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Trujillo[뜨루히요], 치무 왕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작성일2012.02.21

이미지 갯수image 15

작성자 : 기자단

Trujillo(뜨루히요), 치무 왕국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곳.

 

달의 신이 군림하던 치무왕국의 도시, 페루의 Trujillo(뜨루히요), 끝없이 펼쳐진 사막과 또 그 앞에 펼쳐진 망망대해, 파도가 몰아치는 대해(大海) 앞에서 삶을 개척해야 했던 그들의 삶. 이곳에서 달은 그들을 다스리는 신이자 조물주였다. 그들에게 달은 태양보다 강한 존재였다. 뜨루히요의 고고유적지인 찬찬(Chan Chan)은 바로 이 번영했던 치무 왕국의 수도이다. 햇볕에 말린 흙벽돌(어도비)로 지은, 남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흙벽돌의 도시이기도 하다. 찬찬은 13∼15세기 중반에 크게 번성하여 지금의 페루 북부 연안과 중앙 연안을 지배한 치무 왕국의 수도로서 약 20㎢의 면적을 가지고 있었다. 한때 인구가 10만명에 이를 정도로 발전했던 대 제국이었지만 1450년 태양의 신을 섬기던 잉카제국에게 점령당하였다. 700년간 이어졌던 치무왕국의 도시는 스페인 식민지 시대 이전에는 남아메리카 최대의 도시였다.

*찬찬 제국의 전체 모습을 그려놓은 모형도. 엄청난 크기를 자랑한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서 북서쪽으로 약 570km 떨어진 도시 뜨루히요. 리마에서 버스로 약 10시간이 걸리는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나를 맞이한건 황량한 사막과 또 끝없이 펼쳐진 망망 대해였다. 그 곳에서도 또 버스로 한참을 달렸을까, 저 멀리선가 엄청난 크기의 흙 모래 건축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둔탁하며 거친 외관, 주변의 흙모래 둔덕과 다를 바 없는 색깔과 질감이다. 하지만 매끈하게 정리된 표면은 사람의 손길이 거쳐 간 건축물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엄청난 높이의 성벽 외관, 전부 흙으로 만들어져 있다.

찬찬 고고유적지라고 쓰인 다소 휑뎅그렁한 간판이 세워진 정문.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단 하나였다. 왕족들만 들어갈 수 있도록 출입을 차단하기 위한 폐쇄적인 건축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성벽으로 가로막힌 기다란 통로들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성벽의 높이는 무려 10m. 바람소리조차 벽에 갇힌 듯이 고요한 적막감만 흐른다.

*어딘가 쓸쓸해 보이는 유적지의 입구이다.

 

*순전히 흙으로만 쌓아 올린 대담장.

*이러한 패턴의 흙담장들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찬찬 유적지의 대표적인 특징은 끊임없이 연결되는 커다란 마름모 모양으로 구멍 난 흙벽돌이다. 낚시 그물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다. 직물을 짜놓은 듯 구불구불 이어지는 부드러운 다이아몬드의 흐름이 언뜻 파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당시에는 하얀색으로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사방으로 펼쳐진 이 굴곡은 성벽을 제외하면 사실상 터만 남은 옛 흙모래 유적지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었다.

*벽을 따라 끝없이 이어진 장식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사막인 이곳에서 바다가 치무왕국에 미친 절대적 영향력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담벼락의 부조 장식물은 펠리컨과 생선, 해달 같은 해양 관련 생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벽에 길게 늘어선 동그라미 형상은 달을 상징하는 문양이다. 벽의 이곳 저곳을 장식하고 있는 문양 중에는 파도 같은 흐름을 타고 서로를 마주 보는 방향으로 나열된 물고기도 있었다.

*성벽을 따라 끊없이 새겨진 여러 장식들

 

*성 안에 있는 대 저수지. 제사를 위해 사용되었다.

 

*대정원의 모습. 큰 행사가 있을때 이곳에서 집회를 가졌다.

 

* 왕과 귀족들은 이렇게 화려한 금 장식을 하고 높은 자리에서 살아갔다.

 

 

위기에 처한 찬찬 유적

 

찬찬 유적지는 1986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됨과 동시에 위기유산 목록에도 올랐다. 멸망한 왕국을 들쑤신 도굴꾼들의 유적 훼손은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과거가 되었고 더 심각한 문제는 풍화작용이다. 비라고는 오지 않던 이 지역에 폭우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흙벽돌이 녹아 내리고 있다. 8∼10년 주기로 찾아오던 엘니뇨현상은 기후변화의 여파로 이제 매년 찾아오고 있다.  점점 양이 늘어나는 빗물에 흙 벽돌은 금이 가고, 귀퉁이가 떨어져 나가고, 허물어져갔다. 물이 빠지는 하수 시스템이 없는 옛 왕국은 빗줄기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 치무 왕들의 묘지. 내리는 비 때문에 훼손이 심하여 이제는 위를 막아 더 큰 피해를 예방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위기유산 등재 이후 복구 시도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 현장에는 흙 벽돌 유적이 비를 피할 수 있도록 곳곳에 천막이 쳐져 있었다. 지금까지 유산 복구를 위해 투자된 자금은 850만 달러. 유네스코 문화유산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전문가들도 수시로 오가며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페루 문화재청은 찬찬 유적지 복구 및 보존을 위한 10년 기한의 마스터플랜을 작성해 시행 중이다. 현재 이곳에 상주하는 복구 인력은 300여 명. 고고학 전문가 15명이 팀을 이끌고 있다.유적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 교육프로그램과의 연계도 꾸준히 시도 중이다. ‘찬찬 시민 프로그램은 초등학생들이 유적지에 와서 직접 흙벽돌을 만들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예산 부족은 여전히 큰 걸림돌이다. 2000년에 만들어진 마스터플랜의 집행 자금은 페루 경제가 성장세를 탄 2007년이 돼서야 지원되기 시작했다. 유적지의 상당 부분에는 여전히 값싼 땜질식 처방이 이뤄지고 있다. 흙벽돌을 본떠 위에 살짝 덧댄 황갈색의 플라스틱 벽돌이 대표적이다. 벽의 부조문양이나 마름모꼴 장식 일부에 이 플라스틱 벽돌이 다른 색깔과 질감으로 어색하게 섞여 있다. 가이드는 기후변화로 엘니뇨현상이 잦아지면서 폭우 피해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며 이런 땜질식 처방이라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때는 번영했던 이 대 제국은 현대 사회의 기후변화 앞에서 그 세력을 다해가고 있다. 조금씩 작아지고 있다.

 

*세월과 기후의 영향 속에서 점점 그 모습을 잃어가는 찬찬 문명.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지만 동시에 위기에 처한 세계문화유산이 된 찬찬 문명. 이곳 이외에도 급변하는 기후와 환경 오염 때문에 이렇게 역사적인 옛 유적들이 그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정부차원에서도 대책을 세우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 힘든 것이 현실. 환경이 파괴되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지만 아직도 우리의 피부로 느끼기에는 너무나 멀어 보인다. 현재 우리의 문화와 삶도 환경변화 때문에 점점 바뀌어 가고 있듯이 지금 현 시대를 위해, 또 우리의 역사적 흔적을 보아야 할 저 미래 세대를 위해서라도 다시한번 멀게만 느껴졌던 환경보호를 생각해 보는것이 어떨지. 작아지는 찬찬문명을 보며 든 새로운 생각이다.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