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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현대가 만난 사람 1] 동양적 서정의 극치, 유키구라모토를 만나다.

작성일2011.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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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아무리 뉴에이지 음악을 모르는 사람이라도 `피아노 좀 쳤다`는 친구의 집에서 흘러나왔던 `Lake Louise`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유명한 Lake Louise를 작곡한 `유키구라모토`가 바로 오늘의 영현대가 만난 사람이다. 가슴 저미는 동양적 서정을 아름다운 선율로 옮겨낸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유키구라모토. 음악 평론가와 팬들에게 모두 찬사를 받으며, 여전히 명실상부 일본 뉴에이지의 거장으로 불리우는 그. 부드럽고 아름다운 그의 음악 뒤에는 어떠한 사연과 노력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현대아트홀 오프닝 공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유키구라모토를 영현대가 만났다.

 

     2011년 3월 22일 6시. 공연을 한 시간 즈음 앞두고 유키구라모토를 만났다. 동그란 얼굴과 하얀 수염, 금색 안경은 저 먼 곳에서 음악을 연주하는 무대 위의 유키구라모토가 아니었다. 대학생 기자단을 반갑게 맞이해 준, 유키구라모토는 인터뷰 내내 시종일관 친절하고 진지하게 답변했다. 그의 열정과 음악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꿈, 소박한 행복 등을 통해 우리는 잠시나마 그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대학생 유키구라모토 

꿈에 한 발짝 다가서다.

 

 

   일본 뉴에이지 음악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연주자 유키구라모토를 만든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도 수많은 음악대학에서 미래의 유키구라모토들은 끊임없이 노력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일본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는 보통의 음악가들이 걷는 길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걸었다. 1951년 사이타마현 우라와시에서 태어난 유키구라모토의 본명은 키타노 미노루(北野實), 물론 그는 뛰어난 음악가들이 그러하듯 어린시절부터 피아노를 쳤다. 하지만 그는 도쿄 공업대학 응용물리학과 출신이다. 과연 그는 어떻게 음악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했다.

 

 

Q. 유키구라모토씨의 대학생 시절이 궁금합니다.


     조금 특별한, 특수한 학생이었는데요. 대학교는 동경 공업대학에서 사이언스쪽을 공부했는데, 대학에 와서는 음악 활동이 점점 늘어나면서 들어가서는 공부를 많이 못 했어요. 뭐 호텔 라운지 같은 곳에서 피아노 치기도 하고 나이트클럽 같은 곳에서 치기도 하고 매일 밤 음악 일을 했어요. 낮에도 있었구요. (공부를 너무 안했으니까) 친구들은 너 정말 졸업 잘했다, 니가 어떻게 졸업할 수 있었냐. (웃음) 라고 말하곤 하죠.

 

 

 

 

Q. 어린 시절부터, 매일 밤 음악 활동을 하는 젊은 시절까지 음악과 항상 함께였는데요.

    본격적으로 음악을 `내 길`로 정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대학교 때, 음악 일을 한 게 아르바이트로 한 게 아니고 정말 프로로서 일을 했던 거였어요. 음악을 의뢰하는 밴드 분들도 학생이니까 아르바이트로 와서 해라, 라는 식이 아니라 프로로서 동료로서 일을 부탁하는 수준이었습니다. 대학원까지 나오셨는데 전체 7년이 걸렸는데, 중간에 제가 희망해서 그냥 1년 쉬기도 했고요. 그 사이에 이제 음악이 점점 더 수준이 올라가고 높아졌지요. 졸업하고 나서 음악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제 졸업하는 시점까지도 음악적으로 캐리어(Career)가 생겨서, 그렇게 캐리어가 된 음악을 그만 둘 수가 없어서 계속 하게 됐습니다. 딱 어떤 시점을 따지자면, 대학교 졸업하는 시점에 학문이란 것은 그만 뒀다고 봐야겠죠.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지금의 `유키구라모토`가 있기까지.


 

Q. 대학시절에 프로로서 음악 일을 할 정도였지만, 

    어린시절에는 정규적인 음악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들었습니다.

