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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 영화제의 끝에서.

작성일2013.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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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사진=윤란)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베를린 장벽 붕괴가 있었던 베를린은 그 특유의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다. 동유럽 특유의 정리되지 않은 날것의 분위기와 서유럽의 깔끔하고도 세련된 분위기가 혼재되어있는 그 곳엔 수많은 그래피티가 그려진 벽들과 커다란 쇼핑몰이 나란히 서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베를린은 독일 그 어느 도시보다 예술적인 분위기와 현대적인 분위기가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이토록 멋진 도시 베를린에서 열리는 영화제는 어떨까 세계인들이 말하는 ‘3대 영화제’인 베를린 영화제, 칸 영화제, 베니스 영화제 중에서 가장 먼저 열리는 2월의 베를린 영화제가 2월 7일부터 17일까지 열렸다. 개막작이 시작되면서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 때의 베를린을 피해서, 영화제가 끝나가는 무렵인 15일에 베를린 영화제를 즐기기 위해 떠났다.





▲웹 사이트에서 빨갛게 네모가 돼 있는 부분을 확인하고 클릭하면 예매가 가능하다. (출처=베를린 영화제 공식 사이트 캡쳐)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이름은 ‘Berlinale(베를리날레)’로, 올해엔 벌써 63번째 축제를 맞았다. 유명한 해외 영화제이니만큼 티켓을 구하는 건 전쟁이라 해도 무방하다. 베를린 영화제 티켓은 현장 예매, 현장 구입, 인터넷 예매라는 3가지 방법으로 구매할 수 있고, 각 방법마다 표를 할당해놓았다.


첫 번째로 현장 예매의 경우, 축제가 시작되기 3일전인 2월 4일부터 예매가 가능하다. 모든 영화 상영 티켓은 상영일 3일 전부터 예약이 가능하니, 인기가 있는 작품은 무조건 상영 3일전 아침에 티켓 부스를 방문하는 것이 좋다. 

현장 구입은 당일만 가능하다. 현장 예매 부스는 Potsdamet Platz Arkaden(포츠다머 플라츠에 있는 쇼핑센터)에 있는데, 이곳에서는 상영 전날까지만 표 구입이 가능하다. 즉 내가 2월 16일에 상영하는 영화가 보고 싶다면 포츠다머 플라츠에서 이 표를 구입할 수 있는 건 15일까지다. 당일에 상영하는 영화 티켓은 무조건 상영관에 있는 티켓 오피스를 방문해서 구입해야 한다. 티켓 부스를 착각하면 영화 표를 구하기 어려워질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인터넷 예매는 베를린 영화제 공식사이트에서 2월 4일부터 가능하다. 매년 영화제 시작일 3일 전부터 예약을 받으니 예약 시작일엔 마치 수강신청을 하는 마음으로 웹 페이지를 켜놓고 기다려야 한다. 필자의 경우는 올해 가장 큰 기대작 중 하나인 ‘Before Midnight’ 예약을 마치자마자 매진되는 일을 경험하기도 했다. 해외 유명 스타들이 나오는 작품이나 수상 기대작은 5분에서 10분 정도면 매진이니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야 한다. 인터넷 예매는 티켓 한 장마다 수수료 1.5유로가 추가된다.




▲ 베를린 영화제의 마지막 3일동안 본 영화들. (출처=네이버 영화)



영현대 기자는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총 3개의 작품을 관람했다. 작품은 파노라마 부문에 초청된 이송희일 감독의 ‘백야(White night)’, 경쟁 부문에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Nobody’s daughter Haewon)’, 경쟁 부문에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이었다.

경쟁부문은 우리가 흔히 아는 수상 후보작들을 말한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작품중에서 금곰상, 은곰상 등 베를린 영화제를 대표하는 상이 수여된다. 파노라마 부문은 경쟁 부문은 아니어도 뛰어난 작품들을 소개한다. 주제가 다양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영화 감독들의 작품도 많아서, 많은 관객들이 주목하는 부문이기도 하다. 





▲ 쇼핑몰에 있는 티켓 오피스와 공식 물품 판매처의 모습. 항상 줄이 길다. (사진=윤란)


 


▲ 백야가 상영된 CUBIX 건물의 모습. (사진=윤란)



백야는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퀴어 무비로, 이미 작년에 한국에서 개봉했다. 한국에서 아직 ‘게이’라는 사람들은 이해 받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백야는 처음엔 단순히 성적으로 점철된 게이무비의 전철을 따라 밟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 때쯤, 한국의 이런 현실을 툭 던지듯이 내놓는다. 승무원인 원규는 과거 한국에서 받은 상처 때문에 2년간 외국에서만 생활하다가 딱 하루만 한국에 돌아온다. 퀵서비스 배달원인 태준과 인터넷 채팅으로 만난다. 자신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려는 원규와, 그의 상처를 이해하면서도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방황하는 태준이 종로 거리를 헤맨다. 놀랍게도 이 영화는 2009년에 있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아직은 차별과 불쾌함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한국 사람들에겐 이 영화가 조금은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일반 영화관 중 하나인 Cubix 영화관에서 백야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갔을 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 있는 상태였다. 한국에서도 잘 모를만한 작품인데, 수많은 관객들이 영화관에서 작품을 기다리는 모습은 기대하지 못했던 광경이었다. 몇몇 관객들은 한국인인 나에게 ‘한국인입니까’라며 어색한 한국말로 말을 걸기도 했다. 이미 주요 작품의 상영이 끝난 15일인데다가 영화 시간이 오후 8시 20분이라 많은 사람들이 많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건 오산이었다. 8시가 넘어가고, 상영시간이 다 되어 입장이 시작되자마자 수많은 관객들이 입구로 몰렸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뛰어들어가는 사람도 보였다..


