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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F 브라질] 나의 문화 답사기 <브라질편>

작성일2013.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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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브라질은 러시아, 캐나다, 중국,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큰 국가이며, 현재의 수도는 브라질리아(Brasilia)이다.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의 영향으로 인해 카톨릭 인구가 80%, 기독교가 11%를 차지하며, 다양한 인종이 있는 나라이니만큼 비율만 작을 뿐이지 아프리카 토착 종교 등 종교의 수 또한 적지 않다. 하지만 국민의 약 80%가 카톨릭 신자로 세계에서 카톨릭 신자들이 가장 많은 나라이기도 하다. 또한 백인 55%, 포르투갈인, 이태리인, 스페인인, 독일인 등 혼혈유럽인 Mulato 38%를 차지하는 다양한 인종을 품은 국가이다. 오랜 기간 다양한 인종들이 더불어 살아왔기에 그 아래의 자손들은 피가 더욱 섞이게 되었는데일례로, 부모 모두가 백인이어도 자식 중에 흑인이 태어나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 실제로 형제·자매 사이에서 백인과 흑인이 섞여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남미 최대의 국가인 브라질의 시작은 15세기 노예 무역을 포함한 국제 무역의 활성화로 유럽 강대국들의 식민지 개척의 희생양으로 시작되었다. 이후 1500년 포르투갈인 P.카브랄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으며, 적색염료의 원료로 쓰이는 브라질나무(브라질우드)의 이름을 따서 브라질(Brazil)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 때를 기점으로 포르투갈인들이 브라질에 넘어온 공식적인 계기가 되었다.

 




 


브라질에 이주한 포르투갈인들은 사탕수수 재배를 목적으로 당시 브라질에 있던 인디오(원주민)들을 노예로 삼기 시작했다. 이마저도 부족했는지, 아프리카에서도 흑인들을 데려와 노예로 삼았다.


이후 1808유럽 통일을 목표로 한 나폴레옹의 정예군에 의해 포르투갈이 무너지려 하자, 포르투갈 왕실은 브라질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상황이 안정된 후에도 당시 황태자였던 돔 페드로는 브라질에 남아 왕가의 씨를 보전했다. 그런데 이 페드로 황태자는 본국을 배신하고, 브라질 독립을 선언해버리고 스스로 브라질 황제에 등극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금지되었던 제조업을 열고, 브라질 항구를 개방하자 브라질은 청난 부를 축적하며, 자본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하게 되었다.

 

 


하지만, 포르투갈 왕실과 브라질의 공화정 사이의 갈등은 끊이질 않았고, 브라질 내부사회는 잦은 쿠데타와 독재 등 많은 정치적 혼란으로 사회적 모순이 심해져만 갔다. 브라질 대다수의 민중은 노예들이었기에 대지주와 대자본가들을 위해 가혹하게 착취당해 왔으며, 21세기인 지금도 브라질 경제를 밑바닥에서 떠받치고 있는 것은 노예노동의 문화인 셈이다.

 


브라질 역사의 시작은 비극이었다.

지금의 이 광할한 땅은 포르투갈 군대에 점령된 후부터 학살과 노예제로 붉게 물들었다.

노예제가 폐지되어도, 노예노동이 혼재해있는 브라질

노예금지에 반대한 기득 세력의 쿠데타로 인해 황제마저 축출 당한 브라질은 

사실은 아직도 겉으로만 민주국가인 셈이다.

 

 

 

 


Q.그렇다면, 브라질은 여느 식민지 국가들처럼 노예제의 아픔을 간직한 나라일까 흑인들의 차별이 심해 인종끼리의 적대적 감정이 있는 나라일까

 

역사만 돌이켜본다면, 노예의 슬픔과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하지만 답은 뜻밖에도 ‘NO’이다. 낙천적이고 즐겁게 사는 브라질리언들의 국민성을 보면, 그들에게도 아픔의 역사가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노예의 역사에 대비해 브라질은 노예의 아픔이 역사 속에 깊이 남아있지 않은 나라인데, 무엇보다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혼혈 인구수와 그리고 모든 아픔을 예수의 이름으로 감싸는 카톨릭 신자가 많은 국가라는 점이 이들을 노예의 비극의 아픔에서 헤어나올 수 있게 해주지 않았나 싶다.

                                                                           

가톨릭 국가이니만큼 브라질의 곳곳에서 성당과 교회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특히나 예수의 모습과 각 도시의 중심마다 있는 대성당들은 왜 이 나라가 카톨릭 국가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BGF팀이 직접 가 본 성당과 예수상을 소개하고, 카톨릭 국가로서의 브라질과 마주한 느낀 점들을 남겨보고자 한다.

