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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수도 마드리드 이전의 톨레도

작성일2014.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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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톨레도(Toledo)는 마드리드에서 남쪽으로 약 7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도시 이며 로마시대부터 16세기까지 서고트와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였다. 도시가 강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했기 때문에 적의 침입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용이했으며, 요새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190년경 로마인들의 식민지가 된 이후에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의 지배를 거쳐 1560년 펠리페 2세가 수도를 마드리드로 옮길 때까지 정치적 문화적 중심지였다. 옛 수도로 번성하던 이 곳에서 만나볼 수 있는 것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톨레도 대성당의 화려한 내부, 사진/임지예

스페인 카톨릭 대교구의 중심지인 이곳에서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카테드랄, 대성당이다. 스테인드 글라스에 비치는 색감이 온 성당을 다채롭게 메우고 있었다. 고딕양식을 따른 이 성당 내부에는 다양한 조각과 회화를 만나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성서의 내용을 그림으로 기록한 책이 가장 화려하고 정교했다. 또한 스페인이 낳은 회화의 거장 엘 그레코의 작품,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은 오르가스 백작의 장례식에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성 스테파노가 지상으로 내려온 기적을 묘사한 것인데, 엘 그레코 작품만의 특색과 천재성이 묻어나와 모든 방문객들은 이 그림을 보러 성당에 방문한다고 한다.

 




사진/임지예

중세도시 톨레도는 라 만차 지방에 위치해있으며 이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소설 돈키호테(원제:돈키호테 라 만차)에서 주인공이 활동하는 라 만차 지방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돈키호테의 복장을 가게 앞에 모형으로 내 놓은 상점들이 많이 위치해있었다. 알고보니 중세도시 톨레도는 칼, , 갑옷 등의 무기를 만들던 곳으로 일종의 군수 같은 공장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역사가 이어져서 인지 상점에서는 여전히 칼과 장식용 갑옷, 무기들을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톨레도 만의 문양이 새겨진 악세서리도 상점 곳곳에서 눈길을 잡아 끌었다.

 




메스키타 양식의 사원과 내부모습, 사진/임지예


전체가 하나의 성곽으로 둘러싸인 요새인 이곳은 중세의 흔적을 고이 보전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리저리 섥혀있는 골목을 따라 걷다보면 시대를 초월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조그만 성당 내부에 들어가니 메스키타 양식의 기둥과 천장을 발견할 수 있었다. mezquita는 스페인어로 '혼합된' 이라는 뜻으로 이슬람 양식, 유대교 양식, 스페인 양식의 조화를 의미한다. 기원전부터 서고트 왕족을 비롯한 이슬람, 스페인 지배를 받고 많은 사람들이 남긴 역사를 담은 곳이라 그런지 메스키타 양식은 더이상 낯선 것이 아니었다. 혼합되면서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것, 혼종문화는 스페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마사판을 가장 잘 만들기로 유명한 가게 SANTO TOME, 사진/임지예

이 곳 톨레도만의 명물은 바로 mazapan(마사판)이다물고기모양나뭇잎 모양기하학적 문양 등의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이 과자는 아몬드가루에 계란 노른자를 넣고 꿀을 넣고 섞은 이후 다양한 틀에 맞춰 구워낸 것이다. 1851년에 문을 열어 6대째 그 전통을 이어내려오고 있는 산토 토메 과자점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도착한 광장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톨레도 뿐만 아니라 크리스마스 시즌에 스페인 전역에서 이 마사판을 만나볼 수 있었는데,오리지널은 확실히 더 풍부하고 맛있다. 우리가 평소에 맛본 '만주' 혹은 앙금빵 맛과도 흡사하나, 이 곳에 여행한다면 한번쯤은 사먹기를 추천한다.

 




성곽 맞은편에서 바라본 모습, 사진/임지예

타호강을 굽어보며 성곽을 내려가다 보면 또 다른 시가지들을 마주할 수 있다. 성곽의 맞은 편에서 톨레도의 전경을 바라보기를 꼭 추천한다펠리페 2세가 1561년 마드리드로 천도하기 전에 가장 문화적으로 융성하던 톨레도는 알폰소 10세 왕(알폰소 현왕이라고 일컬어진다)이 태어나고, 통치를 했던 곳이기도 하다. 알폰소 현왕은 스페인의 정치 뿐만아니라 문화와 역사에 있어서도 가장 주요한 지식인이자 왕이다. 그는 천문학, 법률 뿐만아니라 성모마리아 송가집으로 음악에 있어서도 주요한 자취를 남겼다. 그는 궁전에 남부 안달루시아의 모로인(아랍인) 악사와 프랑스 시인 등을 70명 이상 모아 성모마리아를 칭송하는 400곡 이상을 실은 성가집을 편찬했다. 스페인어 전공 수업에서 이 곳에 실린 곡을 음성으로 직접 들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아랍적이면서 매우 동양적이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묻어나왔다. 플라멩코의 멜로디보다도 어딘가 더 동양스러운 느낌으로 성모마리아 찬가를 읆는 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이 송가집은 처음에 갈리시아어로 쓰여졌지만 이후에 카스티야 어로 정리한 것이라고 한다. 스페인 카톨릭의 도시이기도 한 이 곳에서 이러한 멜로디와 분위기의 악곡으로 성모마리아를 찬양한 것은, 이슬람 시대에서 해방된 무지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천주교를 포교하는 데에는 지식적인 것보다 어머니의 사랑을 담은 악곡, 쉬운 멜로디를 통해 전달하는 것이 용이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혼종과 혼합의 문화, 하나의 종교로 다른이들을 포용하기 위해서 그들이 택할 수 있는 방식은 어쩌면 조금 이슬람적이고 동양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이색적인 것들의 조합과 혼합, 그리고 그 가운데 중앙 카스테야노어와 왕국을 지키려는 노력의 흔적은 톨레도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스페인은 서구이면서 서구이지만은 않은 이색적이고 때로는 익숙한 모습들을 담고 있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에 여행한다면 마드리드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톨레도로 당일치기 여행을 하면서 잠시 중세 스페인 왕국의 역사를 따라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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