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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만난 문학의 거장들.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작성일2011.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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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19세기 러시아는 문학이 가장 빛을 발한 시대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초 고전주의 문학의 시대가 끝나고 새롭게 유럽에서부터 건너온 개인의 감성을 중시하는 감성주의가 시작되며, 낭만주의 문학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 비현실적인 낭만주의를 거부하고 새로운 리얼리즘, 현실주의가 등장한다. 러시아의 현실주의 문학의 시대를 대표하는 푸슈킨이 러시아 문학을 서구문학에 비해 뒤쳐지지 않을 만큼 끌어올리는 러시아 문학의 발전을 보여주었다. 이후, 1860년대에 접어들면서 러시아 문학에 한 획을 그은 문학의 거장들이 등장하게 되면서, 러시아 문학은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바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이들은 러시아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떠오르게 된다.

 

 비단 러시아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러시아 문학계의 양대산맥인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들이 풍유하던 19세기를 넘어서 현재까지도 사회적, 예술적 측면에서 현대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톨스토이의 경우 그가 죽고 나서 불과 2년 후, ‘Departure of a Grand Old Man’이란 제목의 영화가 만들어진 것을 시작으로 이후에 ‘How Fine, How Fresh the Roses Were’, 르게이 게라시모프 감독의 ‘Leo Tolstoy’가 제작되었다. 최근에는 2009년 개봉된 영화 톨스토이의 마지막 인생 The Last Station’은 그 동안 조명 받지 못했던 톨스토이의 말년 인생을 비추며 그가 추구했던 인생관을 엿보게 만들었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도스토예프스키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숭고하고, 병적이고, 어린아이 같은 순진함이 혼합되어 있는 감동적인 자극을 바로 느낄 수 있었던 사람이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사람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모스크바 마린스키 빈민 병원 의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공병학교를 졸업했지만 문학의 길을 선택한 그는 '가난한 사람들'로 러시아 문학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러시아 문학의 두 거장이지만 그들의 삶은 완전히 달랐다. 공상적 사회주의 경향을 띤 페트라셰프스키 모임에 나가기 시작한 도스토예프스키는 벨린스키의 편지를 낭독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지만 극적으로 사형이 취소되어 유형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로 그는 4년간 형을 받은 뒤, 그의 작품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그의 대표작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와 같은 명작이 나오게 되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박물관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위치해있다. 이곳은 그가 대표작 죄와 벌을 집필했던 실제 장소를 박물관으로 전시해놓은 곳이다. 그의 인생이 담겨있는 그의 작품 처럼, 이 곳에서도 그의 인생 중 한 부분을 단편적이나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 진리이다. 음주가 선행이 아닌 것쯤은 나도 알고 있다. 이것은 한층 더 명백한 진리이다. 그러나 빈곤도 동전 한푼 없는 빈곤은 죄악이다. 가난할 때만 해도 점잔을 빼고 있을 수 있지만 한푼 없는 빈털터리가 되는 날엔 스스로 자신을 모욕할 각오가 없이는 도저히 살아갈 수 없다. 그래서 술집이란 것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가장 큰 행복이란 유한한 생명체가 무한한 생명의 근원에로 돌아가 절대자의 신성(神性)에 접근할 때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침없이 남을 비난하기 전, 먼저 자신을 살리는 법부터 찾아야 한다.

 

고뇌는 위대한 자각과 깊은 심정을 가진 사람에겐 항상 필연적인 것이다.

 

고뇌를 거치지 않고는 행복을 파악할 수 없습니다. 황금이 불에 의해 정제되는 것처럼 이상도 고뇌를 거침으로써 순화되는 것이다. 천상의 왕국은 노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괴로움과 번민은 위대한 자각과 심오한 심정의 소유자에겐 언제나 필연적인 것이다.

 

나는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나는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나는 왜 내가 존재하는지, 내가 어떤 소용이 있는지도 모른다. 단 하나 확실한 것은, 내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모르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죽음이다.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 박물관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위치하고 있는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를 기리는 박물관이다. 이 박물관은 톨스토이의 사망 1주기를 맞이하여 작은 전시회를 마련했던 것이 계기가 되어 박물관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톨스토이가 쓴 원고와 편지 외에 레핀 등 화가의 서명이 있는 톨스토이의 초상화와 톨스토이의 육성이 녹음된 레코드 등이 전시되어 있다.

 

톨스토이 집 박물관은 말 그대로 톨스토이와 그의 가족이 20년간 살았던 실제 집을 박물관으로 만든 것이다. 톨스토이는 그의 작품, ‘부활이 바로 이 곳에서 완성되었다. 박물관은 총 2층으로 되어있는데 톨스토이가 글을 쓰던 책상, 펜을 비롯한 4천여점의 톨스토이의 소장품이 보존되어 있다. 집 앞에는 정원이 있어 넓고 인상적이다.

 

 

 

 톨스토이는 상당히 키가 컸다. 때문에 그의 작업실은 그가 얼마나 키가 컸는지 알려준다. 높은 책상에 비해 낮은 의자. 톨스토이는 바로 여기 앉아서 그의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실 또한 넘어갈 수 없다. 톨스토이는 남은 인생을 이 곳에서 글을 쓰며 보냈다. 노년기에 접어들며 그의 시력도 점점 떨어졌던 것이다. 시력이 좋지 않아 책상을 최대한 자신의 눈과 가깝게 두려는 이유에서 책상과 의자의 차가 이렇게 심해진 탓도 있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집을 구경하면서 톨스토이가 상당한 재력가 집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집 곳곳에는 고급스러운 가구들과 장식품들로 꾸며져 있었으며 그의 집에서 근무하던 하인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부자로 평생을 살았지만 서민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마음까지 훔칠 수 있었던 그의 글솜씨가 그를 러시아 문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도록 만들어 주었다.

 

 

 톨스토이가 만찬을 즐겼던 거실. 이곳에서 우리는 톨스토이의 음성까지 들을 수 있었다. 톨스토이가 자신의 집에 와 준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이야기하는 내용이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도 교훈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 이야기는 바로 지금 우리에게까지 진심이 전해지는 내용이었다.

 

  '젊을 때 놀지말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며 정진하라.'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른들의 말씀은 똑같은 것 같다.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는 톨스토이. 러시아 문학의 거장 톨스토이까지 이런 말을 제자들에게 했다니, 옛 어른들 말씀 틀린 것 하나 없다고 했다.

 

 

 러시아 문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두 거장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와 소통하고 있으며 아직도 우리 곁에 숨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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