 

 


남미 최대의 예수상으로도 불리며, 얼마 전 새롭게 세계 7대 불가사의에 등록된 리우데자네이루에 위치한 코르코바도산 정상의 예수상은 브라질이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기념비적인 상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띠며 전체 높이 30m, 양팔을 벌린 길이가 28m나 되는 거대한 석상은 그 위엄과 상징성 덕분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가 되었다. 세계의 불가사의로 등록된 이유는 산 꼭대기까지 그 크고 무거운 예수상이 어떻게 올려졌느냐 하는 점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크기 때문에 리우 곳곳을 누빌 때마다 잊지 않고 예수상을 찾게 된다.

 


 

영현대 기자단이 예수상을 찾았을 때는 마침 비가 오는 흐린 날이었기에, 온전한 예수상의 모습을 기대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구름 잔뜩 낀 날의 예수상도 나름 운치가 있었고 그 모습 자체가 신성한 분위기를 띄우는 듯 느껴졌다. 빗줄기가 예수의 얼굴을 따라 흘러 내릴 때에는, 흡사 예수가 울고 있는 듯이 보여졌다. 취재 기자가 느낀 예수의 모습은, 마치 넓은 예수의 두 팔과 가슴으로 리우를, 그리고 브라질리언들의 마음을 감싸 안아주는 그런 느낌이었다.

 

 


 

 




카톨릭 국가 브라질을 상징하는 대도시마다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는 대성당을 찾아, 영현대 기자단이 상파울루의 대성당인 세 성당(catedral metropolitan sao sebastico)을 방문했다. 세 성당은 세 광장과 함께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상파울루의 명소이기도 한데, 한 번에 무려 8천 명까지도 수용하는 대성당이다. 고딕 양식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가진 세 성당은 사도 바울에게 헌정된 성당으로, 성당 내부에는 기도를 드리고 있는 카톨릭 신자들의 모습도 찾을 수 있었는데, 큰 성당임에도 불구하고 그 분위기가 어수선하지 않고 왠지 모르게 평온을 되찾게 하는 힘이 있었다.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절제된 아름다움이 있었고, 성당이 도심의 중심에 있다는 사실이 카톨릭이라는 종교를 브라질리언들이 자신들의 삶과 밀접하게 여기고 있다는 점을 느꼈다. 세 성당 바로 앞의 광장의 중심에는 육각형 기둥의 동상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거기에는 각 지역의 대성당의 이름과 방향 표시가 되어있었다. , 상파울루를 기점으로 기둥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쭉 가면 그 대도시의 대성당이 나온다고 하는 것이다.

 

 

 

 

 




대도시이자 옛 수도였던 리우데자네이루의 대성당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 (Catherdral of Rio de Janeiro, Catedral Metropolitana do Rio do Rio de Janeiro)이다. 1979년에 완성된 비교적 근대식 성당이며, 리우의 수호성인 세바스찬에게 헌정된 성당이라고 한다. 대도시 리우에 걸맞게 성당의 크기 또한 어마어마한데, 무려 한 번에 2 5천명 정도가 함께 예배할 수 있다고 한다. 성당은 거대한 원추형 건물인데, 솔직히 외관만 보면 성당이라는 사실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한 형태에 근대식 건물이다.

 

 


건물 바닥의 지름은 무려 96m, 높이는 75m, 내부 스테인드글라스 장식 길이는 64m나 된다. 건물 벽의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은 다른 성당들과의 아름다움에서 뒤지지 않지만, 건물 외벽이 통풍구로 되어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원추형 건물이 풍기는 포스 또한 상상 속의 상승감으로 하늘에 닿고 싶어했던 고딕 양식의 성당을 나타내고, 현대 브라질 성당답게 열린 종교 공간의 모습 나타낸다. 식민주의, 노예제 등을 넘어선 종교에 대한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렇게 놓고 보면 브라질 사람들이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자들만 같이 느껴지지만, 사실 브라질은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며 기독교와의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니다. 다만 포르투갈인을 비롯한 유럽인구의 유입으로 카톨릭이 자연스레 브라질에 스며들었고, 이제는 브라질이라는 국가를 지지하게 하는 하나의 힘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브라질 과거의 역사는 어두웠을지라도 카톨릭이라는 종교로 그 상처와 아픔을 치유해나갔다는 점에서, 브라질을 얘기할 때 카톨릭을 빼놓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브라질리언들의 신앙심을 엿볼 수 있는 문구

 


가난과 빈부격차의 비극이 현존하는 브라질에서도 어떻게 브라질리언들이 저렇게 즐겁고 낙천적으로 살 수 있는지 브라질리언들의 행복의 비밀, 이제는 그 이유를 알 것 같다. 예수상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예수가 이 모든 아픔을 지닌 브라질리언들을 두 팔로 감싸 안으며 위로하고 있는 듯했던 그 느낌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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