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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다리’ 맞는 장항준 감독의 인생이야기

작성일2010.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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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아다리’ 맞는 장항준 감독의 인생이야기

- 영화 감독이 되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그의 이야기

 

 

 

<라이터를 켜라>,<불어라 봄바람>를 연출을 맡았으며, 현재 KBS에서 방영되는 ‘밤샘 버라이어티 야행성’에 출연 중인 장항준 감독. 그는 강연장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1969년 생, 42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스타일. 만화 컷이 프린팅된 반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장항준 감독이 강연장에 출몰()했다. 얼핏 보기엔 걸출한 영화감독이라는 수식어보단 아저씨 ‘오타쿠’라는 느낌마저 들게 하는 그의 아우라는 처음부터 범상치 않은 인물이라는 생각을 들게 한다. 그가 마이크를 들자 강연장은 ‘빵빵’ 터지는 웃음소리도 가득 찼다. ‘한국에서 영화감독으로 살아가는 법’이라는 주제로 시작된 강연은 장 감독의 ‘아다리’ 맞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됐다.

 

 

  ▲ 첫작품 <라이터를 켜라>, <불어라 봄바람>등 다작은 아니지만 근근히 연출을 해오며 최근 야행성에서 물오른 예능감을 보이고 있는 장항준 감독

 

 

 

∥부잣집의 ‘귀요미’ 둘째 아들

 

장 감독은 이렇게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2남1녀의 부족함이 없는 가정. 훌륭하지만 딱히 도덕적이라고 할 수 없는 부모님 밑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다. 형과 여동생은 내가 너무 사랑을 독차지해 항상 불만이었다. 내가 부모님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딱 하나, 정말 귀여웠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운을 뗐다. 그 귀엽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의뭉스럽게 하지만 그는 나일론 공장의 사장 아버지를 둔, 소위 잘 나가는 부자 집 아들이었다. “나는 서울대학교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대구의 파티마병원부설유치원에 들어간다. 그곳은 바로 그 지역에서 잘 나간다는 사람들의 자제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었다. 스타트가 상당히 좋았다”며 “바로 이것을 두고 사람들은 ‘아다리’가 맞았다고 표현한다. 70년대 당시 나일론 붐을 타며 승승장구하던 우리 집. 그 한번 맞은 ‘아디리’는 엄청난 파워를 발휘한다”라고 그는 전했다. 그의 인생에 있어서 ‘아다리’는 몇 번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그를 감독의 길로 이끌어가기 시작했다.

 

장 감독은 부모님을 ‘훌륭하지만 딱히 도덕적이지 않은’ 인물로 묘사했는지 그 의문을 풀어주었다. 나일론 공장의 사장, 서울에 땅 투기, 강남의 1호 룸살롱을 열었다는 그의 아버지. 서울 잠실 역삼에 땅 투기를 하며 “잭팟이 터졌다”는 그의 집. 그 이야기를 이처럼 당당하게 풀어나가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이 이야기는 진지하거나 거북하기보단 유쾌하고 코믹한 그의 이야기 속으로 청중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부모님에게 아직도 가장 고맙게 생각하는 것은 공부를 못 해도 야단 한번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업 성적이 안 좋아도 사회에 나가 내가 성공할 수 있는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다” 이 긍정의 힘은 장항준 감독의 버팀목이 됐다.

 

 

 

∥‘거짓말’에서 시작된 픽션의 세계

 

“일말의 재능조차 나에게 발견할 수가 없었다. 음악, 미술, 수학, 과학, 국어 등등 어떤 장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도 학교는 열심히 다녔다. 초등학교 졸업때 6년 개근상, 그리고 어머니도 당시에 ‘장한 어머니 상’을 공동 수상하는 영예를 안을 정도였다” 학교를 놀이터처럼 생각하며 다녔다는 장항준 감독은 드디어 자신의 중요한 재능을 뒤늦게 발견하게 됐다. 그것은 바로 ‘거짓말’.

 

고1때 잘 나가던 집 안이 부도가 났다. 그 당시 장 감독의 아버지는 낙심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때도 긍정적이셨다. 웃으며 ‘부도가 났네. 하하하’라고 말했다” 여튼 그런 환경 속에 장 감독은 드디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인생에 아무 빛이 보이지 않는, 재능이 없는 그에게 찾아온 것은 ‘거짓말’이 주는 선물이다. “고등학교 때 연소자관람불가 영화를 본 것처럼 학교에 가서 얘기를 하며 나의 ‘거짓말’은 각광을 받게 됐다. 안 본 영화 줄거리를 짜내느라 수업 때는 공부조차 하지 못했다. 나중에는 소설까지 이르게 되는데, 그 소설 속에서 선생님들을 처참하게 죽이기 시작했다. 소설 속 악당 중 가장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한 것은 교장선생님이었다” 장 감독은 그때 선생님들이 찾아와 자신은 왜 소설 속에 등장하지 않냐며 신경 좀 쓰라고 은근한 압력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그런 시절을 거치며 뒤늦게 드라마와 극 등이 모두 픽션에서 시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시종일관 익살스럽지만 촌철살인의 이야기를 맛깔나게 풀어내는 이야기꾼 장항준 감독 

 

 

∥나는 ‘부도의 아이콘’

 

친구와 영화를 보고 나와 버스를 타고 갈 때 장항준 감독은 창밖을 보게 됐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그 짧은 시간. 길어봤자 1분 혹은 2분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내 머리 속에 스쳐지나가는 질문은 ‘이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였다. 얼핏 보기에 그런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리고 친구에게 영화 티켓을 달라고 말했다. 바로 이 티켓이 내 인생을 바꿀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그는 영화감독의 길에 첫발을 내딛는다. 연극영화과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집 안의 반대는 없었다. 영화를 한다고 하면 으레 부모님의 반대가 있을 법도 하지만 장 감독에게 당시 아버지는 웃으며 “니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니 다행이다”라며 오히려 응원을 해주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선 청중들이 익살스런 장 감독의 표정과 말투에 박수를 보내며 웃었다.

