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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가 사랑한 남자, 플로리스트 '케빈 리'

작성일2012.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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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미국 캘리포니아 남서부 LA에 위치한 고급주택가 베버리힐즈는 유명 할리웃 스타, 정치인, 대 부호 등 부와 명예를 지닌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오늘도 홈파티, 결혼식 등의 각종 행사가 행해지고 있다.

 

 

 

- 할리우드 최고의 배우 브래드 피트와 플로리스트 케빈 리

 

 

케빈, 역시 당신이야. 최고였어! “ -브래드 피트

케빈, 이번에도 맡아서 해줄거지" -키아누 리브스

 

까다롭기로 소문난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들. 그들을 만족시키다 못해 감동시킨 장본인이 있다.  미국이 인정한 최고의 플로리스트이자 파티 플래너, '케빈 리'를 만나보자.

 

 

범상치 않은 첫 만남, “ 선생님, 패션센스가 대단하신데요!! “

 

 

- 케빈 리의 작품들.  동서양의 느낌이 모두 묻어나는 묘한 매력이 있다.

 


 

2012 3 4일 오후 5 30.

사전 연락을 취하는 내내 호의적인 태도로 인터뷰 의사를 밝혔던 그는, 정확히 약속시간에 맞추어 본인의 사무실에 도착하여 기자단을 맞이했다. 그의 환영을 받으며 도착한 LA Premier 사무실은 그가 작업한 작품들로 가득했다.

 

  진한 메이크업과 독특한 헤어스타일, 깔끔한 수트차림의 케빈 리.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케빈 리와의 공식적인 첫 만남. 그의 개성 넘치는 외모는 모두를

사로 잡았다. 특히 진한 메이크업과 깔끔한 수트차림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50대 라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완벽한 수트 핏을 자랑했다.

 

일명 수트빨을 유지하기 위해 그는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음을 밝히기도 했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더불어 패션, 음식, 가구, 자동차에 이르기 까지 온갖 종류의 잡지를 두루 섭

렵하고 있다는 케빈 리!

 

그에게 있어 잡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샘솟는 원천이자, 본인의 커리어에 있어 가장 기본이라고 밝혔다.

 

 

◆ ‘객기아닌 지독한 독기로 버틴 20-30대 시절.

 

" 케빈, 너 마리화나 하지 "

 

-  대놓고 사서고생을 경험한 20-30대 시절을 회상하며 그는 살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20대 시절 꽃 배달 일을 할 때 늘상 잠을 못자 충혈된 눈으로 생활을 했던 그에게 주변인들이 자주했던 말이다.  실제로 그는 정말 고생스러운 20-30대 시절을 보냈다고 했다.한국에서의 유복한 예고생 생활을 뒤로한 채 무작정 미국으로 떠난 24살의 그는 본인을 지독하게 강하게 만들었다.한국에서는 고생 한 번 해본 적이 없던 케빈 리. 그는 삶을 위해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리고 그가 시작한 일은 바로 꽃배달이었다. 하나로는 부족하다고 느껴, 저녁에는 밤

을 새워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숨만쉬며 일을하며' 살 던 케빈 리. 그가 본격적인 플로리스트의 길에 들어서 게 된 것은 다름아닌 그의 고용주 였던 한 여성 때문이었다

 

" 가끔 꽃가게에서 손이 모자를 때 포장을 하거나, 장식을 돕곤 했었죠. 어깨 넘어 배운 저의 재능을 그 분이 알아봐 줬어요. 플로리스트가 되보라고요. 시간을 내서 꽃꽂이 연습을 할 것을 권유했지만 거절했죠. 내게 주어진 일을 미뤄가며 재능을 쫓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여겼어요. 하루에 1 시간을 10분씩 쪼개서 잤습니다.  꽃배달을 갈 때엔 항상 바늘을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며 잠이 올때마다 허벅지를 찔렀어요. 나중엔 하도 찔러서 감각이 없더라구요."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을 한 그는 결국 플로리스트 경연 대회에서 입선 하였고, 그 경험을 발판삼아 자신의 이름이 달린 조그마한 꽃집을 경영하며 점점 실력을 쌓았다.

