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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했던 옛 영화의 시절, 남미 속의 유럽을 꿈꾸던 나라.

작성일2011.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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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화려했던 옛 영화의 시절, 남미 속의 유럽을 꿈꾸던 나라.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Buenos Aires)에 가다

 

 

  소가죽만 벗겨 수출하고 고기는 땅에 버릴 정도로 풍성했던 시절, 이태리 제 대리석 몇 장과 소 한 마리를 기꺼이 바꾸던 그 부유했던 시절에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유럽보다 더 유럽다운 도시를 그들의 수도로 세웠다. 그리고 그 이면엔 고향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수많은 이민자들이 있었다.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국가의 사람들이 모여 구성된 나라 아르헨티나. 그리고 그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De donde eres(Where are you from)” 이라는 질문은 그들에게는 아르헨티나 사람이라는걸 묻는 의미가 아니라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온 아르헨티나 사람입니까 를 의미할 정도로 미국 못지 않은 다양한 인종의 구성을 자랑하는 이곳. 음악이 흐르는 밤이 되면 더러워진 작업복을 벗어 던지고 화려한 옷차림으로 탱고 선율에 맞추어 커피와 마떼를 마시며 춤을 추며 음악을 즐기는 그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남미 동남부 라플라타 강(Rio de la Plata)의 하구에 자리한 항구도시로서 유럽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남미의 파리라 불리고 있다. 그리고 세계적인 오페라 극장 떼아트로 콜론(Teatro Colon)을 비롯하여 수많은 미술관과 박물관과 공연장이 몰려있어 결코 잠들지 않는 문화도시, 땅고와 정열의 도시 등으로 유명하다.

 

 

 

   2011년 현재 인구는 대략 1,300만 명으로 브라질의 상파울루에 이어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도시 중의 하나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페드로 데 멘도사 (Pedro de Mendoza)가 이끌었던 스페인 원정대에 의해 1536년 정착이 시작되었고, 19세기 내전 이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연방 특별구(Capital Federal)가 되어 주에서 독립되어 빠른 속도로 팽창하였으며, 특히 19세기경부터 20세기에 걸쳐서 이탈리아, 스페인, 폴란드, 러시아 등의 유럽으로부터 수많은 이민자들을 받아들여서 본격적인 도시의 틀을 갖추고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아르헨티나를 여행하다 보면 이 나라가 정말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라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위로는 세계문화유산인 이과수 폭포와 열대 우림, 중부로는 부의 원천인 대 평원 (Pampa), 그리고 남쪽으로는 파타고니아를 중심으로 빙하지대까지 이 세상 모든 자연을 한 곳 에서 느낄 수 있다.

 

(왼쪽 위부터) Puerto Iguazu[세계3대 폭포], Ushuaia[세계최남단도시], Pampas[대평원 팜파스], Perito Moreno Glaciar[빙하공원]


 

   아르헨티나의 부의 원천이 된 이 자연환경은 많은 노동력을 필요로 하였다. 대 평원에서 생산되는 밀과 소고기를 수출하기에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기회를 찾아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에서 몰려든 이민자들로 이 나라는 아르헨티나 드림 이란 수식어를 받으며 화려하게 성장하여 나갔다. 넘쳐나는 돈을 쓸 곳이 없어 도로를 만들 때 쓰는 돌을 프랑스에서 수입하여 깔고 연신 파티를 즐기며 일년에도 몇 번씩 유럽여행을 가던 나라, 이미 100여 년 전부터 지하철을 타고 다니던 나라, 금이 너무 많아 은행 복도에까지 쌓아두고 영국도 얕잡아보며 전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었던 이 나라는 국민들의 안일함과 끊임없이 자행되던 정치인들의 부패, 군사쿠데타로 인해 서서히 타락의 길로 걸어가기 시작하였고 그것에 정점을 찍은 것은 1976년 군부주의 하에 채택한 신 자유주의 정책이었다. 신 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던 미국을 의식하며, 금융 자율화, 관세율 인하, 시장 개방 등의 신 자유주의 정책을 적극 도입하고 1977 9월엔 국유회사의 민간이양을 결정하여 돌이킬 수 없는 경제 파탄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 이 신 자유주의 정책으로 재정적자와 외채가 급격히 늘어나고 물가는 날로 치솟아 국민들은 고통을 겪게 되고 불만은 가중되었다. 이러한 국민의 불만을 외부의 적을 만들어 벗어나려고 꺼낸 카드는 자국 근처의 영국 식민지였던 포클랜드 섬을 되찾기 위해1982년에 일어난 포클랜드전쟁 이었다.

