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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F 터키] 내가본 이스탄불, 여행 에세이

작성일2013.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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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여행지에서 얻은 순간의 생각과 감정을 담아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누군가는 사진기를 이용해서, 또 누군가는 의미 있는 물건을 손에 쥠으로써 언제든 아름다웠던 당시로 돌아갈 다리를 마련해둔다. 친하게 지내는 선배의 냉장고 한 켠에는 자신이 걸어왔던 세계 명소들의 마그네틱 기념품이 가득한데 그 안에 담겨있는 하나 하나의 이야기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만의 보물이다. 한번은 무심코 영국의 유니언 잭(Union Jack) 모양 기념품을 떼어냈더니 그가 런던 여행 도중에 우연히 만난 여인과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어 한 편의 멜로 영화를 보듯 푹 빠져버렸던 기억이 난다. 

 

  나는 변변한 카메라도 없고, 물건 모으는 데는 취미가 없는 편이라 주로 기록(記錄)하는 방법을 즐긴다. 이스탄불에서의 여정 중에도 늘 펜과 메모장을 지니고 다니며 내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부터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그려낸 6박 8일의 흔적들. 그 중 특별히 인상 깊었던 날들의 페이지를 토대로 여러분께 내가 본 이스탄불을 소개하고자 한다.

 

 
 


  오전 딜러샵 취재를 마치고 점심식사를 위해 아다날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널찍한 내부 규모와 종업원들의 친절함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이 곳의 맛을 기대하게끔 만들었다. 창문 밖으로 펼쳐진 눈 내리는 보스포루스 바다를 보며 감상에 젖어 있던 중, 하얗고 커다란 식탁 위로 접시들이 올라왔다. 우리의 식욕을 돋우기 위해 각양 각색의 에피타이저가 등장했는데 그 종류가 너무도 많아 놀란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조금 멀찍이서 보니 샐러드들이 모여 하나의 숲을 이룬 것 같았다. 음식 앞에서 흥분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조심스럽게 포크를 들고 하나, 둘씩 맛을 보았는데 무척 신선한 맛을 느끼자니, 비옥한 땅에서 자란 것들임을 단번에 느낄 수 있었다. 알아보니 터키는 땅이 워낙 넓어 기름진 땅에서 돌려짓기 농업을 하는 경우가 많고, 사계절이 뚜렷해서 밀 뿐만 아니라 야채와 과일이 사시사철 풍성하다고 한다.  
  



  놀라운 일들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한 종업원이 와서는 다 비운 접시는 치우고, 여전히 울창한 숲들은 조금씩 밀면서 무언가를 위한 공간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거대한 것이 올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곧이어 내 앞에 놓인 긴, 정말로 긴 빵은 나와 보스포루스 해협을 잇는 다리처럼 보였다. 그리고 빵을 들고 왔던 사내가 잠시 옆으로 비켜달라 나에게 양해를 구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뒤를 보자 고기를 꽂은 긴 창이 다가오고 있었다. 몇 명의 장정들이 끙끙 애를 써서 준비된 빵 위에 고기를 얹어 거대한 아다나 케밥을 완성시켰다. 거기에 궁합을 맞출 음료로 질 좋은 터키산 레드 와인까지! 나는 술탄이라도 된 듯 내 앞에 놓여진 행복을 만끽했다.



  후식으로 나온 전통 차이(Cay)를 마시며 곰곰이 생각하길 터키의 요리 안에는 그들의 삶 자체가 살아 숨 쉬고 있는 것 같았다. 풍성한 과일과 채소들을 보며 이 땅이 얼마나 축복받았는지를,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각종 요리들을 보며 대제국 시절의 품격을 조금이나마 가늠해볼 수 있었다. 문명 위에 또 다른 문명이 쌓이며 완성된 터키의 음식은 세계 3대 맛으로 꼽히기에 충분했다. 


 오늘 내가 본 이스탄불은 ‘대제국의 풍요로움’이다.  


  


 

  

 때마다 기도 시간을 알리는 외침(에잔, Ezan)이 하늘을 덮는 이곳은 국민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이다. 국교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겉으로 보이는 터키의 서구화 문명의 이면에는 이슬람 문화가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술을 마시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는 모습에서, 자유롭게 입지만 지킬 것은 지키는 그들의 패션에서 그들의 신 알라(Allh)의 시선을 감각할 수 있었다. 거리마다 우뚝 솟아있는 이슬람 사원 자미(Camii)가 마치 신의 파수꾼처럼 보이는 건 이 때문일 것이다.  

