있어야 해. 그런 다양한 문화 풍토에서 실험적이면서도 상업적인 아주 끝내주는 영화가 나오는 거야. 타란티노처럼!! 그런 풍토가 생겨야 하는데 한국은 아직 부족한 것 같고. 사람들이 독립영화 하면 옛날 운동권 쪽 영화를 생각하잖아. 그러지 말고 독립 영화에 대한 기반을 좀 잘 정립했으면 좋겠어. 상업성이 부족하지만 마니아에게 상영할 수 있는 예술 영화가 많이 상영되고. 영화가 좀 더 다양해졌으면 좋겠어.”

동시에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성숙한 인간이 되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내가 하는 식의 기록영화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좋은 인간이 되어야 영화를 하는 거거든. 평소에 보면 그다지 인간이 된 사람이 아닌데, 영화 찍을 때는 변하거든. 아주 관대하고 이해심 있고 포용적이고 성숙된 인간이 되는 거야. 기록영화는 기술이 아니거든. 인간성이지. 그리고 극영화를 찍는 사람들은 공부를 많이 하라고 하고 싶어. 공부가 다른 것이 아니라 고전들을 많이 보고 모방도 많이 하고. 그리고 끈기 있게 참는 것. 나도 첫 영화로 바로 큰 성공을 했다고 하지만 몇십년의 세월이 있었거든. 십 년째 돼서 첫 번째 상도 받은 거고. 한국은 성공에 대한 압박감이 너무 커서 이거 했다가 저거 했다가 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힘들다가도 열심히 한 우물을 파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으로서, 그리고 외국인으로서 독일에서 영화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테지만 오히려 조성형 감독은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라고 말한다. “물론 다른 일 할 때는 힘들 때도 있었지. 편집 조수도 하고 막일도 하고 그럴 때는 동양 사람이라는 편견이 있었어. 하지만 감독을 하고 나서부터는 나한테 대드는 사람 없어. 하하. 이유가 뭘까 글쎄.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할 때는 편견과 차별이 있었지만 이제 내가 원하는 일을 할 때부터는 내 일에 대해서 존중을 받는 거지.” 사실 그러면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지만 서도 이 말이 뭔가 어렵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마 나조차도 취업, 졸업 등 현실에 마주친 대한민국의 대학생이기에 그럴 것이다. 꿈과 이상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조심스러워지는 한국과는 다른 ‘꿈’에 대한 자유로움은 놀라운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조성형 감독은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이 한국의 대학생들에게는 미안하다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하면 성공한다는 말이 독일에서는 통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니라는 사실이 안타깝다고 전했다. “한국은 섬처럼 동떨어진 나라잖아. 그래서 한국에만 있으면 굉장히 좁아질 수가 있어. 한국 국적은 죽을 때까지 따라다니지만 한국이 전부는 아니라는 거지. 외국에도 나가고, 국제적으로 시야를 넓히고 했으면 좋겠어. 20대에는 가능한 많은 경험을 하고 인생의 어두운 경험도 하고. 순응하면서 살지 말고. 정말 크게 될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런데 그런 기회가 한국은 적다는 것이 안타깝지만. 그래서 대학생들이 인생에 있어서 샛길을 좀 개척했으면 좋겠어. 누가 뭐 한다, 뭐가 좋다 하면 다 따라가잖아. 그러지 말고 소신을 지켜서 자기 뜻을 이뤘으면 좋겠어요.” 언제나 뜻과 소신을 지켜 자신의 꿈을 이룬 조성형 감독. 아마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 뿐만 아니라 꿈을 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따르고 싶은 인생의 ‘롤모델’이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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