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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재발견, 오슬로에서의 삶

작성일2011.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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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몇 달 전 뉴질랜드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때 몇몇 친구들이 나에게 물었다.

혜정아,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라는 질문에 나는 잘 지내냐는 말도 아닌 괜찮냐는 질문에 의아해졌고 그 이유를 물으니 너 뉴질랜드에 있잖아라는 대답을 들었다. 네덜란드도 아니고 뉴질랜드도 아니고 노르웨이에서 교환학생을 지낸다는 말을 100번도 넘게 한 것 같은데 말이야. 그 동안 나의 노력이 헛된 것 같아 허탈함을 느끼는 동시에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참으로 생소한 나라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한국 메신저에 들어가면 한국 친구들이 묻는 말은 “”노르웨이 어때이다.

그리고 나의 대답은 좋아, 지루한 것만 빼면

 

 

 

 

모든 것이 참 좋다.

 

 뭐니뭐니해도 노르웨이의 환경을 빼놓을 수는 없다. 물론 겨울의 짧은 해와 추위는 싫지만 또 하얀 눈이 4월까지 내리는 센스에 그 안 좋은 것들마저 이국적이라며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지내고 있다. 더욱이 다른 유럽도시를 가면 한번에 느낄 수 있는 맑은 공기.

 오슬로 공기가 참 상쾌하다고 했더니 노르웨이 친구가 이 공기가 깨끗하다고 난 고향(베르겐)에 지내다가 오슬로 오면 공기가 훨씬 텁텁하게 느껴져라는 대답에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네가 한번 서울 와 보아야 아~~~ 오슬로 공기가 참 맑았구나라고 느낄 것이라며 말해줬더니 자기는 어찌 되었든 오슬로 공기가 깨끗하다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오슬로에 너무 차와 사람이 많다는 말에 인구 50만이 사는 오슬로가 사람이 많다고 느껴진다면 인구 1000만이 사는 서울에 오면 넌 정말 기절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중요한 것은 곳곳의 푸른 녹지, 공원 등 정말 자연을 즐기고 누릴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다. 이를 벗삼아 달리는 사람들, 스키를 타는 사람들, 개와 산책을 하는 사람들, 모두 자연의 울타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 오슬로 대학교 교정

 

 

▲ 오슬로 대학교 안 도서관 

 

▲  기숙사 방에서 내다 본 모습. 안개가 자욱했던 날.

 

▲ 기숙사 근처의 송스반 호수. 

 

 

 유럽을 여행하면서 노르웨이 사람들이 얼마나 젠틀하며 친절한 사람들인지를 몸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 곳 사람들이 전반적으로 유창하게 잘하여 더욱 그럴 수도 있지만 이 곳에 지내면서 인종차별을 당한 적은 맹세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없다. 모르는 것이 있을 때마다 영어로 물어보면 언제나 친절하게 답변해주는 사람들. 더블린 그 길에서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던 사람들과 비교한다면 정말 이 곳 사람들은 천사, 그 자체이다. 도대체 바이킹이 이 나라 사람들의 조상이 맞냐는 의심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내가 이 곳에서 자리를 잡고 직장을 가진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도 있겠으나 분명한 것은 다른 유럽과 아메리카 나라들보다 확실히 외국인들에게 더욱 친절하며 인종차별을 찾아보기 힘들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참 수줍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지 않으면 좀처럼 먼저 다가와 말을 걸지 않는다. 처음에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수줍음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니 백인이!!!”라는 정말 인종차별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당시 나에게 백인=미국인이었으니깐 말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 느끼는 것은 정말로 어쩜 이렇게 수줍수줍을 수 있는지. 개인의 성격에 따라 다르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참 조용하다. 말도 큰 소리로 하지 않고 크게 웃지도 않는다. 바이킹의 피는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듯이 친해지고 더 잘 알게 되면 이들 역시 하얗고 차가운 눈과는 다른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들임을 알게 된다. 더욱이 스키 챔피언쉽이나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조용한 사람들은 어느덧 한국의 붉은 악마처럼 변한다.

 

 

 

 오슬로 문화를 파리처럼 쉬크하고 뉴욕처럼 트렌디하다는 잡지 속 에디터들의 표현처럼 엣지있게! 나타내주길 바란다면 오슬로는 참 프루글(frugal)하다 못해 험블(humble)하다고 할 수 있겠다.(사실 오슬로 자체가 잡지 에디터들이 자주 쓰는 표현과 거리가 멀다.) 모든 사람들이 수수, 검소그 자체다. 이 곳이 과연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는 부자 도시가 맞는지 의문이 든다. 높은 소득 수준에 비하면 이들의 옷차림은 너무나 평범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강남, 명동 아니 지하철만 봐도 구*, *, *, 그리고 3초백이라 일컬어지는 루**통 가방들을 자주 본다. 이제는 이것들을 명품이라 불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들게 할 정도로 너무나 대중화된 명품 가방들. 그러나 이 곳 오슬로에 지내면서 명품 가방을 하루에 단 1번이라도 본 날은 참 드물다. 물론 내가 명품에 대해 잘 몰라 그것이 명품인지 몰랐을 수도 있고, 내가 지내는 곳이 부촌이 아니라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고려하더라도 한국에서는 집 앞 슈퍼 갈 때, 호프집 갈 때, 버스 탈 때 등 그 어디를 가든 봤던 명품 가방들을 하루에 1번 지하철에서도 학교에서도 보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곳 사람들의 검소함을 증명한다.