영화를 보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었다. 첫 번째는 영어 자막이 놀랍도록 한국어만의 독특한 어감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똑 같은 말이어도 다양한 어조로 전달할 수 있다는 한국어만의 특징이, 영어 번역 때문에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놀랍게도 이 어색한 번역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관객들이 작품의 포인트를 찾아낸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놀라운 건 영화제라는 특성 때문인지 영화 중간중간에도 박수가 나오는 경우가 있었다. 신기한 분위기에서 베를린에서의 첫 영화가 끝나니 기분이 묘했다. 어느덧 숙소에 도착하니 열한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 아침 일찍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사진=윤란)



16일 아침이 밝자마자 홍상수 감독의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평소에는 영화 상영관이 아닌 무대가 설치된 공연장이지만, 베를린 영화제 기간에만 상영관으로 쓰는 ‘Friedrichstadt-Palast’ 앞에는 길고 좁은 레드 카펫도 설치되어 있었다. 영화제가 이제 단 하루밖에 남지 않아서 주위는 조용했지만, 아침부터 생각보다 많은 관객들이 영화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당일 티켓을 구하기 위해 티켓 오피스에 줄을 선 사람들도 꽤나 많아 보였다. 


자신의 오빠를 따라 캐나다 이민을 가는 엄마를 떠나는 전날 만난 해원은 우울함에 빠진다. 자신의 전 남자인 교수 성준을 불러 술을 마시지만, 학교 학생들에게 들키면서 해원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꿈에서 바보같이 행동하는 자신을 욕하지만 현실이 더 나은 것은 아니다. 산에서 만난 ‘좋은 아저씨’에게 막걸리를 받아서 마시던 해원에게 남은 건 엄마도, 꿈도, 남자도 아니었다. 막연하게 생각하던 결혼에 대한 생각, 자신이 이해할 수 없던 언니와 비슷한 생활을 이어나가는 자신에게 남은 모순을 그녀가 발견했을지는 모를 일이다.


영화가 끝나고 소소하게 박수가 나왔다. 기대한 정도의 기립 박수는 아니었지만, 영화가 끝나면 박수를 치는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았다. 생소하면서도 한국 영화를 본 뒤 박수를 치는 관객들에게 나름의 뿌듯함을 느끼면서 극장을 나왔다.





▲늦은 밤, 이미 매진된 티켓을 찾기 위해 꾸준히 사람들이 티켓오피스를 들락날락한다. 10시부터 사람은 이미 만원. (사진=윤란)


마지막 영화는 16일 밤 11시에 시작하는 ‘비포 미드나잇’이었다. 유럽을 배경으로 두 젊은 남녀가 밤새 나눈 대화를 따라서 가다 보면, 젊음과 낭만, 우연과 인연의 사이를 줄타기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시작된 이 만남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면서 유럽 여행 광풍이 불었던 것도 어느덧 17년 전 일이 되었다. 유럽 기차에서 만난 두 젊은이가 어느 덧 나이를 먹고, 남자는 가정을 꾸려서 만난 게 ‘비포 선셋’. 해가 지기 전에 만난 두 남녀는 세월의 흐름을 얼굴에 가득 담은 얼굴로 서로에게 묻는다. ‘왜 넌 그때 그 곳에 없었니’ ‘왜 자신을 사랑한다던 모든 남자는 자신에게 행복만 찾고 떠나는 걸까’ 서로의 물음에 답을 찾지 못한 채 희미한 끝맺음으로 관객들의 호기심을 건드린 채 막을 내렸다. 시리즈의 마지막인 ‘비포 미드나잇’은 좀 더 다듬어진 느낌이다. 대학생 시절과 청년 시절의 두 사람이 길거리를 걸으며 나눈 대화가 환상에 가까웠다면, 비포 미드나잇에서의 두 사람은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그렇게 현실에 한 발짝씩 더 다가가는 건 아닐까

비포 미드나잇을 보기 전에 여유를 갖기 위해 일찍 도착하려 일부러 10시에 상영관을 찾았다. 하지만 이미 비포 미드나잇을 보려는 관객들로 상영관 앞은 인산인해가 되어 있었다. 길게 늘어선 줄이 도로까지 이어지자 급히 나타난 보안 요원이 독일어로 주의사항을 말하면서 돌아다녔다. 밤 열한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이토록 많은 사람이 올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물론 기대작 중 하나인 작품의 상영이라 사람이 많을거라곤 생각했지만, 직접 현장에 찾아온 사람들은 그 기대치를 훨씬 넘어선 정도였다. 영화 상영 내내 곳곳에서 큰 웃음이 터지고 박수가 터져나왔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작품은 뭔가 다르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독일은 타 서유럽 국가에 비해 한국인 관광객이 많지 않다.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가 다른 서유럽 국가의 대도시에 비해 볼거리가 적고 소소해서라는 이유도 있다. 다른 국가보다 화려함도 덜하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도 기대했던 것보다 작은 규모로 열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작은 축제에서도 베를린만의 매력과 자신들이 축제에 대해 갖고 있는 자부심이 현장에서 멋지게 발현되는 순간이 있다. 축제가 끝나갈 무렵이었지만, 마치 다음 해엔 더 멋진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문장이 딱 어울릴만큼 멋진 빛깔로 축제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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