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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씨까 피 아랍, 아랍의 음악

작성일201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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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요즘은 한 국가의 노래가 다른 수많은 국가에서 들려질 만큼 글로벌화 되어 있습니다. 한국의 K-POP만 해도 ‘정말! 여기서, 이 노래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 멀리 오지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음악의 공유는 하얀색, 황토색, 갈색, 검정색의 사람들이 사실은 같은 감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갈색! 아랍인들의 음악 감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생소할 수 있는 아랍인들의 음악과 노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랍의 음악이....사실은...

 

 

  아랍 음악은 한국을 비롯하여 중국·일본·인도의 음악과 함께 동양 문화민족의 대표이며, 서아시아·중앙아시아 및 아프리카 북해안에 걸친 이슬람 음악권의 본원이기도 합니다. 넓게 보면 이슬람 음악과 같은 뜻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좁게 보면 터키·페르시아 등의 음악과 구별하여 아라비아 반도(사우디아라비아)의 음악을 뜻합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그 이웃인 이라크·시리아·요르단·레바논·이스라엘 등 각국의 아랍인 음악도 포함합니다. 이슬람교도의 음악적 영향은 중세 유럽·근세 이후의 인도·동남아시아·에티오피아·수단 등에까지 미쳤으며, 기독교 및 불교의 문명 속에서 자란 음악과 함께 세계의 3대 음악권의 하나라고도 할 수 있다는 사실!!

 

 

 

아랍 음악의 세월

 

 

<융성기> 

 

 

  이슬람교에서는 음악을 금기의 하나로 삼기 때문에 종교음악은 끝내 생겨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속음악은 궁정·귀족·부호 등의 보호 아래 교의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행하였다. 무함마드의 한 아내는 가희 출신이었으며, 아랍의 대표적 악기가 된 우드('ud)의 보급이 시작된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옴미아드조에 와서는 사라센 제국이 건설되자 수도를 메디나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로 옮겨 페르시아나 비잔틴과 교섭이 많아졌습니다. 그리하여 헬레니즘 문화를 채택, 그리스의 과학이나 예술이 시리아어나 아랍어로 번역되어 과학적인 음악이론을 발전시켰습니다. 이것은 다른 동양음악에서는 볼 수 없는 아랍 음악의 특징이 되었으며, 궁정의 할렘이 융성해지고 가희나 음악가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 일종의 계급을 형성하여 귀족 및 부호와 유대를 맺었습니다. 일찍부터 음악이론서도 저술되고 그리스어에 따라 음악을 무씨까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습니다.

 

<전성기 >

 

 

  다음의 압바스조 500년 동안의 음악의 전성기는 처음 100년간입니다. 과학과 예술이 궁정 귀족의 보호를 받게 되었으며 특히 <아라비안나이트>로 널리 알려져 있는 제5대왕 하른 아라시도(재위 786-809)의 호화로운 궁정생활 속에는 음악과 무용이 중요한 구실을 다하였습니다. 이 황금시대에 음악학교가 설립되어 많은 이론가와 음악가가 배출되었습니다. <아라비안 나이트>에 나오는 잘잘(Zal Zal)은 새로운 아랍 음계를 발견, 그것이 오늘날 아랍 음악의 최대 특징이 되기도 했다. 또한 이스하크 알 마우실리는 <노래의 서, (Kitabal Aghani)>를 저술하였으며, 알 킨디(al-Kindi, 873년경. 류트의 4현과 리듬적 선법에 대해 우주론적 입장에서 설명)는 <음악의 서>를 저술하였습니다. <음악의 서>는 현존하는 최고의 아랍 음악서의 하나가 되었으며 또한 시르야브는 코르도바로 옮겨 코르도바 학파의 다수 명인이나 학자를 육성하였습니다.

