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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별난 대학생 STARKING! PART 3 사회참여 열전

작성일2011.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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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1,2,3. 2005 Afghan Peace Camp

 

 

ENGLAND

청춘, 가난과 전쟁 속으로 걸어가다

Rahel Kroeker ( 콘스탄츠대, 영어영문·정치 3학년, 25)

 

나치군이 되어야만 했던 할아버지는 전쟁 이야기를 해 주셨다. 보이지 않는 눈 앞에는 전장이 아직 있는 듯했다. 열아홉 살. 소녀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갔다. 독일 대학생 라헬은 그녀가 고등학생이던 2005년 여름,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났다. 한국의 자선단체(개척자들)와 함께 그곳 아이들을 가르쳤다. 같은 옷을 입고 함께 포탄 소리를 들었다. 다음 해는 온전히 탄자니아에서의 봉사활동에 쏟았다. 지난해에는 현지인 가족의 결혼식에도 다녀왔단다. 지금은 영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내면서 탄자니아 발전 프로젝트를 위한 성금 마련 계획에 열심이다.

유미진 학생리포터 imyooyang@gmail.com

 

 

Q 봉사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있어

2차 세계대전에 강제로 참전하셨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커. 전쟁 중에 얻은 병 때문에 거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셨는데, 팔순의 나이에도 참 많은 것을 기억하고 계셨어. 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전쟁에 대항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 아프가니스탄을 돕게 된 것도 이곳이 전쟁으로 망가졌기 때문이야. 열여섯 살 때 평화를 주제로 하는 청소년 캠프에서 했던 일종의 역할 놀이도 중요한 계기가 됐어. 제가 속했던 제3세계 조는 쌀과 조금의 물만 가지고 바닥에 앉아 있었어. 제2세계 조는 멋진 장식이 된 테이블 위에 원하는 만큼의 쌀, 물, 채소를 올려 놓고 있었지. 조 사이의 이동은 불가능했고 불리한 연합 관계만 맺어졌어. 탄자니아에 가서는 이 놀이가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

 

Q 치안이 보장되지 않은 지역인데 위험했던 순간이 있지 않았어

떠나기 전에 유서도 썼고, 국경지대에서 살인 위협을 받아서 버스 안에서 꼼짝 없이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어. 한 번은 가까운 곳에서 폭탄 소리가 크게 들렸는데, 인터넷이나 라디오가 모두 없어서 떨고 있을 수밖에 없었어.

 

Q 학업에 방해가 되지는 않아

공부에 투자해야 할 시간을 뺏겼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책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배웠으니까. 신문에서 읽는 것이 국제 분쟁의 전부가 아니었어. 직접 보고 느끼면 많은 것을 알게 돼요. 서구 세계가 기득권을 유지하는 방법으로 자선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 그리고 김치가 맛있다는 것도 알았지. (웃음) 아프가니스탄에 다녀온 후에 다시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기억이 나요. 집중도 잘 안되고, 피난민 캠프의 기억 때문에 고통스러웠고 슬펐어.

 

Q 앞으로의 계획은

경제학 공부를 시작할 생각이야. 정치학과 함께 국제 분쟁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서야.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지금 추진하는 일로 탄자니아에 또 한 번 갈 것 같아. 지금은 들어갈 수 없는 아프가니스탄에도 언젠가는 꼭 다시 가려고 생각하고 있어.

 

 

 


 

 

 

4. 올라와 아이들

 

 

US_newyork
애엄마라고요

미래의 여성 인권 운동가랍니다!
Ola Halawani (버팔로 주립대 ELI수강생, 29)

 

올라를 처음 만난 건 Chatting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유학생들에게 미국 대학생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고자 마련한 시간이다. 그 날은 여느 때와 달리 머리에 히잡을 두른 여학생이 내 파트너였다.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온 그녀는 1983년 생으로, 한국 나이로 29세다. 남편(42)과 11살, 7살인 두 아들, 그리고 3살인 딸 아이와 함께 2010년 12월 미국으로 건너왔다. 그녀는 현재 버팔로 대학에서 영어 수업을 들으면서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다.

김창영 학생리포터 kimcy1621@hanmail.net

 

 

Q 미국에 오기 전, 사우디아라비아에서의 생활이 궁금해.

5남매 중 장녀여서 책임감이 강했어. 부모님이 5년 전에 이혼하셨는데, 막내 여동생이 겨우 13살이야. 나는 또래 애들보다 결혼을 일찍 했어. 16살에 지금의 남편과 약혼, 1년 후에 결혼했어. 고등학교 마지막 학기시험을 치르기 2주 전에 첫째가 태어났는데, 공부할 시간이 부족해서 첫 학기 시험(99%)보다는 조금 못 봤지만(95%) 학내 best student를 놓치지 않았지. 대학에서는 Human Art를 전공하였는데, 졸업 후 중학교에서 1년 정도 아이들에게 Art를 가르쳤어. 배식봉사활동도 하고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지. 대학 입학 후 둘째가, 졸업 후 셋째가 태어났고.

