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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다리로 핀란드를 전세계에 알린 영웅! 파보 누르미!

작성일201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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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2011 9월 우리나라는 제 13회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개최로 들썩이고 있다. 우샤인 볼트와 같이 올림픽 때 TV로만 보았던 육상스타들이 하나 둘씩 우리나라로 모이고 있으며 이것만으로도 화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인 기록을 가지고 있는 스타들이지만 한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 꼽기에는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제1, 10회 육상 선수권 대회 개최지 핀란드에는 육상으로 전세계에 핀란드를 알린, 스타 이상의 의미로 다가 오는 사람이 있다. 어쩌면 그가 있었기에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의 원년 대회와 10회 대회 2번다 열었을 수도 있다. 그의 이름은 바로 1920년대 육상무대를 제패하였던 파보 누르미 이다.

 

 

파보누르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마이클 펠프스가 금메달 11개를 따기 전까지 9개로 최다 올림픽 금메달 보유자의 기록을 갖고 있던 선수이다. 그의 첫 등장은 핀란드의 등장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소련 등 주변국의 간섭과 침략을 많이 받았던 것처럼, 스웨덴과 러시아 중간에 끼어있는 위치로 많은 침략을 받았다. 1917년 러시아 제국이 공산주의 혁명으로 핀란드이름의 국가로 독립하였다. 이렇게 국가가 성립되지 얼마 안되었던 시기에 파보누르미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1920년 벨기에에서 열렸던 앤트워프 올림픽에 첫 출전하여 핀란드 이름으로 3개의 (10,000M, 크로스 컨추리 개인, 단체) 종목에서  금메달 3개와 은메달 1개를 따며 전 세계에 신생국가 핀란드를 알리기 시작하였다. 그가 금메달을 따고, 수여를 받을 때마다 핀란드 국기가 단상의 맨위에 게양되었고, 올림픽경기장에는 핀란드 국가가 울려 퍼졌다. 이를 통해 세계인들에게  핀란드라는 국가의 존재를 처음 알리게 된 것이다.

 

 

 그의 동상에 작성 되어 있는 그의 기록

(9개의 금메달, 3개의 은메달, 22개의 세계 신기록)


 

 이렇게 시작된 파보 누르미의 금메달 행진은 1924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었던 올림픽에서도 멈추지 않았다. 1924년 파리는 유난히 더운 여름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스페인의 한 선수는 크로스 컨트리 종목에 참가하여 달리는 도중 사망하는 등 달리기에는 최악의 조건에서 개최된 올림픽이었다. 이러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핀란드 육상 대표로 경기에 출전하여 5개 종목(1500M, 3000M, 5000M, 크로스 컨트리 개인, 단체)에서 금메달 5개를 단 5일만에 휩쓸어 버리는 기염을 토한다. 이 떄부터 파보 누르미에게는 달리는 인간기계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 그는 달리는 인간기계라는 별명처럼 1920년대 육상 선수로는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것이다. 이에 1928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렸던 올림픽에서도 31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금메달 1(10000M)와 은메달 2(3,000M 장애물, 5000M)를 수상하였다. 그의 레이스는 계속 이어질 줄 알았다.

 

 

같은 대회 선수가 무더위로 사망할 정도로 힘든 레이스에서도 그는 금메달을 수상하였다.

 

하지만 1932 LA 올림픽에서는 그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LA올림픽 개최전 열렸던 미국 대회에 초청받아 규정이상의 돈을 받아서 뛰었다는 이유로 출전 금지 처분이 내려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 명령은 핀란드를 한 때 지배하기도 하였던, 바로 옆나라 스웨덴 출신의 IOC 부회장 지그프리드 에드스토룀이 내린 결정이여서 많은 논란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손기정선수가 일제강점기시절 1936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을때, 금메달 수여식 때 월계관으로 일장기를 가렸다고 징계를 받은 것처럼 불리한 처우를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1952년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렸던 올림픽에서 핀란드는 자국의 성화봉송 주자를 파보누르미를 선정하였다. IOC측에서는 이러한 핀란드의 봉송주자 선정을 받아들이고 파보누르미가 성화봉송을 하면서 명예회복이 이루어졌다.

 

 

 

<- 1952 파보누르미의 성화 봉송하는 모습

 

 

 

 

 

 핀란드 화폐에 나왔던 파보누르미(좌), 그를 기리는 우표(우)

 

 그는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12살부터 생계를 부양해야되는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었고, 이러한 가정환경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그의 능력을 살려 달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돈을 받고 뛰었다고 그의 달리기를 라고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능력을 살려 금메달을 얻음으로써 독립 후 얼마 안되어 혼란스러웠던 핀란드를 하나로 뭉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가 뿔뿔이 흩어진 핀란드를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구심점이 되었던 것이다.

 

핀란드 헬싱키 올림픽 스타디움에 위치한 그의 동상은 달리고 있다.

 

그는 1974년에 이 세상을 떠났지만 헬싱키 올림픽 스타디움 앞에서 있는 그의 동상은 아직도 올림픽 스타디움을 보고 달리고 있다. 파보누르미는 "마음이 모든 것이다. 고무 같은 근육들까지도. 내가 나인 것은 모두 마음 떄문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이러한 그의 말처럼 그의 마음이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핀란드 국민의 마음 속에 남는 것이 아닐까 그는 핀란드 사람들의 국민적 영웅이자 우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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