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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F]페르형이 들려주는 북유럽의 역사

작성일201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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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 이 기사는 영현대 9기 외국인(스웨덴) 기자, 페르 오메르 딜이 직접 작성한 기사 입니다.


핀란드를 떠올리면 조용하고 평화로운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지 그런데 예전의 핀란드는 걱정거리 하나 없는 지금의 핀란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어. 음, 마치 햄버거 빵 사이에 있는 고기같은거야.  서쪽의 스웨덴 제국과 동쪽의 러시아 제국에게 계속해서 치이며 20세기 중반까지 매우 힘든 역사를 겪었지. 그 예로, 1917년부터 1945년 까지 핀란드는 무려 7번이나 전쟁에 참여했어. 그리고 러시아도 황제시대, 제국주의 시대, 소련의 공산주의 라는 다양한 역사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모습에 이를 수 있었어. 이 이야기는 스웨덴사람이 들려주는 핀란드와 러시아, 특히 헬싱키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역사이야. 





핀란드와 러시아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나는 1100년 이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할꺼야. 스웨덴은 나라가 없이 살았던 핀란드 민족을 정복했고 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켰어. 그렇게 현재의 핀란드영토를 손에 쥘 수 있었지. 그 후 1611년, 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스웨덴 제국의 영토로 만들었어. 그 때 당시, 발트해 연안의 전략적 요충지였던 그 지역을 러시아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황량한 바닷가에 요새를 지었어. 그러나1656년, 러시아는 이 요새를 빼앗게 돼. 하지만 곧바로 스웨덴에게 재점령당했어.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냐고 







러시아는 다시 한번 요새를 탈환하지. 그게 1703년의 일이야.  이 때 스웨덴은 600명의 군사로 2만 명에 달했던 러시아 군대를 상대해야 했어. 승리할 수 없는 싸움이었지. 그 바람에 요새는 완전 박살이 났고 대승을 거둔 표트르 대제 1세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이름의 도시를 건설했어. 그리고는 동시에 스웨덴을 견제하기 위한 새로운 요새를 만들었는데, 그 이름이 페트로파블롭스크야. 하지만 이 요새는 자신의 목적을 끝내 달성하지 못했어. 왜냐하면 스웨덴이 그 뒤로 상트페테르부르크 공격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그 뒤로 스웨덴의 영토는 점점 감소했거든.  



표르트 대제 1세는 자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살았대. 이 집은 후에 ‘표트르대제 오두막집’ 으로 유명해지게 돼. 표트르 대제의 새로운 거처를 위해 지어진게 바로 겨울궁전이야. 겨울 궁전에 대해서는 기사 후반부에 좀 더 이야기할꺼야.



1700년도 스웨덴 대 러시아 전쟁에서 우세했던 쪽은 스웨덴이었어. 하지만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고, 1710 1718년간 전쟁에서는 러시아가 핀란드의 대부분을 차지했어. 이 후, 러시아 해군이 수 차례에 걸쳐 승리를 거두고 나서 1721년 평화조약이 체결됐지. 그 때문에 스웨덴은 발트해에 대한 지배권을 잃었고 러시아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새로운 수도로 삼았었어. 이에 대해 스웨덴은 당시 자신들의 지배하에 있던 헬싱키를 보호하기 위해 수오멘린나라는 새로운 요새를 지었어.



이 요새는 헬싱키의 중심으로부터 약간 떨어진 섬에 지어졌고, 현재는 유네스코 지정 문화유산이기도 해. 이 요새가 20세기 핀란드 민족주의 바람이 크게 불었을 때 핀란드어  이름으로 바뀌었어. 그 이름은 수오멘린나야. 






19세기 초, 유럽은 나폴레옹이 벌인 전쟁을 곳곳에서 치루는 중이었어. 그 당시, 스웨덴은 병력을 나누어 남쪽으로는 프랑스와 덴마크, 동쪽으로는 러시아와 싸워야 했지. 1년 반 동안 이어진 ‘핀란드 전쟁(스웨덴vs 러시아)’의 대가로 스웨덴은 일부의 영토를 러시아에 넘겨줘야 했어. 여기에는 구스타브바사 1세가1550년에 설립한 헬싱키도 포함되어 있었어. 러시아는 그 지역을 특별히 관리했어. 당시에  완전한 국가로 건립되지 않았던 핀란드 민족에게 약간의 자치권을 준거야. 그리고 3년 후에, 헬싱키는 특별관리구역의 수도가 되었어. 
 이 핀란드 전쟁은 스웨덴이 싸웠던 마지막 전쟁으로 기록 되고 있어. 1814년 이후로 스웨덴은 북유럽의 강력한 제국이었던 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보내고 중립국으로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지.  


