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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조국을 찾아서 - 팔레스타인의 외침

작성일201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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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분쟁은 땅의 주인이 누구인가에서부터 시작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라는 문제처럼 답을 확실히 내릴 수 없는 문제다. 다만 이스라엘의 침입은 강압적 힘이 개입된 평화적이지도, 민주적이지도 않은 방식이었다. 그렇기에 팔레스타인의 고국을 향한 외침이 더 처절하게 들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들이 왜 이토록 간절히 원하는지 먼저 이 지역에 얽힌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자.

 

 

 

왜 이렇게 되었는가

 

 유대인이 가나안 지역(팔레스타인 서쪽 해안지역, 요르단의 서북 지역을 가리키는 지명.)에 나라를 건설한 시기는 모세가 유대인을 이끌고 이집트 탈출한 기원전 13세기경이다. 그로부터 1400년간 이스라엘은 가나안을 지배하였지만, 기원후 135년, 로마제국의 침입과 강제이주계획에 의해 유대인은 가나안 땅에서 추방되어 유럽 각지로 분산되었다.

 

 유대인이 추방된 이후 가나안 땅은 팔레스타인이 지배해왔지만, 19세기 이후 유럽에 거주하는 유대인에 대한 거부감이 가중되고 대대적인 반 유대 운동이 전개되면서 유대인은 가나안 땅에 그들의 조국을 건설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또한 시오니즘(Zionism,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박해를 유대인 국가의 건설로 극복하려는 운동을 말한다. 시온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고어로, 팔레스타인을 선조 이후의 약속의 땅으로 본다.)까지 일며 이스라엘 건국은 더욱 가속화된다.

 

 

분할되기 전 팔레스타인의 모습이 담긴 지도다. (사진 조수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전략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 아랍인과 유대인을 이용하고자 했다. 1915년 1월부터 1916년 3월까지 열 차례에 걸쳐 팔레스타인 지구에 아랍인의 독립 국가를 창설해준다는 약속을 한다.

 

 그러나 영국은 이러한 아랍국가 창설약속과 동시에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유태인들을 미국의 대독일 전쟁 참여를 유도하고, 유태인 재벌들의 재정지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1917년 11월 발포어 외무장관의 명의로 영국 국적의 저명한 유태인 로드쉴드에게 서한을 보내 유태인들의 국가를 팔레스타인 지역에 건설하는 것을 지지하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약속을 하기에 이른다. 한 지역에 두 개의 정부수립을 약속한 영국의 무책임한 태도는 가나안지역에 있어서 비극을 초래한 씨앗이 되었다.

 

 1947년 양측의 대립이 격렬해지자 영국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을 UN에 떠넘겼고, 이에 따라 11개 국가로 구성된 UN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UNSCOP)가 설치되었다.

 아랍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1947년 11월 29일 제2차 유엔총회에서 표결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태인 구역으로 분할한다는 안건이 채택되었다. 유태인들은 이를 기꺼이 수락하고 마침내 1948년 5월 14일에 이스라엘 국가를 수립하였다.

이후 이스라엘은 네 차례의 중동전쟁에서 모두 승리를 거두며 시나이반도와 골란고원, 요르단 강 서안 등 무려 본토의 5배에 달하는 광활한 지역을 점령하였고, 이로 인해 100만 명에 달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은 난민이 되어 떠돌게 되었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고단함을 표현한 벽화다. (사진 조수현)

 

 

 통곡의 벽은 이 벽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성전의 서쪽 일부라 여겨 '서쪽 벽(Western Wall)'이라고도 불린다. 이슬람과 유대교 모두에게 이곳은 중요한 성지다. 유대인들과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 사이의 오랜 분쟁거리로 남아있다. 유대인들에게 이 벽은 '약속의 땅'인 이스라엘의 상징이지만,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에게 바위 사원과 알 아크사 모스크에 속한 이슬람 성지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예루살렘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으로 분할되면서 이 성벽은 요르단에 속하였으나, 1967년 6월의 제 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구시가지를 점령하여 성벽은 이스라엘로 넘어왔다.

 

 

통곡의 벽을 형상화한 모형이다. (사진 조수현)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을 외치다.

