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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이 사랑한 호 아저씨 호치민

작성일2013.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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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베트남이 사랑한 호 아저씨-

           호치민

 

세계 4대 뮤지컬 중 하나로 꼽히는 미스사이공이라는 뮤지컬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베트남 전쟁 속에서 베트남 여인 킴과 미군 장교 크리스의 아름답지만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이 뮤지컬의 배경은 제목대로 베트남 사이공(Saigon)이다. 사이공이 어딘지 감이 오질 않는가 사이공은 통일 이후 정부가 사이공을 호치민시로 명명하여 베트남인들이 사랑하는 혁명가 호치민에게 헌정된 현 호치민시의 옛 명칭이다. 얼마나 존경하면 사람 이름을 도시 이름으로 헌정할까. 그럼 지금부터 베트남이 사랑한 호치민에 대해 알아보자.  

 

Who is 호치민 (Ho Chi Minh)  

 

 

 ▲ 호치민의 모습과 친근한 호아저씨로써 아이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호치민 (사진= (좌) freedomforvietnam.wordpress.com (우) thanhdoan.hochiminhcity.gov.vn)

 

호치민은 1890년 태어나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조국의 해방과 자주정신을 일깨운 지도자이자 베트남의 통일을 이룬 민족 영웅이다. 호치민의 본명은 응윈 탓 탄. 호치민은 ‘성공할 사람’ 이라는 의미의 이 이름을 버리고 1942년부터 호치민, 즉 ‘깨우치는 자’라는 이름을 사용하였다. 현재까지 박 호(Bac Ho), 호 아저씨라는 애칭을 가지고 있으며 베트남 현지인들과의 대화에서 느낀점은 호치민 주석을 중심으로 미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그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통일 이후 베트남 통일 정부는 사이공을 호치민시로 명명하여 도시 이름을 호치민으로 할만큼 호치민은 베트남 사람들이 존경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지루한 내전은 1975년 4월 30일 막을 내리고 이듬해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 탄생하였지만 1969년, 호치민은 그토록 열망했던 조국의 통일을 보지 못하고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호치민은 유언을 통해 “베트남 인민의 생활 수준을 높히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함께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 라고 역설하였다. 또한, “내가 죽은 후에 웅장한 장례식으로 인민의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내 시신은 화장해달라” 라고 주문한 것은 그의 인품을 그대로 말해주는 것 같다. 권력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한결같았던 인품 속에서 그의 탁월한 정치력과 추진력이 솟아나왔는지도 모른다.

 

호치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의 언론이 그에 관한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우루과이의 한 신문은 “그는 우주만큼 넓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아이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소박함의 모범이다”라고 극찬했다. 분명히 그는 권력을 통해 어떠한 부귀영화도 누리지 않았고, 조금의 안락도 추구하지 않았으며 끝내 친근한 ‘호 아저씨’의 이미지를 안고 떠났다.  

 

 

바딘광장 그리고 호치민 묘소  

 

 ▲ 바딘광장에서 바라본 호치민 묘소 입구, 줄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왼쪽에는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이여 영원하라" 라고 쓰여있다.

     (사진=한규원)

 

방학을 맞이하여 호치민 묘소가 있는 하노이 바딘광장을 방문하였다. 바딘광장에 들어서자 소풍 온 아이들의 모습, 친구들끼리 견학 온 학생들, 그리고 연인끼리 앉아서 여유를 즐기는 모습까지 다양한 모습들이 눈에 들어왔다. 호치민은 유언에서 자신을 화장 후 유골을 남부, 중부, 북부에 골고루 뿌려줄 것을 원하였으나 위정자들이 호치민의 정신을 영원히 계승하기 위해 유해를 밀랍으로 처리해 영구 보존하였다. 1945년 9월 2일, 호치민이 베트남 독립선언을 낭독한 곳에 현재는 호치민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넓은 바딘광장 맞은 편에는 베트남의 국화인 연꽃의 봉우리를 상징하는 외형의 호치민 묘가 있는데 가까이 갈수록 엄숙하고 경비도 삼엄하였다. 이 곳 내부에는 1969년 9월 2일 사망한 호치민의 시신이 유리관안에 보관되어 있는데 김일성, 레린과 함께 세계에서 몇 안되는 미라라고 한다. 방부처리를 위해 4년에 한번씩 러시아에 가서 그 쯤인 3~4달 정도는 시신을 볼 수 없으니 유념해야 한다.  

 

 

 ▲ 연꽃 봉우리 모양의 호치민 묘소 전경 (사진=한규원)

 

전시관에 들어서기 위해 공항보다도 더 엄숙하게 출입심사를 했다. 내부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으며 카메라는 물론 작은 손가방이 아니고서는 가방도 들고 들어가서는 안된다. 끝없는 줄을 서 기다리다 1층 입구에 당도하니 줄이 재빠르게 2층으로 이어졌다. 한쪽 문으로 들어가서 반대쪽 문으로 나오게 되어있는 큰 방 한가운데 방부처리 된 호치민이 누워있었다. 나 뿐만 아니라 구경하던 모든 사람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발을 옮겼다. 호치민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는데 얼굴은 굉장히 하얗고 조명은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강했다. 약간은 마른듯한 체구와 온화한 얼굴이 그대로 드러났다. 누워있는 모습이 마치 밀랍인형같아 실제 사람인지 인형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베트남인들에 의하면 미라가 실제 호치민이 아닌 모형이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도난 우려가 있어 실제 호치민 미라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 있다는 설이 있다고 하니 인형으로 착각할 만도 하다 

 

들어가기 전에는 약간 겁도 나고 무서웠지만 호치민의 일생을 전시해놓은 전시관에서 관람을 한 후 호치민의 시신을 보니 존경심 마저 생겨났다. 처음보는 미라의 모습에 보는 내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분이 이상했지만, 이렇게 방부처리 되어 뜨거운 조명을 받으며 죽어서도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는 호치민의 모습을 보니 과연 행복할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호치민을 통해 조금이나마 베트남인들이 이해가 되고 또한 작은 체구에서 나왔을 그의 리더십과 추진력이 세삼 존경스러웠다. 이 곳의 관람을 위해 몇가지 더 유념해야 할 점이 있는데 영묘를 둘러볼때는 팔짱이나 뒷짐지는 것 조차 안된다. 그리고 슬리퍼를 신거나 반바지나 민소매도 안된다고 하니 들어서기 전에 복장 점검은 필수이다. 입장료는 없지만 일요일에는 입장이 불가하고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2시까지는 폐관하여 개관시간이 까다로우니 방문하기 전에 미리 알아보고 가야한다.  

 

 

▲ 일요일은 휴관일이라 묘소 앞이 한산하다. (사진=한규원)

 

베트남의 민족지도자 호치민. 일생을 베트남이라는 나라를 위해 바친 호치민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 사상과 편견을 뛰어넘어 존경받아야 할 인물이며 성향을 막론하고 그의 리더십과 결단력은 익히 본 받을만하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그에 걸맞은 사상은 사회주의였지만 국가를 위해 자신의 이념도 버릴 수 있는 지도자였다. 공산주의를 지도이념으로 악용한 수많은 독재자들 때문에 호치민이 국내에서 저평가받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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