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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F 브라질] 브라질 또하나의 얼굴, 파벨라

작성일2013.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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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세계 3대 미항으로 유명한 리우데자네이루에는 넘실거리는 파도가 자욱한 바닷가, 하늘을 넘볼 것 같은 예수상, 높다랗고 현대적인 건물들의 범람함이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리우에서는 이들을 너머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의 온상이 보인다. 저 멀리 보이는 작은 집들은 무수히 많아 언뜻 개미집들을 연상케 할 정도이다. 멀리서 보면 한국의 달동네 같기도 하다. 하지만 어쩐지 그보다는 너무 화려하기도, 또는 너무 처참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다. 이 곳은 바로 파벨라이다.

브라질에서 빈민촌을 뜻하는 파벨라(Favela) 한국의 판자촌이라고 하기에는 멀쩡한 가옥형태가 많고, 달동네라고 하기에는 위화감을 주는 무장경찰이 많이 다르다.

 

 

 

 

파벨라 ‘콤플렉소 도 알레마옹(complex do alemao)’

 


 1940년대에 찾아온 주택위기는 많은 중하층 시민들의 경제권과 주거지를 빼앗았다. 이들이 교외 변두리에 판자촌을 점차 세우기 시작하며 ‘빈곤층의 마을’이 점차 생겨난다. 파벨라의 과도기라 불리는 1970년에는 도시화와 산업화로 인해 파벨라 규모가 급격히 커지게 된다. 일자리를 얻기 위해 도시의 꿈을 안고 리우데자네이루 도심으로 상경하는 사람들이 대폭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수도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브라질리아로 이전되며 실업자가 급격히 늘어나며, 이들이 파벨라로 고스란히 남게되어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파벨라도 없어질 위기가 있었다. 도심 근처에 위치하더라도, 수도와 전기, 위생시설 등의 공공서비스를 정부가 구축해주지 않았다. 주민들은 하수구를 뚫거나 전기선을 연결해 수도와 전기를 훔쳐 사용할 뿐. 환경은 점점 열악해지고 각종 사건사고가 일어나자, 파벨라는 사회의 골칫거리로 여겨지게 된다. 급기야는 1970년 파벨라 박멸정책을 추진하며, 많은 철거민을 양산했다. 집을 잃은 주민들은 다른 지역에 판자촌을 세우며 또 다른 파벨라를 만들게 된다.

 

 


 

 

 

 이후 강제이민이나 퇴거에 대한 이슈는 뒷전으로 물러난다. 마약거래가 성행하면서 파벨라 내 거래조직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엄청난 마약거래수익으로 무기를 구매하고 조직원을 늘리면서, 조직의 힘이 비대해지자 섣불리 경찰들도 손을 대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나 1980년대는 파벨라는 마약거래조직의 세상이었다. 외부인의 파벨라 출입은 예외 없이 그들의 허락이 필요하며, 경찰의 파벨라 출동은 목숨을 건 도전이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처럼 위험천만한 파벨라가 현재는 관광필수코스가 되었다. 수백개의 여행사가‘파벨라 투어’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제일 큰 파벨라로 유명한 “호싱냐(Rochinha)”의 2시간 투어상품은 평균 80달러, 일일 코스는 평균 130달러에 판매된다. 영화와 미디어에 의한 잦은 노출로, 모험심과 궁금증을 자아낸 여행객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러나 홀로 방문했던 여행객들이 봉변을 당하는 일이 많아지자, 많은 여행사들은 현지 가이드 동반을 권유하고 있다. 무엇을 들고 가던, 여지없이 빈손으로 파벨라 밖을 나오게 된다는 후문이 있다. 일례로 한 외부인이 주차해놨던 차는 모든 부품이 사라지고 달랑 본체 하나만 남았다 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당국이 선포한 ‘파벨라와의 전쟁’으로 마약 거래조직이 모두 검거되고 잔존세력만 남아있다는 것이다. 마약조직원들이 총을 들고 파벨라를 돌아다니는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에 무장경찰들이 파벨라를 점령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콤플렉소 도 알레마옹(Complexo do Alemao)은 무장경찰서인 UPP가 제일 처음 세워진 파벨라다. 그 어느 파벨라보다도 조직단 세력이 커서, UPP 설립이 가장 빨리 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에 일부 주민들은 굉장히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페이스북 “콤플렉소도 알레마옹에게 평화가”라는 그룹페이지도 생겨날 정도다.


이 파벨라는 위에 언급했던 호싱냐만큼 엄청난 규모로, 총 거주민수가 6만 명이나 된다. 넓은 면적과 경사지역에 위치하여 교통수단에 어려움을 호소한 주민들을 위해 케이블카가 설치되었다. 설치 초기에는 안정성을 의심하며 아무도 타지 않았는데, 그 이유가 예상과는 많이 다르다. 누군가가 케이블카를 향해 총이라도 쏘지 않을까 두려워했던 것이다. 현재 이러한 기우는 줄어들고 많은 주민들이 애용하며, 외부인에게는 또 하나의 관광 코스로 부각되었다.

 

 

‘콤플렉소 도 알레마옹’의 케이블카

 

 

 현재의 파벨라는 더 이상 가난과 마약의 상징이 아니다. 컴퓨터, 대형 TV 등 가전제품에서 자가용까지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기반들을 다 갖추고 있는 가정들이 많다. 이들이 파벨라를 나오기 거부하는 이유는 파벨라가 곧 그들의 집이자 지역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후 변호사, 축구선수 등의 직업으로 큰 경제적인 성공을 이룬 이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한다. 그리고 대중들에게 자신의 과거인 파벨라를 잊지 않고 이야기한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는 단지 보이는 것만큼 가난하고 허름한 판자촌을 너머 새로운 의미로 여겨지고 있다. 앞으로의 파벨라는 또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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