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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품 파는 우리 원장님, 상해문화원 장사성 원장을 만나다

작성일2011.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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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아 안녕하세요! 이쪽에서 인터뷰하는 게 낫겠네요!”

 

 

장사성 원장(대한민국 상해문화원, 이하 상해문화원)이 말하기 위해 입을 떼기 전까지 그에 대한 첫인상은 조용하고 정적일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BGF팀을 반기는 그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음을 깨달았다. 그는 선한 이목구비를 가졌지만 성격은 정말 털털하고 호탕하기까지 했다. ‘원장이라는 직위임에도 체면 차리려 하기 보다 진솔한 자신의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 하였다.

 

 

 

뻔한 인생이 싫어 결심한 중국 공부, 그의 인생을 바꿔놓다

 

장사성 원장은 상해문화원 1년 차다. 국내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20년 가까이 일하다가 작년 2월 상해문화원 2대 원장으로 발령됐다. 국내에서는 업무가 바뀌어도 습득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지만, 장사성 원장처럼 해외발령의 경우엔 확연히 다를 것 같았다. 규모를 이루 말할 수 없는 대륙 한가운데 문화원장으로서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은 것에 대한 부담은 없는지 그에게 물었다.

 

저는 예전부터 상해문화원에 오기 위해 준비해왔어요.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던 때는 90년대 초 한중수교에 대한 분위기가 감지됐을 때입니다. 그 때 몇 살 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인생에 대한 그림을 그려봤는데 너무 뻔한 인생인 것 같아서 그만둘까도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한중수교 얘기를 듣고 여기에 한번 매달려보자 결심하게 됐죠. 중국어 공부도 이때부터 시작했고요. 이때부턴 단 한번도 중국을 빼놓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이렇게 사니 인생이 바뀌기 시작하더라고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정적인 공무원 생활 속에서 그는 역동성을 끊임없이 추구해온 것이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에 대한 인식은 동적이기 보단 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장사성 원장은 이러한 고정관념을 완전히 뒤엎었다.

 

 

사실 제가 가만히 앉아 있는 스타일이 아니에요. 주로 자리에 잘 있지 않습니다. 항상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니는 스타일이죠.”

 

장사성 원장과의 대화에 빠져들면 빠져들수록 그는 공무원보단 사업가 기질을 가진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자신이 세운 목표에 대해서 철저히 또 거침없이 이뤄나갔다. 이러한 과정은 사실 장사성 원장에게 있어서 굳이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물 흐르듯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을 국민 세금으로 봉급 받는 사람이라 하며 보다 능동적으로 일해야 함을 강조했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직접 발품 파는 원장

 

문화원장의 임무는 크게 한국 문화 알리기와 한중 문화교류 촉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해서는 사실 많은 예산이 필요해요. 하지만 문화원에 할당된 예산은 많지 않습니다. 국민의 세금으로 모든 일을 할 순 없는 것이죠. 그래서 제가 직접 출장 다니며 예산 마련에 힘씁니다. 예산이 한 푼도 없어도 기업이나 지방정부 등과 협의하여 없는 예산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공공기관 원장이 발품을 팔아 예산을 마련한다!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사업가의 길을 택했어도 잘 맞았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건네기도 전에 그는 정말 사업가로서 자신의 일에 최대한의 열정으로 임하고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예산 마련을 위해 이곳 저곳 출장 다니는 것이 고될 법도 한데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장사성 원장의 눈빛은 빛나고 있었다. 자신의 적성에 맞고 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기에 고단함의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문화원 홍보에 대해서도 그는 역동적인 자신의 성향을 마음껏 발휘하였다.

 

 

상해문화원장에 오기 전부터 문화원에 앉아서 한국을 알리는 것이 아닌 직접 나가서 한국을 알리자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상해문화원은 위치는 좋으나 건물 특성상 접근성은 떨어집니다. 때문에 강의나 행사가 없으면 사람이 정말 단 한 명도 오지 않을 때도 있어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오고 싶은 문화원을 만드는 것입니다. 아직 확정되진 않았지만 다목적홀에 홍대 인디밴드가 공연할 수도 있고 문화원 입구에서 한국 음식을 팔 수도 있어요.”

 

그가 원장으로 부임한 뒤 상해문화원의 내부 인테리어에도 봄바람이 찾아왔다. 문화원 내부에 작품을 전시한다는 이유로 딱히 인테리어가 없었는데 전시가 없는 날엔 이보다 더 휑할 수가 없었다. ‘진짜오고 싶은 문화원을 만들기 위해 그는 내부 인테리어 먼저 한국적이고 아늑한 느낌의 인테리어로 단장했다. 그렇다면, 안살림이든 바깥살림이든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부지런히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 장사성 원장의 대학시절은 어땠을까 왠지 평범 이상의 비범함이 있을 것만 같았다.

 

 

 

평범함이 모여 이뤄낸 특별함, 그를 성장시키다

 

전 정말 평범한 학생이었어요. 성적도 그렇고 딱히 두각을 나타낸 것은 없었어요. 그런데 아르바이트는 거의 20가지 넘게 해본 것 같아요.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한 적도 있고 음료수를 직접 판매한 적도 있어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본 것 같습니다.”

 

언뜻 생각해보면 장사성 원장의 대학시절은 대학생들이 흔히 말하는 스펙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았다. 학점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공신력 있는 대회에서 수상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잘 생각해보면 이러한 다채로운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다는 장사성 원장은 사소해 보이는 이 경험들을 통해 새로운 도전에 있어 두려워하지 않고, 낯선 환경에서도 그 누구보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보다 더 반짝이는 눈으로 이 글을 읽고 있을 한국의 대학생들에게 멘토로서 조언을 부탁했다.

 

“’자신감을 갖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신감을 갖는 것 자체가 하나의 능력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크고 높게 또 멀리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가진 포부를 실현하기에 한국은 너무 좁을 수도 있어요. 자신감을 갖고 더 많이 둘러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장사성 원장은 사진촬영을 위해 BGF팀의 요구에 맞춰 포즈를 취해주었다. “난 사진은 잘 안 나와~”하며 농담 던지는 그의 한마디에 촬영장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짧은 시간 인터뷰를 하면서도 느꼈지만 그에게는 꾸밈없는 진실함이 있는 것 같았다. 상해문화원장으로서 임기를 마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몇 년 후 장사성 원장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이유는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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