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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과 함께 잃어버린 청춘, ‘덕혜옹주’를 말하다

작성일201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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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조국과 함께 잃어버린 청춘, ‘덕혜옹주’를 말하다

 

- 권비영 작가와의 만남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라는 이름을 수면 위로 올린 것은 권비영이라는 작가다. ‘덕혜옹주’가 나오자 책이 불티난 듯 팔리기 시작했고, 독자들은 일본의 그늘 속에 존재했던 대한제국을 떠올렸고, 역사의 아픔과 고통 속에 살아야 했던 덕혜옹주를 알기 시작했다. 고종의 막내딸로 어린 나이에 일본에 볼모로 끌려가 37년, 대마도 도주의 양자와 강제 결혼. 그리고 자신의 외동딸의 자살, 정신병동 감금 생활 15년. 그렇게 마지막 황녀, 고종의 막내딸은 조국과 함께 청춘을 잃었다.

 

∥권 작가와 덕혜옹주의 만남

 

권비영 작가가 처음 덕혜옹주에 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덕혜옹주가 5살쯤 되던 때의 사진때문이었다. “회수로 4년전 신문에 대한제국 재조명 기사를 보게 됐어요. 그 안에 황실의 사진이 같이 나와 있었는데, 덕혜옹주가 5살쯤 되던 때의 모습도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그 사진에 확 끌리는 느낌을 받았죠” 그렇게 덕혜옹주와 권 작가와의 만남이 시작됐다.

 

 

“고종의 막내딸, 정신 병원에 갇혀 살다가 우리나라에 와서 죽었다는 등의 단편적인 자료들만 있었어요. 덕혜옹주의 결혼사진을 보게 됐는데, 남자와 여자가 같이 서있는 것이 아니라 덕혜옹주만 잘라져서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기고 뭔가가 그 속에 더 있겠다 싶었어요” 분명 뭔가가 더 숨겨져 있었다. 조선의 황녀가 타국의 백작과 결혼한다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고종)의 죽음, 그리고 잇따른 황실의 불운은 덕혜옹주를 옥죄고 있었다. 그리고 덕혜옹주는 비운의 청춘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

 

권 작가는 덕혜옹주를 소설로 담고 싶었다. 하지만 자료가 너무나 빈약했다. “당시에는 단편적인 자료만 존재했어요. 덕혜옹주가 실존한 인물인데 최소한 사실을 알고 소설에 살을 입히거나 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일본의 혼마 야스코가 쓴 ‘덕혜희’라는 책을 알게 됐습니다” 그 사실을 권비영 작가는 안타까워 했다. 우리나라의 얘기를 일본인을 통해서 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책 속에는 ‘이 책을 헌증하오니 많이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 책은 덕혜옹주의 생애에 대해서 쓴 책입니다…’라는 헌사가 있었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역사 속에 묻힌 황실의 인물이 일본인에 의해서 조명됐던 것. 권 작가는 “덕혜옹주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사명감처럼 느껴졌어요. ‘내가 해야겠다, 해야만 한다’는 느낌”

 

∥자료를 찾는 데만 1년...

 

“자료를 찾는 데만 1년이 걸렸죠. 대마도에도 몇 번씩 갔다 오고, 덕혜옹주의 묘소를 찾아 돌아다녔는데, 그곳이 금곡에 있더라고요. 누구도 제사를 지내지 않았던, 황녀의 무덤이라고 보기엔 힘든 곳이었죠” 출가외인, 그리고 조국의 그늘을 안고 있다는 사실은 덕혜옹주를 우리들 마음속에서 잊게 하고 있었다. 덕혜옹주의 잃어버린 청춘은 그곳에 잠들어 있었다.

 

책을 출판하는데도 우여곡절이 있었다. 혼마 야스코의 ‘덕혜희’의 번역본이 나와 소설을 다시 원점부터 시작해야 했다. 힘든 시기에 교통사고까지 겹친 것. “제가 덤프트럭과 교통사고 나서 40일가량을 입원해 있었어요. 제가 탔던 차는 빨간색 마티즈였어요.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머리에 4바늘만 꿰매는 정도였지요. 원래는 이 사고로 죽었어야 할 정도로 큰 사고였어요. 경찰이 말하길 죽을 수도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차는 이글어지고, 문은 날라 가서 폐차를 시켜야 했어요” 그리고 퇴원 후 마음을 잡고 소설을 완성시켰다. 그런 과정 속에 ‘덕혜옹주’가 우리 곁에 찾아오게 됐다.

 

∥“덕혜옹주를 기억하라”

 

‘덕혜옹주’ 책의 뒷면에는 “비참하게 버려진 조선 마지막 황녀의 삶을 기억하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명령조로 되어있지만 덕혜옹주의 잃어버린 청춘을 다시 되돌릴 수도, 다시 그 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권 작가는 “집필 할 때도 덕혜옹주의 삶을 떠올리며 가슴을 치며 안타까워 한 적이 많았어요. 덕혜옹주는 일본에서 조국에 돌아오겠다는 일념으로 살며, 자신의 딸에게도 정을 주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딸인 정혜가 엄마에게 반항을 하며 ‘나는 조센징이 싫다. 나는 일본인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죠. 엄마를 부정하며 ‘엄마는 미친 여자 같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여자로서 덕혜옹주가 가장 가슴을 아파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권 작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청춘을 저도 지내봤지만 감성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불안한 시기죠. 가만히 평탄한 삶을 살아도 불안할 때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젊음만을 즐기기엔 불안한 요소들이 많이 있습니다”라며 청춘을 말했다. 그 감성에는 덕혜옹주의 잊혀진 청춘과 맞물려 있어 그 삶을 기억해주길 바라는 권 작가의 마음이 녹아 있다.

 

 

 

권 작가는 아직 청춘을 보내고 있는 대학생들에게 “요즘 젊은이들을 보면 역사에 대한 인식이 가볍지 않나 생각해요. 교과서에 나와 있는 지식들을 배워도 피부로 와 닿지 않는 면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를 해도 모르는데, 그조차도 안 하니 더욱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어려운 시절을 지나온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의 시대를 모르는 대학생들이 많은 듯해 안타깝죠. 6·25 전쟁, 일제 치하 등 이런 과정을 겪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에 대한 인식이 가볍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인문서적 등을 많이 읽으며 올바른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일본에 대해서도 단편적으로만 알지 않고, 학문에 대해 깊이를 갖고 정확하게 인식하길 바랍니다. 내 몸을 중심을 잡고 잘 지탱하고 있으면 누가 밀어도 흔들리지 않고 넘어지지 않죠. 이와 같은 이치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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