러시아에서 알렉산드르 1세가 왕좌에 취임했고 완전히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정치개혁을 단행했어.  그 덕분에 상트페테르부르크는 급속도로 질서가 잡혀가기 시작했어. 관료적인 도시가 된거야. 이 사실은 거리의 건축물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어. 알렉산드르 1세가 통치할 때, 러시아 육군은 나폴레옹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았고 그들은 다시 파리로 쫓아버렸어. 그 때 획득한 프랑스 깃발은 모두 새로 지은 카잔 성당에 넣어 두었대.


1917년까지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핀란드는 대공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높은 수준의 자율성을 보장 받았어. 그래도 여전히 러시아에게 충성을 바쳐야 했지만 말야.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핀란드어의 지위가 점점 올라갔어. 그런데도 러시아는 계속해서 핀란드를 러시아화 하려고 했지. 근데 그렇게 할수록 러시아에 대한 적대감만 키울 뿐 이었어. 시간이 흐르면서 몇몇 핀란드 기관들을 러시아로부터 독립된 상태로 발전해나갔어. 그리고 오랜시간 동안 스웨덴과 러시아의 지배를 버텨낸 핀란드인들 사이에서는 민족주의 감정이 팽배해졌지. 그러다 1917년에 핀란드가 드디어 독립을 선언하게 되었어. 하지만 이내 내전이 발발했지 뭐야. 러시아 군대가 지지하던 사회주의의 진영과 스웨덴의 지지를 받고 있는 반사회주의 진영의 싸움이었어. 약 37.000명이 내전 기간 동안 사망했대. 그리고 C.G.E. 만네르헤임 장군이 이끌었던 반사회주의진영이 승리하면서 내전은 끝나게 되었지. 이때 러시아 군대는 해산되었고, 핀란드가 마침내 완전한 자치권을 가진 독립국가가 될 수 있었던거야. 


1917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두 번의 혁명이 일어났었어. 두 번의 혁명으로 황제는 직위에서 물러나야 했는데, 이것은 러시아 제국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었어. 그리고 동시에 내전의 시작을 의미했지. 내전이 끝났을 때는 사회주의 소련이 만들어졌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혁명을 요구하는 대소동들이 넘쳐났고, 오로라호의 선원들도 1917년 혁명에 참여했어. 그리고 10월의 어느 날 밤, 오로라호에서는 종소리가 울려퍼졌어. 이것은 황제주택이었던 겨울궁전에 대한 공격신호였지. 







안타깝게도 핀란드가 선포했던 독립 선언서가 전쟁의 종말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어.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6년 동안 핀란드는 3번의 전쟁을 했거든. 1945년, 핀란드는 남쪽 라플란드 지역에서 나치를 쫓아버리고 나서야 드디어 ’잔잔하고 평화로운 수 백 개의 호수를 간직한 나라’가 될 수 있었어. 핀란드의 바람 잘 날 없는 역사를 갖고 있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인 핀란드 회사 ‘노키아’ 덕분에 지금의 경제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 처음에 노키아는 종이를 만드는 회사였다가 고무보트를 만드는 회사로 바뀌었고, 최근에 핸드폰을 생산하는 회사로 성장했어. 그리고 한국사람들이 좋아하는 앵그리버드 게임 있지 이 게임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데, 이것도 역시 핀란드에서 만들어진 게임이야. 음, 다른 것이 또 있어! 컴퓨터 OS 프로그램인 리눅스를 처음 개발한 것도 핀란드 사람이야. 생각보다 많아 핀란드는 스웨덴과 러시아 사이에서 힘든 역사를 보내고 나서 마침내 세계 최고의 국가 중에 한 국가가 되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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