 이 곳의 검소한 문화는 수업 중에도 느낄 수 있다. 대부분의 노르웨이 학생들은 자신의 점심식사를 집에서 싸온다. Matpakke라 불리는 이 식사는 빵에 자기 기호에 따라 브라운 치즈 혹은 잼 등 다양한 재료를 넣어 꼭 종이에(!) 싸서 들고 다니는 것이다.(좀더 능숙한 이들은 반찬 통에 들고 다닌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아 저걸로 배가 부를까 5개 먹어도 안 부르겠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기도 하지만 이 곳 아이들의 검소함을 볼 때면 슈퍼에서 12kr(2400)짜리 크로와상 하나 사 먹는 내가 사치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 친구들도 슈퍼에서 빵 파는 걸 몰라서 혹은 학생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안 사 먹으랴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더 맛있을 수도 있지만 아낄 수 있는 곳에서 돈을 아끼는 그 검소함은 어릴 때부터 Matpakke에 익숙해진 문화 덕분이라 믿는다 

 

▲ Matpakke (출처: http://www.squidoo.com)

 

 박노자 교수님이 해주신 이야기 역시 노르웨이 사람들의 검소한 문화를 잘 나타내는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오슬로 대학교 교수님들이라고 해서 Matpakke의 굴레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교수님들도 손수 Matpakke 혹은 각자의 도시락을 싸와 식탁에 둘러 앉아 오순도순 맛있게 드신다. 그리고 나서 식탁 위에 떨어진 부스러기들을 한데 모아 버리지 않고(!) 그대로 입에 가져가 그 빵 부스러기들마저 드신다고 한다. 심지어 이 곳 국왕도 지하철을 타고 다녔고, 왕실의 왕자와 공주 등 왕족들이 비싼 사립학교가 아닌 일반 공립학교에서 배우고 졸업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아니 어떻게!!!!!!!!!’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그래, 이 곳은 노르웨이니깐.’ 이라며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넘긴다.

 

 

 

 

이 곳은 노르웨이 오슬로이다.

 

 어딜 가든 볼 수 있었던 그 흔하디 흔한 스타벅스도 던킨도넛츠도 심지어 KFC도 없는, 이제 한창 열을 올리고 잠시 쉬어가는 새벽 2 30분에 슬슬 문 닫을 준비를 하는(심지어 금요일, 토요일에도!) 클럽들이 있는 오슬로이지만 이 곳이 참 좋다.

 여름방학 휴가 시즌에 열심히 일하면 10개월치의 기숙사 비용을 벌 수 있고, 주유소에서 일해도 한국 돈으로 400만원을 벌어 이 곳 기숙사 요금과 자신의 생활비에 쓸 수 있는 이 곳이 참 좋다.

 자신이 도중에 전공을 바꾸더라도 본인이 공부할 수 있는 만큼 공부할 수 있는 여건을 제공하는 이 곳이 참 좋다.

 복지뿐 아니라 이 곳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참 부럽다. 쉴 때는 친구와 함께 혹은 혼자서 운동을 하며 자기가 버는 돈을 결코 자랑하지 않고 여전히 검소하게 사는, 이 사람들의 자연과 문화가 참 부럽다, 참 좋다.

 장난으로 너희는 왜 기름도 가지고 깨끗한 환경도 가지고 돈도 많고 발전된 정치체제도 가졌냐! 이건 불공평해!!!!”며 따지듯이 묻는 나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그저 베시시 웃는 수줍음이 많지만 친절한 노르웨이 사람들도 말이다.

 

 아직도 길가에 쌓인 눈들이 완전히 녹지 않은 4월의 오슬로. 곧 있으면 꽃이 피고 이제 모든 것들이 새로 태어나고 시작할 지금 이 설레는 순간에,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3달이 채 남지 않아 기쁘기도 하면서 참 슬프다. 비가 오는 날이면 뜨끈한 파전과 좋아하는 막걸리가 그립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왁자지껄한 술자리가 그립기도 하였지만, 분명 한국에 돌아가면 너무나 평화로워 지루한 이 곳이 분명히 그리울 것이다.

 어쩌면 나의 교환학생이라는 한시적인 신분이 이 곳의 현실과 뒤엉키지 않고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며 노르웨이의 좋은 면만을 보게 만든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오슬로에서의 삶은 나의 생각을 많이 바꿔놓았다. 비록 나의 영어실력이 외국인 앞에서 쏼라쏼라~할만큼 유창하게 된 것은 아니지만, 이 곳 오슬로에서 한국에서의 삶과 완전히 다른 또 다른 삶을 발견하였다는 사실은 그 어느 것에도 비할 수 없는 가장 큰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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