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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의 붉은 사막에서 베두인을 만나다!

작성일2013.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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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사진=심아영)

 

   '아랍인', '중동사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아니면 영화, 책, 뉴스 등의 매체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어떤가 아마도, 발목까지 내려오는 흰색 긴 옷을 입고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낙타를 타고 사막을 움직이는 남자의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나 역시 이러한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이러한 모습을 한 사람들을 찾기는 힘들다. 현대식 옷차림을 하고 자동차를 타고 다니니 말이다. 이러한 모습을 한 사람들은 바로 '베두인'이다. 지난 9월 6일 친구와 함께 베두인 생활을 체험하기 위해 암만에서 4시간 거리에 있는 요르단의 보석 와디럼에 놀러 갔다.

 

(사진=심아영)

 

베두인은 누구인가 

   위키백과에서는 베두인족에 대해서 '옛날부터 중동의 사막에서 유목생활을 하는 아랍인'라고 정의한다. '베두인'은 실제로 아랍어에서 나온 단어로 '사막에서 사는 사람'을 의미한다. 이슬람 사회가 시작될 때부터, '아랍'은 '유목'과 동의어로 사용될 만큼 대부분의 아랍 사람들이 유목 민족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강 주변에서 살았지만, 베두인들은 사막에 사는 것을 선호했다. 지금도 베두인은 중동의 이집트, 시리아, 팔레스타인,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예맨, 이라크와 북아프리카의 모로코, 수단,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등에 살고 있으며 그 인구도 4백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베두인족에게 가족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베두인 사회는 가족이라는 단위를 바탕으로 형성되고, 각 구성원들은 서로의 생활을 도우며 더불어 살아간다. 베두인들의 삶의 방식, 언어적 차이, 사회 구성 그리고 문화는 앞으로 지켜야 할 만큼 독특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요즘에는 예전 모습 그대로 낙타를 타고, 염소 털로 만든 텐트에서 지내고, 목축을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오직 5%의 베두인만이 예전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한다. 

(사진=심아영)

   베두인의 특별함은 그들의 옷차림에서도 나타난다. 베두인 남자들은 'diellabaya'라는 긴 옷을 입고 머리에는 빨간색과 흰색 실로 만든 스카프 'smagg'나 흰색 실로 만든 'aymemma'를 두른다. 베두인 여자들은 밝은 색의 긴 원피스를 입지만 밖에 나갈 때에는 몸을 가릴 수 있는 검정색 코트 'abaya'를 입는다. 또한 밖에 외출할 때나 남편, 아빠, 남자형제 등 가족이 아닌 남자를 만날 때에는 머리나 얼굴을 가려야 한다.  

   또한 베두인도 무슬림이기 때문에 꾸란에 나와 있는 대로 살아간다. 무슬림은 매일 5번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방향으로 기도를 하는데, 베두인도 역시 그렇다. 하지만 베두인이 사는 사막에는 도시와 같은 모스크가 없기 때문에, 그냥 메카 방향으로 기도를 드린다. 그리고 기도 전에 물로 손과 발을 깨끗하게 닦는 의식 '우두'를 해야 하지만, 사막에 사는 베두인의 특성상 물이 없을 때에는 모래로 대신 한다고 한다.

   도시에도 베두인이 있지만, 정부에서 도시에서의 유목 생활을 점점 더 통제하기 때문에 많은 베두인이 도시 외곽이나 시골에 산다. 전통적인 이슬람, 부족 사회가 점점 서구 문명과 혼합되어 가면서 베두인 사람들의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 베두인 남자들은 이러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고 있지만, 여자들은 예전 삶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며 살아가려고 한다. 또한 베두인은 상대적으로 교육의 기회가 적고,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의 수도 적기 때문에 높은 실업률을 안고 살고 있다. 

(사진=심아영) 

   요르단에 사는 베두인은 와디럼에 많이 남아있다. 1970년대 와디럼 마을이 생기기 전에는 모든 베두인들은 곳곳에 흩어져 살았지만, 생긴 뒤에는 많은 베두인들이 자녀의 교육과 보다 편한 삶을 위해 이곳에 정착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와디럼에서 유목 생활을 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

 

(사진=심아영)

베두인의 삶을 체험하다!

   와디럼은 페트라, 아까바, 제라쉬, 사해 등과 같이 요르단의 주요 여행지이다.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남쪽으로 320km 떨어져 있고, 페트라와 아까바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페트라, 와디럼, 아까바를 묶어서 여행을 간다. 와디럼은 2011년에 UNESCO 세계복합유산으로 지정되었는데, 협곡, 자연적으로 생긴 아치, 사막 언덕 등의 자연 환경과 베두인의 역사와 문화가 모두 와디럼의 주요 요소이다. 

(사진=심아영)

   와디럼 투어는 여러 방법이 있다. 지프차, 낙타, 산악 바이크(ATV)를 타거나 걸어서 보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나와 친구는 지프차를 타는 방법을 선택했다. 낮 12시 30분에 가이드 압둘라를 만나자마다 투어는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꿀렁꿀렁 덜컹덜컹이 너무 심해서 정신이 없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을 즐기게 되었다. 나와 친구는 아랍 혁명과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 감흥이 덜했지만, 이런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와디럼이 더욱 특별할 것이다. 