 

" 매일 매일 다른 디스플레이를 했어요. 신선함과 개성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죠. 하도 가게 모습이 바뀌니까 사람들이 처음엔 신기해 하다가, 나중엔 결국 주문을 하러 오더군요. 그렇게 점점 입소문이 나며 유명해 지기 시작했죠. "

 

그렇게 입지를 쌓은 그는 특유의 감각과 성실함을 무기로 열심히 사업을 했다. 그러던 중 프랭크 시나트리의 장례식 꽃 장식을 맡았고, 그는 프랭크 시나트리의 부인으로 부터,

 

" 절망과 슬픔으로 가득한 장례식을, 당신이 아름답게 바꾸어 주었습니다." 라는 극찬

을 받는다. 이후 점점 그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리고 그는 당당히 미국 최고의 부촌 '베버리 힐즈'에서 최고의 플로리스트로 인정받았다.

 

 

 

◆ 끊임없는 도전과 노력, 겸손이 만들어 낸 ‘1인자 타이틀’,

   그리고 마음 한켠에 새겨진 '한국' 이라는 이름.

 

 - 인터뷰 질문을 진지하게 경청중인 케빈 리

 

케빈 리는 현재 미국의 유명한 시상식(OSKA, GRAMMY )파티의 총 디렉터이자, 미국 최고의 부촌 베버리 힐즈에서 활동하는 웨딩 플래너 및 플로리스트로 유명한 인사가 되었다. 이미 업계 최고의 1인자 자리에 오른 . 하지만 그는 단순히 자신이 가진 재능, 철저한 노력만으로 현재의 자리에 까지 온 것이 아님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본인이 여태껏 이룬 성과에 대한 가장 큰 비결로 겸손을 꼽았다.

 

나는 항상 손님을 대할 때 나의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을 다해요. 진심과 정성이 담기지 않고 한 일로 번 돈은 그 만큼 쉽게 빠져나가 거든요., 그리고, 항상 내 자신을 낮추고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해요. 내가 얼마나 성공을 했건 간에, 항상 나에겐 손님이 우선이에요. “

 

오늘날 미국 최고의 파티 플래너 케빈 리를 만들어낸 원동력은 재능과 노력을 넘어선 변치 않는 겸손함 이었다.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파티 플래너이자 성공한 사업가로서 인생 최고의 순간을 보내고 있는 케빈 리. 이제는 본명 이근하라는 이름 보다 케빈이라는 닉네임에 더 익숙한 그는 마음 한 켠에 항상 잊지 못하는 무엇인가가 있다고 했다.

 

그 것은 다름아닌 한국에 대한 그리움 이었다. 피나는 노력으로 갈고 닦은 본인이 만든 무대, 본인이 주인공이 되어 살고 있는 삶의 터전에서도 여전히  한국의 따뜻한 정서와 가슴 깊이 베어있는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는 못한다고…  

 

 

◆ “ 선생님, 제 결혼식 피로연 맡아 주실 거죠

 

                                              -  시종일관 즐겁게 진행된 인터뷰. 기자단도 케빈 리도 모두가 활짝 웃었다.

 

치열하고 고독한 삶, 그리고 가슴 깊은 곳에 한국을 묻고 살아 온 케빈 리. 우여곡절이 가득했던 삶을 살아온 그였지만, 기자단을 능가하는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모습에 인터뷰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선생님, 5년 후에 결혼을 하고 싶은데.. 그 때 연락하면 피로연 파티 해주실 수 있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Of Course!! 물론!” 이라고 흔쾌히 대답하는 센스로 인터뷰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긍정적인 마인드와 철저한 자기관리, 그리고 확실한 선택과 혼신을 다한 몰입으로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남자. 무한한 열정 속에 담긴 삶에 대한 진중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무조건 큰 꿈을 가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엇이 되었던 간에 자기가 선택한 을 믿고 그 분야의 최고, 1인자가 되겠다는 일념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해야 해요. 이 것 만큼은 내가 최고다! 라는 생각으로 노력하는 자세가 정말 중요해요. 그러다 보면 성공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되어 있거든요. “ - 케빈 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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