 

학교에 적응할 수 없었던 장 감독. 입학한 곳은 바로 연극과였던 것이다. 타이즈와 슈즈를 가져와 수업 때 신체훈련을 한다는 교수의 말에 그는 ‘잘못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영화과, 문예창작과 등의 수업을 청강하며 절차탁마의 시간을 보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졸업을 맞이한 그. 취업의 난제가 시작됐다.

 

어렵사리 입사한 영화사. 연출부 막내로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입사한지 5개월만의 부도. 그는 “나를 부도의 아이콘이라고 불러 달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이 아주 죽으란 법은 없었다. 지인을 통해 FD로 방송국에 들어가게 된다. 정말 운이 좋았다고 말하는 그. “아는 형이 ‘꾸러기 대행진’이라는 PD에게 가장 신망을 받는 시기였다. 그 시기가 길지 않았지만 그 때에 맞춘 ‘아다리’가 절묘했다. 또 그때 FD자리가 우연찮게 나오게 됐고 바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성공 속에 찾아온 ‘가난’

 

“아주 화창한 봄날 아침으로 기억한다. 작가가 밤에 팩스로 대본을 보냈어야 하는데, 촬영당일 대본이 들어와 있지 않았다. 그리고 그 작가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잠수를 타고 잠적을 한 것이다. 나는 스프링 노트를 꺼내 대충 연습 삼아 끄적여 놓은 대본을 꺼냈다” 장 감독에게 절호의 찬스가 다가온 것이다. 그 때 PD는 그걸 보고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한 글자도 모르겠잖아!” 누구를 보여주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니 글자가 지렁이 흘러가듯 써져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그래서 그날 자신의 대본으로 촬영을 마치게 됐다. 그 기회로 작가실에 당당히 들어가게 되고 월급도 5배로 뛰는 비약적인 황금기를 맞았다. ‘좋은 친구들’이라는 프로그램을 맡게 되고 잡지에도 인터뷰를 하게 됐다.

 

어느 날, 그에게 전화가 왔다. 예전 영화사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에게서 영화사를 차렸으니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으면 들어오라는 제의였다. 영화 시나리오를 제대로 써본 적이 없지만 열정을 믿고 승승장구하던 방송국을 떠나 영화사에 들어가게 된다. “한 달에 5∼6백만 원을 벌었지만 그곳에선 3백만 원이 분할돼 나왔다. 거기에 시나리오가 충무로에 천편의 시나리오가 나오면 영화화되는 게 10편. 흥행하는 게 2∼3편이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지만 장 감독은 방송국을 떠나 영화계에 재입문하게 됐다. 하지만 처음 써낸 작품이 꽤 성공을 거두게 되고, 충무로에 알려지게 된다.

 

하지만 그 뒤로 가난과 친구가 된다. 3년 동안 시나리오만 쓰며 일이 잡히지 않았다. 내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 다른 일은 맡지 않았다. 그러다가 집에 쌀이 떨어지게 되고 아내에게 버럭 한마디 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아내에게 ‘왜 돈은 남자만 벌어야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사람은 역시 위기에 닥쳤을 때 뻔뻔해져야 한다” 역시 장 감독의 코믹스러운 이미지를 보여주기에 알맞은 대사였다. 강연장은 껄껄 웃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사실 아내는 방송에서 일할 때 내 부사수였다. 그 당시 승승장구하던 나는 결혼할 때 아내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말했었는데 말이다” 그러면서 장 감독은 전업주부로 ‘아줌마’의 일생을 살았다고….

 

 그의 이야기에 강연장은 시종일관 웃음으로 넘쳐났다.

 

 

 

∥영화감독의 길을 걷다

 

그런 저런 일상을 보내던 장 감독에게 찾아온 작품은 ‘라이터를 켜라’였다. “근래에 보기 힘든...재미없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지금 OK하면 계약금 바로 줄게’라는 말에 이 작품을 긍정적으로 다시 보기 시작했다. 입금이 되고 나니 모든 동기가 생겨났다” 솔직한 그의 말 속엔 뭔가 모를 돈에 대한 애착심()이 풍겨 나왔다. 어려운 우여곡절을 표현하는 그의 말은 슬픔보단 코믹, 아픔보단 유쾌함에 가까웠다. 돈에 대한 애착심 또한 사회에 찌들었다는 느낌보단 솔직하고 유머러스한 이야기로 다가왔다.

 

“장르는 수단에 불과하다. 영화에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지 무엇을 말하는 지가 중요하다. 단지 코믹영화는 ‘재밌으며 그만이지’라고 말하는 것은 좋지 않다. 수단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장르는 수단일 뿐이다. 즉 장르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는 지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장 감독의 강연이 끝나고 있었다. 그는 “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이야기 ‘헤븐’을 내년에 드라마로 만나게 될 예정이다”며 마지막으로 “앞으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될 것 같다. 그 선택의 기로에서 부디 내가 세상에지지 않고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내가 됐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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