 

     음악대학에 가기 위한 어떤 그 수업이나 교육이나 작가가 되기 위한 교육이나 그런 건 받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 보통들 어린 애들 피아노 배우는 정도의 교육은 받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집안 사정이 좀 안 좋아져서 피아노도 그 때 다 없어지고 그 때 음악적인 교육이 다 스톱이 됐어요. 그래서 초등학교 6학년에 딱 들어갔을 때 아, (더 이상 피아노를) 할 수 없구나, 라고 좌절을 하셨던 시기도 있었구요.

 

 

 

 

Q.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되셨는데,

     지금의 유키구라모토를 있게 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떻게 보면, 정식으로 피아노 연주자가 되기 위한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저는 항상 음악을 마음에 두고 있었고,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록 음악대학을 나오기 위한 입시를 준비하거나, 특별한 교육을 받고 훈련을 하지는 않았지만, 늘 피아니스트로서의 어떤 그런 노력을 계속해 왔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찌보면 특별한 음악 교육을 받지 않음으로 해서 자유로운 음악 연주를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루마 상도 약간 그런 부분이 있는 걸로 알고 있구요. 


 

Q.  음악은 끊임없는 창작의 연속인데,

     유키구라모토씨는 음악적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나요


     곡을 연주하는 것이든 곡을 만드는 것이든 둘 다 어려운 작업이지요. 영감을 어디서 얻냐고 물어보시면, 항상 그걸 제가 질문을 하고 싶어요. 음악적 영감은 어디서 얻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그걸 알면 영감을 얻는 일은 정말 간단하니까요.(웃음)

    그래도, 제가 음악적 영감을 어디서 얻는지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음.. 일단 좋은 음악들을 자신이 많이 흡수합니다. 음악적 영감을 위해서는 최대한 다양한 음악들을 많이 듣는 것이 필요한데, 프로로서는 음악을 듣는 것뿐만 아니라 음악에 대한 연구나 분석을 해야 하죠. 좀 이과스러운 대답이었죠(웃음)  지금까진 좀 이과스러운 대답이었고요, 지금 문과적인 대답을 하자면, 인생에 희망을 느낀다던가 아니면 그런 희망들을 성취해나갈 때의 기분 삶의 모든 과정 속에서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들 그런 것들에 영감을 받아서 만들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꿈이 있어 행복한 사람.

지금도 꿈을 꾸는 모든 대학생들에게

 

 


Q.  오늘도 꿈을 향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많은 대학생들이 있는데요,

     그런 대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지


      현실적으로 `재능`이라는 부분도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노력도 중요하지만, 재능, 그리고 사람과의 만남, 말하자면 운인데, 그런 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의도하지 않았지만, 사람과의 만남에서 도움을 받고 일을 받고 한 것이 크거든요. 결과적으로 보면 가능성이 없는 것을 희망하는 것 보다 자기가 어떤 능력이 있는지 파악하고 그것을 선택해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으로 곧 있으면 공연인데요.

     현대아트홀 첫 번째 공연을 맡으신 기분이 어떠신가요


      현대자동차에서 후원하는 공연을 예전에도 한 적이 있습니다. 좋은 차 만드시고 큰 회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바빠서 차 운전 할 시간이 없어서 어제 한번 시동 걸어봤는데 배터리가 다 나갔더라구요.(웃음) 오늘 이루마라는 아들뻘의 연주자와 연주하게 되어 매우 기대가 되고. 사실 피아노 솔로를 자주 안 해서, 그런 면에서 저 스스로 도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남과는 조금 다른 길, 하지만 끊임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과 노력에 그 만의 감성이 더해져 오늘날의 `유키구라모토`를 만들었다고 그는 말한다. 어찌보면 음악의 길을 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음악의 길을 가고 있었다는 유키구라모토의 말처럼, 끊임없이 꿈을 꾸고 노력하면 어느 순간, 꿈 속에서 행복해 있는 자신을 발견 할 것이다. 영현대가 만난 유키구라모토는 그의 말대로 끊임없이 `음악`이라는 꿈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었다. 현대아트홀 첫 공연에서도 `아리랑`을 편곡해 이루마와 협연을 할 정도로 여전히 새로운 도전에 주저함이 없는 그는 아직도, 그리고 여전히 음악이라는 공간 속에서 꿈을 꾸고, 노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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