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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산업의 시작, 그곳에 헨리포드가 있다.

작성일20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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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노벨,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 모두 세상에 없던 것들을 발명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헨리 포드는 헨리 포드는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쉽게 차를 사서 타고 다닐 수 있게 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통한 다량생산을 통해 자동차 산업의 시초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미국의 다른 자동차 회사들이, 이윤이 많이 남는 고급스럽고, 화려하며, 값비싼 차만 만들고 있을 때, 포드는 일반 시민들이 탈 수 있는 값싸고 튼튼한 차를 개발했던 것이다. 그가 물론 대중만을 위한 자선적인 사업가는 아니었지만 자동차의 대중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자동차 산업계의 BIG3중 Ford의 창립자 포드의 격정적인 삶에 대해 알아보자.

 

 

 

 

 

▲포드 박물관의 내부. 4개의 섹션으로 나눠져있고 포드의 역사 뿐만아닌 산업혁명 이후 미국의 역사를 볼 수 있다.

 

헨리포드는 자동차의 고향 디트로이트 부근 디어본에서 아일랜드계 이민자인 농군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농사보다는 기계를 만지는 것을 즐겼다. 특히 시계를 고치는데 큰 재주를 보여 이웃주민들로부터 시계박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13세가 되던 해 그는 아버지와 함께 디트로이트에서 증기자동차를 보고 증기자동차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다. 그 이후로 증기자동차의 과학적 원리에 탐닉하게 되었고 학교 옆 담벼락에서 증기기관 실험을 하다가 보일러를 폭파시켜버리는 등 그의 호기심은 더욱 커져갔다.

 

1876년. 16세가 되던 해 그는 청운의 꿈을 품고 디트로이트로가서 ‘미시건 차량회사’에 입사 하지만 일주일 만에 해고되고 만다. 아무도 고치지 못한 기계를 헨리가 30분만에 고친 것이 그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재주많은 젊은 청년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것을 염려한 공장장이 그를 해고한 것이다. 1년간 고생을 하다가 ‘드라이독’이라는 증기엔진회사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급료는 적어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으나 엔진기술을 배우기 위해 참고 열심히 일을 했다. 20세에 견습공의 딱지를 떼고 웨스팅하우스라는 증기기관차회사의 엔진기사로 취직이 되었다.

 

▲포드의 기술에 대한 미악은 머스탱 시리즈에서 그 결정체를 찾아 볼 수 있다.

 

 

그런데 바로 그 공장 옆에 있던 이글이라는 엔진공장에서 소리가 부드럽고 석탄을 때지 않는 내연기관인 오토가스엔진을 제작하는 것을 보고 눈을 번쩍 떴다. 그래서 이내 이글공장으로 옮겨 가스엔진에 대한 지식을 쌓았다.

 

그리고 1891년에는 에디슨 전기회사에 입사하게 되고 그곳에서 전기지식을 충분히 습득하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면서 퇴근 후에 집에서 엔진 만드는데 열중을 했고 그 결과 1896년 최초의 2기통짜리 포드자동차가 완성되었다. 하지만... 작업실의 문이 자동차보다 작았기 때문에 헨리는 도끼를 들고와서 문과 벽을 부수고 자신의 1호차를 시운전했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헨리보다 16세나 많은 발명왕 에디슨이 포드를 찾아와 격려를 하고 이후 깊은 우정을 유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 Best Friend.  디트로이트 출신의 토마스 에디슨과 헨리 포드는 나이차를 넘어 서로의 조력자가 되었다.

 

 

 

에디슨전기회사를 나와 1899년 디트로이트자동차회사를 세웠으나 실패했다. 그래서 두 번째로 만든 자동차로 자동차경주에 참가했고 1901년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경주에 직접 출전해 당대 최고의 레이서였고 자동차메이커를 이끌었던 알렉산더 원톤을 꺾고 당당히 우승을 차지했다. 38세의 나이였던 헨리의 속도는 72km/h나되어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포드 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포드의 자동차 역사.

 

이 우승을 계기로 자본가들이 다시 나타났고 1903년 6월 자본주의자들의 자본을 모은 15만 달러로 포드자동차회사를 정식으로 발족시킨다. 그러나 당시 자동차는 단순히 신기한 발명품에 지나지 않았다. 시끄럽고 고장이 잦았으며 비실용적인 사치품이라는 생각이 대중에게 퍼져있었다. 때문에 헨리가 은행에서 대출을 요청하자 해당 은행장은 “멀쩡한 말들이 많은데 자동차 산업이 되겠는가” 라고 반문하며 대출을 거절했다고 한다.