(사진=심아영)

   투어는 6시까지 계속되었다. 그늘에서 음식 냄새를 맡고 다가온 수많은 개미들을 피해가며 점심을 먹고, 잠깐 낮잠을 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모래 언덕에서 보낸 시간이었다. 고운 붉은 모래를 만지고, 그 위에 이름을 새기고, 언덕에서 뒹굴고, 가이드 압둘라와 알리와 함께 언덕을 뛰어다녔던 시간은 내가 중동에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또한 내가 아랍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올 기회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심아영)

    베두인 캠프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쉴 시간도 없이 바로 석양을 보러 언덕에 올라갔다. 다른 일행들도 저마다 좋은 위치를 차지해서 해가 지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연인이 함께 온다면 더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석양을 보고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샤워를 했다. 하지만 샤워실이자 화장실에는 불이 없었기 때문에 어둠 속에서 씻을 수밖에 없었다. 이 또한 특별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니 즐거웠다. 이후에 저녁을 먹기 위해 모든 일행은 큰 텐트에 모였다. 땅을 깊게 파서 그 안에 불을 지피고 3시간 동안 닭, 감자, 양파, 호박 등을 함께 찌는 베두인 전통음식은 너무너무 맛있어서 식사를 멈출 수가 없었다. 

(사진=심아영)

   저녁 식사 후에는 다 같이 모닥불 주위에 누워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별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별이 얼굴에 떨어질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천천히 별똥별을 찾아보았다. 찾다가 잠들어서 두 개밖에 찾지 못했지만 내 인생에서 이렇게 많은 별과 은하수를 볼 기회가 있었다는 것 자체로 만족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서 밤마다 아름다운 밤하늘을 볼 수 있는 베두인이 부럽기도 했다. 

 

베두인을 만나다! 

(사진=심아영)

Wadi Rum Travel Camp의 젊은 CEO 알리 

   이미 와디럼에 다녀온 친구들을 통해 알리에 대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사실 나만의 생각이지만 배우 신현준과 많이 닮았다. 알리는 와디럼에서의 투어 및 베두인 체험뿐만 아니라 와디럼에 오고 가는 것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버스를 타고 아까바에 가서 다시 와디럼에 가는 택시를 탈 때, 알리가 택시 아저씨와 통화를 하지 않았으면 두 배 요금을 낼 뻔 했다. 암만으로 돌아갈 때에는 우리가 편하게 갈 수 있도록 차를 가져온 다른 일행에게 부탁을 해서 같이 가도록 도와주었다. 알리는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다. 발음이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전화 통화를 하거나 와디럼과 베두인에 대해 설명을 할 때에도 전혀 지장이 없었다. 학원이나 학교에서 배운 영어가 아니라 와디럼에 오는 외국인들을 통해 배운 영어라고 해서 더욱 놀라웠다.

   와디럼의 베두인 텐트에서 태어난 알리는 정말 오리지널 베두인이었다. 7살까지 베두인 텐트에서 살다가 알리의 가족은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베두인 마을에 정착했다고 한다. 16살때부터 삼촌을 도와 와디럼 가이드 일을 시작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캠프를 설립하게 되었다. 24살 젊은 사장님 알리는 홈페이지도 깔끔하게 잘 만들어놨고,  서비스도 다른 와디럼 캠프에 비해서 경쟁력이 있었다. 지금은 손님을 위한 텐트가 6개여서 다른 캠프에 비해 규모가 작지만 앞으로 계속 늘려나갈 거라는 포부를 밝혔다. 또한 다른 캠프는 도시의 업체와 제휴를 맺어서 운영되고 있지만 자신은 개인적으로 계속 사업을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밤에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알리가 설명하는 베두인 역사와 문화를 들었는데, 베두인으로서 자부심이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진=심아영)

사촌 형 알리의 일을 도와주는 압둘라

   와디럼 관광 안내 센터로 우리를 데리러 나온 사람은 알리가 아닌 압둘라였다. 처음부터 굉장히 수줍어했기 때문에 이름도 시간이 지나서 물어볼 수 있었다. 작은 목소리로 설명을 해주고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는 압둘라를 보면서 영화에 나오는 굉장히 순박한 시골 청년이 떠올랐다. 하지만 와디럼 이곳저곳을 지프차로 질주할 때에는 굉장히 터프했다. 압둘라와 알리는 사촌형제이다. 압둘라도 알리처럼 와디럼의 베두인 캠프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지금은 마안에 있는 대학교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있다. 주중에는 대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주말에는 와디럼으로 돌아와서 알리의 일을 도와준다고 한다. 압둘라가 경영 공부를 한다고 했을 때 조금 놀랐다. 베두인들도 지금의 상태에 계속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변화를 지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졸업 후에 암만, 이르비드, 아까바와 같은 대도시에 살 생각이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아직까지는 계속 와디럼에 머무르고 싶은 생각만 있다고 대답했다.

 

(사진=심아영)

   요르단의 붉은 사막 그리고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배경이었던 와디럼에서 보낸 1박 2일은 정말 굉장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 순간이 절실히 그리울 만큼 좋은 경험이었다. 지프차를 타고 와디럼을 질주하며 느꼈던 사막의 시원한 바람. 와디럼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느꼈던 자연의 위대함. 고운 붉은 모래 언덕에서 온몸으로 뒹굴고 뛰어다녔던 시간.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별과 은하수와 별똥별. 그리고 무엇보다도 말로만 들었던 '베두인족'을 만나서 그들의 생활을 체험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이 좋았다. 전기도 없고, 물도 풍족하지 않고, 전화도 쓸 수 없고, 집이라고 말하기에는 조촐한 텐트에서 지내지만 이러한 생활에 만족하고 '베두인' 뿌리를 잊지 않고 지켜가는 그들의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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