 

 이러한 역사적 종교적 배경으로 인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분쟁의 골은 깊다. 팔레스타인인들이 그들의 땅에서 쫓겨난지도 어느덧 60여 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들의 외침은 멈추지 않고 있다. 요르단에 머물고 있는 인구의 60~70%는 요르단인이 아닌 팔레스타인인들이라고 한다. 요르단 대학교 내에도 역시 수많은 팔레스타인 출신의 학생들이 있다. 이들의 조국을 되찾기 위한 외침을 들어보자.

 

 이슬람의 성지인 알 아크사 모스크에 보내는 메시지를 학생들이 적고 있다. 각각의 염원과 그들의 성지가 잘 보존되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명함을 나눠주고 있는데 ‘아크사 모스크는 벽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다.’라는 뜻이다.

 

 

알 아크사 모스크에 보내는 메시지를 쓰는 학생의 모습과 요르단 대학생들에게 나눠준 명함이다. (사진 조수현)

 

 

 10월 말, 팔레스타인 출신의 요르단 대학교 학생들이 직접 준비한 행사가 교내에서 3일간 열렸다. 그들은 그들의 조국과 주권을 되찾기 위한 그들의 부르짖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역사와 그들의 조국인 팔레스타인을 위해 애쓴 위인들의 소개, 그리고 팔레스타인의 모습을 담은 다양한 사진들 등 많은 전시물들을 볼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관련 행사장의 풍경이다. (사진 조수현)

 

 

 

이곳을 방문한 많은 학생들이 팔레스타인을 위한 애정이 담겨있고, 더 나은 미래와 해결을 바라는 소망이 담긴 메시지를 적고 있다. (사진 조수현)

 

 

 

 전시물들 중 많은 열쇠들이 눈에 띄었다. 이 열쇠가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요르단 대학교 학생인 지하드 씨가 그 궁금증을 해결해 주었다. 수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일단 조국을 떠나 주변국으로 많이 피신을 갔다. 그들은 머지않아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집 열쇠를 챙겨 떠났다. 그러나 60년이 넘은 지금까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집 열쇠는 아들에게, 또 그 아들에게 대물림 되어 3대를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시장 곳곳을 함께 돌며 자세하게 배경과 상황 등을 그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지하드 역시 할아버지께서 물려주신 집 열쇠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고, 또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 역시 가지고 있다. 그의 목소리에서는 돌아갈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 그리고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

 

외국인 학생들에게 예루살렘의 역사를 설명 중인 지하드 씨의 모습. (사진 조수현)

 

 

 지하드 씨 이외에도 행사를 주최한 다른 학생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어서 이곳을 방문한 외국인 학생, 또는 현지 학생은 곳곳을 안내받고 팔레스타인의 상황에 대해 친절히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안내받는 학생들 역시 사뭇 진지한 자세로 그들의 설명에 귀를 기울이고 팔레스타인의 현실에 함께 공감하고 아파했다.

 

 

 

팔레스타인 출신의 요르단 대학교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안내하는 모습이다.

(사진 조수현)

 

 

행사장 가운데에 있는 모형이 눈에 띄었다.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예루살렘에 있는 아크사 모스크의 모습을 본 따 만들었다고 한다. 이곳은 무슬림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성지 중 하나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이곳을 파괴할 의도가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국교로 채택하고 있다. 그들은 아크사 모스크 땅 아래에 언제든지 이곳을 한 번에 허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놨다고 한다. 그들의 종교 이외에는 존중이란 없이 배척하는 태도를 볼 수 있다.

 

 

아크사 모스크의 모형을 만들어 행사장에 전시해 놓았다. (사진 조수현)

 

 

팔레스타인과 관련된 갖가지 기념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여기서 얻은 수익금은 가정형편이 어려운 요르단 대학교 학생을 위해 그들에게 장학금 형태로 쓰일 계획이라고 한다.

 

 

진열된 팔레스타인 기념품과 그것을 둘러보는 수많은 학생들. (사진 조수현)

 

 

 

 

외국에 나오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현재 요르단에서 생활하면서 몸소 느끼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돌아갈 대한민국이라는 조국이 있어서 여기서 지내면서도 외롭거나 불안하지 않다. 그러나 조국을 잃은 이들의 슬픔과 상실감은 얼마나 클까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이 평화를 되찾을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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