 

회사 운영방식은 독특해 자신의 돈을 직접 쓰지 않고 남의 돈과 기술, 그리고 공장과 기계시설들을 이용해 첫차 모델A(2실린더 8마력 엔진)와 모델B, 모델K를 만들어 냈다. 하지만 먼저 생겨난 회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했다.

경쟁자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헨리는 자동차가 서민들이 실생활에 이용할 수 있도록 값이 싸고 실용적 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1908년 자동차 산업 역사의 시발점이라 할 만한 T형 포드를 만들어 냈다.

 

▲ 자동차 산업의 시초가 되었던 제품인 Ford T 시리즈. 대량생산 경제의 시발점이 된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이 처음으로 도입되어 경쟁사보다 낮은 가격에 자동차를 보급할 수 있었다.

 

이 차는 다른 회사차들의 가격이 2천달러 수준일 때 825달러라는 파격적인 가격으로 살 수 있었다. 모델T는 직렬 4기통 2천890cc 22마력 엔진을 얹고, 2단 기어로 시속 60km까지 달렸다. 값은 825달러, 1923년 200만 대 생산, 1925년에 대당 260달러까지 값을 낮추는 등 기록을 세우며 1927년까지 생산되었다.

 

초기 자동차들은 수제품으로 값이 매우 비쌌다. 부품의 규격이 일정치 않아 차를 조립할 때마다 절삭기나 연마기 같은 공구를 이용해 부품을 조정해야 했다. 또 모델이 자주 바뀌는 바람에 대다수 부품은 장기생산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포드는 모델을 단일화 함으로써 부품을 표준화하고 공구의 사용법을 개선했다.

 

▲ T-시리즈의 변천사. 지금의 자동차 산업이 있게한 대량생산 최초의 제품이라 볼 수 있다.

 

 

이 차를 더욱 값싸게 만들려면 한꺼번에 대량생산을 해야 했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1913년의 컨베이어식 조립라인이다. 이로 인해 T형 포드는 1927년 단종될 때까지 무려 1,500만대라는 천문학적인 숫자의 모델을 생산해 냈고 20세기 전반 전 세계의 자동차시장을 독점한 자동차 왕이 된다.

 

 

 

그의 업적은 자동차를 대중에게 보급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관리 방식과 경영시스템. 컨베이어 시스템에 의한 대량생산에 필요한 관리방식과 경영시스템의 시초가 되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1공정에 18분이 걸리던 업무를 5분으로 단축시킬 수 있었다. 이를 통한 대량생산으로 자동차 산업 초기의 자동차들이 2천달러정도에 팔릴 때 포드 T형 모델의 가격은 2백 60달러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자동차는 보통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었고 거대한 미국 경제력의 밑받침이 되었다. “부자들의 장난감인 자동차를 서민들의 필수품으로 바꾸겠다.”는 그의 의지가 그를 자동차 왕으로 만든 것이다.

 

▲1949년의 포드 광고. 부자들의 장난감이 아닌 사람들의 필수품이 되어야 한다는 헨리 포드의 신념이 녹아있다.

 

1947년 84세에 뇌졸중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헨리 포드는 새로운 발상과 자동차 왕으로서 국민의 영웅으로 군림하기도 했지만 무자비한 자본주의 사업가로 평가되기도 했다. 도살장의 해체라인을 자동차 조립라인으로 바꾼 것과 당시 평균임금의 두배인 5달러를 임금으로 지불한 것은 결과적으로 비용보다 훨씬 많은 이익을 가져왔기 때문에 그의 가장 경제적인 발상으로 꼽힌다. 하지만 헨리의 무자비한 노동통제장치들은 그를 무자비한 자본주의 사업가로 매도시키기에 충분했는데, 그는 공장에서 작업시간에 화장실을 자주가는 등 근무태만자를 골라내기 위해 감시조를 투입했다. 또한 권투선수나 전과자들을 경호원으로 고용해 악명을 떨쳤고, 자동차 회사들 중 가장 늦게 노동자조합을 도입했다. 그는 반유태주의자면서 히틀러의 훈장을 받기도 했다.

 

▲ 20세기 자동차 역사를 이끌어 나간 헨리 포드. 그가 걸어왔던 길이야 말로 Road of car 이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를 노동자라 여기고 사치를 혐오했던 그. 33세에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자동차를 만들고 누구나 탈 수 있는 값싸고 튼튼한 차를 만들려고 했던 그의 꿈에 대한 평가는 최고의 부를 축적한 기업가와 악덕 자본주의 기업가로 극과 극을 달릴 수 있지만 그가 자동차 산업의 신화를 일군 전설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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