 

<정체기 >

 

 

  10세기 이후의 동(東)칼리프, 11세기 이후의 서(西)칼리프는 이슬람 음악의 정체기를 맞았으나 이 동안에도 이론가를 배출하여, 특히 음계이론의 연구로는 뛰어난 것이 많았습니다. 10세기경에 나타난 라바브(rabab)가 보급된 것도 이 시대이며 풍압 오르간과 수압 오르간이 아랍에서 발달, 유럽에 보급되어 오르간의 역사에 큰 구실을 한 것도 이 시대였습니다. 몽고인에 의한 파괴가 있은 뒤에 11-13세기 셀주크 투르크의 지배, 계속되는 오스만 투르크 및 티무르의 통치를 받아 서아시아의 이슬람권이 분열하기 시작하자 터키나 페르시아는 독자적인 색채를 띠기 시작하여 아랍 본토의 음악과는 이미 그 본질이 다른 국민음악을 형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편 서아프리카 북쪽 해안 등도 이슬람 음악권으로 들어갔으며 또한 카프카즈의 중계로 멀리 인도 북부나 동인도 제도에도 이슬람교도의 손으로 이슬람 음악이 보급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아랍의 유명한 악기

 

 

 우드('ud)는 아랍 특유의 나우바(nawba)를 연주할 때 사용되는 발현악기로써, 보통 5현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최저현 이외는 모두 겹줄이며, G-A-d-g-e의 순열로 맞춥니다. 그러나 현의 수효는 4현에서 6현까지 있으며, 조현법도 4도를 기본으로 합니다.

 

 

 다라부카(darabuka)는 꽃병 형태의 나무 또는 흙으로 만들어진 통의 단피고로써, 왼쪽에 끼고 오른손으로 칩니다. 이것이 타이로 건너와서 톤이라든가 타프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아랍에서는 피리를 흔히 나이(nay) 또는 네이(ney)라고도 부르며, 갈대피리도 사나이, 스루나이, 그리고 중국서는 소오나 등으로 불리며 동방으로 전파되어 왔습니다.

 

 

 

현대의 아랍 음악

 

 

  16-19세기의 대부분의 아랍 세계는 오스만 제국에 지배되었습니다. 이때는 정치적 내지 문화적으로 쇠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궁정에 의존했던 예술 음악은 터키의 고전음악에 많은 영향을 입었지만 터키음악 역시 아랍과 페르시아의 전통에 힘입은 바 컸기 때문에 큰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았습니다. 따라서 16세기까지의 선법과 리듬은 20세기 예술 음악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현대의 아랍음악은 구조면에서는 근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만의 24세 여성 모자씨의 “아랍, 특히 사우디아라비아를 주변으로 하는 걸프지역의 국가들의 노래는 옛날부터 슬픈 목소리, 떨리는 목소리를 기본으로 많이 변화 되진 않았습니다.”라는 말이 아랍의 음악구조가 전통적인 틀에서 많이 벗어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유명한 아랍의 가수들 

 

 

1, 낸시 아즈람

 

 

  1983년 레바논 출생의 낸시 아즈람, 국내에서도 아랍 노래에 관심이 있다싶은 사람은 누구나 아는 아랍의 가수입니다. 아랍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출현에 단번에 스타덤에 올랐으며 2003년 ‘야 쌀람’이라는 곡으로 명실상부 가장 유명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2007년에는 라스베가스에서 공연한 바가 있고 아랍에서는 여성 최초로 코카콜라 광고를 찍었습니다. 오프라 윈프리는 그녀에게 ‘중동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는 호평을 하였습니다.

 

2, 무함마드 하마키

 

 

  1975년 이집트 출생의 무함마드 하마키의 노래는 가장 대중적인 노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집트 요르단 등에서 거리를 걸을 때 가장 많이 들리는 노래의 주인공입니다. 그의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은 ‘아흘라 하가 피키(best thing about you)’입니다.

 

3, 마리얌 파리스

 

 

 1983년 레바논에서 태어난 마리얌 파리스 또한 숨길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아랍의 가수 중 한 명입니다. 샴푸 등 다양한 광고의 주인공이기도 하며 국내에서는 벨리댄스의 배경음악으로도 많이 쓰이는 곡의 주인공으로 ‘와흐쉬 이흐(waheshni eih)’가 유명합니다.

 

4, 와이파 와흐비

 

 아랍의 이효리!라고 말 할 수 있는 와이파 와흐비는 미스 레바논에 출전 했던 미모의 여가수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랍여성들이 절대 입을 수 없는 과감한 의상으로 시선을 받기도합니다. 또한 2005년 레바논의 총리가 시리아에 의해 암살당한 사건에 대한 반시리아 감정을 표출한 노래인 ‘비디 이쉬(i want to live)’가 유명합니다.

 

출처 : 위키백과

 

 

 

우리와는 많이 다른 멜로디와 음색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도 우리처럼 '사랑'을 노래 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들의 문화가 낯설다면 외면 보다는 이들의 감성과 내면을 들여다 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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