 

 결국 2개월 만에 영국에게 항복하고 군부주의 정권은 민간정부에 정권을 이양하게 된다. 그 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은행, 철도, 전기, 수도, TV중계권 심지어 나라의 국적 항공사까지 닥치는 대로 외국에 팔아 넘기다가 결국 2001 12월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를 맞아 결국 파산하게 된다.

 

 

 

* 연신 일어나는 데모와 먹을 것을 찾아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아르헨티나의 사람들.

 

   5000% 인플레와 국민 3명중 1명이 실업자, 약탈이 급증하고 사회는 무정부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힘든 시기에서 쉽사리 탈출하지 못하고 국민소득 5000불의 중산국으로 전락하고 말았지만 그 화려했던 과거의 영화는 부에노스아이레스사람들의 마음 속에 또 도시 곳곳의 화려했던 흔적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다른 남미 나라들과 함께 취급 받는 것을 싫어하며 유럽인들의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나라는 지금도 어렵지만 지금도 자부심을 느끼며 우아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 이면에는 집 없이 거리를 떠돌며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까지, 비참했지만 화려했던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구수 보다 소가 더 많은 나라, 아사도(소고기를 석쇠에 구워 요리하는 방식)의 본고장, 세계적인 축구선수 마라도나부터 메시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월드컵 우승후보. 탱고 음악의 본고장. 세계에서 제일 넓은 왕복 20차선도로인 7 9일 대로와 한때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를 자랑했던 나라. 이 모든 수식어를 그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찾을 수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핵심 관광 포인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인천공항에서 가는 직행은 없고 미국이나 캐나다 혹은 유럽을 경유하여 가는 노선만 있으며 시간은 최소 30시간 이상이 걸리며 비행기 편도요금만 100만원이 넘는 우리나라의 정 반대편에 위치한 도시이다. 공항에 도착해서 시내를 걷다 보면 우리가 상상했던 남미와는 적잖이 다른 모습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구릿빛 피부와 넉넉해 보이는 인심의 남미사람들이 아닌 크고 늘씬하며 도도하게 거리를 걸어 다니는 유럽사람들만 눈에 자주 보일 것이다. 그리고 바로 와 닿는 스페인어.

 

 우리나라처럼 대부분의 관광지에 영어와 병행표기가 되어있는 것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영어가 쓰여 있는 곳은 찾기도 힘들고 영어는 통하지 않는다. 남미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의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오는 것은 필수이다. 48개의 구로 나누어진 거대한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짧은 시간에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하며 대통령 궁이 있는 센트로(Barrio Centro)와 보카 주니어스 경기장이 있는 라 보카 지구(Barrio La Boca) 화려한 공동묘지가 있는 레꼴레따 지구(Barrio Recoleta) 와 이곳의 최 상류층이 거주하는 빨레르모 지구(Barrio Palermo) 정도를 둘러 보는 정도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가진 여러 가지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처음 도착하여 들른 곳은 5월 광장과 대통령궁.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심장부인 이곳에는 스페인 통치 시대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풍스럽고도 우아한 건축물들을 볼 수 있으며 이곳을 시작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역으로 길이 뻗어져 나간다.

 

 

 

* Casa Rosada[ 대통령 궁] , 대통령 집무실과 응접실

 

  주말에는 대통령 궁을 일반 시민 및 관광객에게도 개방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주말에 가서 현 대통령의 집무실 및 내부를 관광 하는 것도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세워진 지 100년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예술의 전당이나 세종문화회관과 비교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는 세계 3대 극장의 하나인 꼴론 극장(Teatro Colon). 1890년 건축을 시작해 1908년 완공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마침 이곳에서 오케스트라 연주가 있어 운 좋게도 입장하게 되었는데 좌석에 따라 가격은 천차만별이었고 가장 저렴한 좌석은 뒤에서 서서 공연을 관람 할 수 있는 입석. 입장료는 한국 돈으로 12,000원부터 150,000원까지 다양하다.