 

Q  한국에서는 띠동갑 정도가 되면 ‘도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나이 차이가 많아서 불편한 점은 없어

도둑 맞습니다.(웃음) 남편은 현재 휴직 상태야. 사우디 아라비아 여성이 유학을 갈 경우, 반드시 남성 보호자가 따르도록 돼 있어. 미국으로 오기 전 자기소개서도 써야했고, 비자도 발급받아야 했는데, 아마 남편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여기에 없을 거야. 남편이 배려도 많이 해 주고 여러모로 많이 도와줘. 또 사우디 아라비아 정부에서 테러국이라는 중동국가의 이미지 쇄신 등을 목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해외에서 공부하도록 장려하고 있어서 수 천 명이 유학을 하고 있거든. 생활비, 학비, 보험 등의 모든 필요한 경비을 제공하기 때문에 무일푼으로도 유학생활을 할 수가 있어. 남편이 나를 보조해주는 것도 그러한 정부 배려의 일환이고.

 

Q 꿈이 있다면

Communication&Leadership 대학원에 지원했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어. 최종적인 목표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돌아가서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해서 일하는 거야. 법 공부를 하려고 했었는데, 다들 법 공부는 어렵다며 말리더라고. 법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황을 다루고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 줬어.

“꿈이 있다면 끊임없이 추구하세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극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6. 사회적 책임 워크숍 p   /   7. 웃는 닉의 모습

 

 

GERMANY
당신의 코드명은 무엇인가요
Nick Deimel (만하임대 경영전공 4학년, 20)

 

닉은 현재 독일에서 이루어진 적이 없는 새로운 프로젝트의 리더다. 바로 Code of Ethics of  University Mannheim(Ethik Kodex der Universitat Mannheim). 이 프로젝트는 만하임 대학교의 학생으로서 ‘윤리’를 정의하는 프로젝트다. 교과서도 학교도 아니다. 재학생들 스스로가 대학생으로서 자신의 핵심 가치를 생각해보는 것이다. 지난해부터 논의가 시작되어 올해 초부터 강의, 스피치, 워크숍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이루어진 Code들은 모든 학생들이 학기를 시작하기 전에 배포될 예정이다.

김근혜 학생리포터 fromswing@naver.com

 

 

Q 윤리, 사회적 책임은 굉장히 추상적인 주제인데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흥미를 잃은 주제인 것도 맞고. 사람들에게 실질적이고 직접적으로 와 닿는 접근법이 필요했어. 그래서 주체를 만하임 대학생으로 명확히 했어. 그런 다음 Bottom-up 방식의 3가지 단계로 진행했어. 매우 구체적인 항목으로 구성된 설문조사로 학생들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스피치를 준비하고 워크숍에 피드백을 모두 반영하여 진행했어. 팀 동료들과 서로 의지하며 많이 성장한 것이 이렇게 돌아오네.

 

Q 어디서부터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어

1학년에 재학 중일 때 갑자기 깨달았어. 만하임은 경영 분야로 독일에서 제일 유명한 학교인데 사회의 우수 인재들은  자신의 취직에만 집중하고 있는 거야. 어떠한 결정을 할 때 다른 사람들에 대한 고려나 책임이 없지. 이렇게 지속되면 막상 사회적 책임을 다 하려고 해도 어떻게 하는지를 몰라. 나는 고등학교 때 언제나 토론을 했어. 학교에서는 끊임없이 왜 우리가 이러한 가치를 생각해야 하고 이를 명확하게 하는데 집중시켰어. 이러한 학교의 가치와 원리에 대해 알아가고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지. 내가 하는 모든 의사결정에 큰 도움이 됐어. 그래서 이게 첫걸음이야. 학교의 중심 가치를 만드는 것. 지금 만하임 대학에는 사회를 위해서 기본적으로 생각할 중심이 없어.

 

Q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에 주저하는 한국의 친구들에게 한마디 해 줄래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기 위해서는 과정이 필요한 것 같아. 관심을 이끌어서 일단 오게 한 다음, 사람들이 사회를 지켜보고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도록 하는 거야. 많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고 두려워해서 동기 부여하는 건 매우 어렵고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해. 여기도 똑같아. 사람들은 의지는 있지만 잘하지 않거든. 하지만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회를 제공하면 사람들은 얼마든지 참여하고 변화할 의지가 되어있음을 실감했어. 참석해 준 수많은 사람들과 워크숍의 피드백, 직접 찾아와 프로젝트에 더 깊이 관여하려는 많은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사회적 책임에 대하여 닫힌 생각을 하는 건 독일만의 문제가 아니잖아. 모든 사회의 문제이지. 어느 사회든 일부 사람들이 엄청난 노력을 쏟아 변화를 만들려고 해. 이건 모두의 문제니까. 우리는 사람이니까.

 

 

 

 

본 기사는 대학내일에서 영현대에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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