 


  

 개신교인이지만 에잔 소리에 왠지 모를 평안함을 느끼다 괜한 죄책감에 마음이 쓰이던 차에 목적지인 아야 소피아(Aya Sofya) 성당에 도착했다. 사실은 박물관으로 불리는 것이 맞지만 입에 붙지를 않아 관두었다. ‘드디어 만났다’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난 이 순간을 참으로 기다려왔었다. 웅장함과 섬세함을 모두 갖춘 비잔틴 건축의 최고봉, 사진을 보며 언젠가는 꼭 가보리라고 마음먹었던 바로 그 장소에 서게 된 것이다.
   


 

  

 신을 향한 손짓이 만들어낸, 본래는 알라가 아닌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을 위해 만들어진 이 성전의 위엄은 상상 이상이었다. 세상의 어떤 무신론자도 아야 소피아 안에서는 신이 없다고 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적 차이를 떠나 성전의 모자이크 성화(聖)와 건물 전체를 휘감고 있는 코란 문구들은 이 공간만이 가질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뿜어내며 그야말로 경이로운 광경을 연출해냈다. 서로 다른 두 존재를 위해 이렇게 두 문화가 공존할 수 있었던 건 정복자 술탄 메흐메드 2세의 아량 때문이리라. 파괴와 약탈의 끝을 보여준 4차 십자군과는 완벽히 다른 방법의 정복이었다.



 


  이렇듯 평화적으로 문화 공존을 이끌어낸 종교에 폭력이란 주홍글씨가 새겨진 것 같아 안타깝기만 했다. 무엇이 옳은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마음에 큰 물음표를 던져준 것만은 사실이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은 무엇이 정답인지도 모르면서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냥 그들을 멋대로 재단했던 건 아닐까. 마음이 무거웠다.  

  

 해가 저물고 돌아가는 길, 이 도시는 나에게 무엇이 그리 고민이냐는 듯 환상적인 야경을 선물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아야 소피아의 아름다움은 가슴 한 켠의 무거움을 들어내 주었다. 나도 모르게 하늘로 고개를 들어 감사를 표했다. 이 모든 것들을 우연이라 하기엔 힘들 터. 


 오늘 내가 본 이스탄불은 ‘신의 손길로 빚어진 도시’이다. 

 

 

 

   

 터키 사람들은 정이 많다. 나와 가장 먼저 친해진 터키인은 현지인 가이드인 ‘네집’인데 몇 번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방 서로 가벼운 장난을 칠 정도로 가까워졌다. 나의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어색한 기운이 감돈 적은 몇 번 있지만(그는 아주 영어를 잘한다), 문화적 차이를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에게 친근감이 느껴졌다. 네집에게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터키 사람들에게 비슷한 감정을,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동질감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혹시 이유가 있나 궁금하여 가이드님께 여쭤보았더니 터키에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정(情)문화가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리고 터키인들은 손님 접대에 아주 정성을 다한다고 한다. 차는 물론이고 각종 디저트를 줄줄이 내오는데, 손님도 열과 성을 다해 차려진 음식을 먹어야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 과연 ‘환대(歡待)’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가 아닐까 싶었다.
   


 

 

  

 오후에 이스티크랄 거리에서 준비해온 이벤트를 진행할 때는 너무 호응이 없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으나 기우였다. 친절한 시민들 덕에 정말로 즐겁게 일을 마칠 수 있었다. 아리랑을 수 차례 부르는 등 우리가 자꾸 무언가를 요구하는 바람에 귀찮을 법도 했지만 밝은 얼굴로 응해주었고, 심지어는 자신들도 하고 싶다며 직접 찾아오는 경우도 몇 차례 있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칸 카르데쉬’(Kan kardei, ‘피를 나눈 형제’라는 뜻)라며 따뜻하게 반겨주는, 함께 웃으며 강남 스타일 춤을 춰주는 그들. 터키를 괜히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는 게 아니었다.  


오늘 내가 본 이스탄불은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다. 

 

 
 

 

  
 지금 서울은 오전 세시 삼십 분 깊은 밤, 이스탄불은 오후 여덟 시 삼십 분 늦은 저녁이다. 보고 싶은 대상을 그리워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자, 달빛에 비친 보스포루스 해협이 가장 멋진 시간이다. 사진과 노트를 꺼내 들추어보니 아련한 그날의 추억들이 조금은 선명해진다. 나만의 다리를 건너 도착한 이스탄불은 여전히 황홀하다. 취업하거든 부모님을 모시고 꼭 다시 오겠노라 다짐 했던 곳. 사랑하는 그녀가 허락만 해준 다면 신혼여행을 떠나고 싶은 곳. 아 참으로 찬란한 도시! 

 오늘 내가 본 이스탄불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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