 

 

 

 

  꼴론 극장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대로가 바로 세계에서 제일 넓은 왕복 20차선의 7 9일 대로 (Avenida 9 de Julio). 엄청나게 넓은 이 대로는 횡단보도에 녹색 불 이 켜졌을 때 전속력으로 달려도 차선 이쪽 끝에서 저쪽 끝으로 이동하기가 힘들 정도로 넓은 면적을 자랑한다. 그 중앙에는 오벨리스꼬가 이 대로의 웅장함을 한껏 빛내주고 있다.

 

 

Obelisco[오벨리스크], Av. 9 de Julio[79일대로]

 

 

그 다음으로 가볼 만한 곳은 보카 주니어스 경기장과 땅고의 기원으로 유명한 라 보까(La Boca) 지구. 이 곳엔 까미니또(Caminito) 라고 불리는 작은 골목길이 있다. 이곳은 예전에 부두노동자와 이민자들이 살던 빈민촌으로 그 당시 집에 페인트칠 할 충분한 돈이 없어 페인트가 남을 때마다 이색 저 색으로 조금씩 칠하던 것들이 특징이 되어 지금은 이렇게 예쁘고 특색 있는 지역 색으로 변하였다. 레스토랑 앞에는 무명의 땅고 댄서 들이 쉴새 없이 공연을 하고 또한 그들과 함께 사진도 찍을 수 있다.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보카 주니어스 경기장이 있으니 둘러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경기가 있는 날 찾아 가는 것.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의 축구 열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현재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부유층들이 거주하고 있는 레꼴레따(Recoleta) 로 가보자.

 

  이곳에는 아르헨티나 최 상류층만이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레꼴레따 묘지(Cementario de la Recoleta) 가 있다. 이곳은 아르헨티나의 유명했던 대통령 페론과 그의 부인 에비타의 묘지를 비롯하여 아르헨티나의 유명 인사들과 최 상류층의 묘들이 모여 있는 공동묘지. 자칫 으스스해 보일 수도 있지만 유명한 관광 포인트 중 하나로 많은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이는 곳이다. 이곳의 1평도 안되는 작은 묘지 터를 얻는 데만도 5억 원 이상이 필요하니 일반 시민들은 꿈도 못 꾸는 최 상류층들의 사후 안식처가 된 곳.

 

 

Recoleta [도시내 최고급 공동묘지]

 

  그리고 만약 일요일에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방문 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은 바로 산 텔모(San Telmo) 벼룩시장이다. 일요일만 되면 산 텔모 거리는 차량을 통제하고 1km 가 넘는 거리가 온통 사람과 상인 천지의 벼룩시장으로 변한다. 사고자 하는 물건이 여기에 없다면 아르헨티나 전역을 돌아도 못 구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말 갖가지 물건들을 다 팔고 있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보이는 거리의 예술가들의 퍼포먼스까지, 새로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말을 맛볼 수 있는 이 시장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관광에서 놓쳐서는 안될 핵심 포인트.

 

 

 

*San Telmo Market[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산 텔모 거리의 시장]

 

  마지막으로 땅고 공연 및 수많은 예술공연들을 값싸게 보고 싶다면 이곳을 찾아가는 게 좋다. 티켓박스는 7 9일 대로의 오벨리스꼬 근처에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전역에서 공연하는 각종 콘서트나 오페라 뮤지컬 등 예술공연을 최고 50% 할인 된 가격에 볼 수 있다. 이곳에 가면 각종 공연정보도 얻을 수 있으니 화려한 예술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양질의 공연을 저렴하게 감상하면 좋을 것이다 

 

 

 

*Ticket Box[7 9일 대로에 있는 티켓박스]

 

  이 외에도 언급하지 않은 수많은 볼거리 즐길 거리들이 있어 몇 일을 머무른다고 해도 아쉬움 이 남을 것이다. 이 기사에서 언급했던 것은 정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부의 모습에 불과하다. 문화와 예술, 그리고 스포츠 등 다양한 매력을 가진 이곳, 부에노스아이레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여전히 매력적인 이 도시를 두 발로 직접 걸으며 찬찬히 둘러 보는 것은 어떨까. 화려하고 고풍스런 이 도시의 매력에 푹 빠질지도 모른다.

 

 

 

 

- 영현대 글로벌 대학생 기자단 7기 해외 기자 정종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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