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峨山 정주영 10주기 사진전...그 곳에서 그와 인터뷰하다!!

작성일2011.06.16

이미지 갯수image 12

작성자 : 기자단

 

 

2001 한국엔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안타까웠던 소식은 아산 정주영 이란 큰 별이 졌던 소식이였다. 그로부터 10년 후인 2011! 우리는 그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를 볼 수 있게 되었다는 부푼 기대감으로 카메라와 노트, 펜을 들고 아산 정주영 10주기 추모 사진전이 열리고 있는 부산대학교 굿플러스 7층 아트센터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7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는 순간! 마치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어 보이시며 자신의 사진전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셨다.

 

 

(부산대학교 아트센터 아산 정주영 10주기 사진전 입구)

 

 

정주영 회장님, 그동안 정말 뵙고 싶었습니다. 10년 동안 너무 그리웠습니다. 다시 뵙게 되어 너무도 영광입니다. 수많은 말들을 그에게 하고 싶었지만, 여전하신 그의 카리스마에 압도 당하여, 감히 아무 말도 못하고 사진전 입구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리고 용기있게 한마디를 외쳤다! 회장님! 제가 오늘 회장님과 인터뷰를 해도 되겠습니까 아무런 대답없이 미소만 지어 보이시며, 제일 먼저 데려온 곳은 바로 그의 청년시절 이었다.

 

 

( 아산 정주영 회장의 청년시절 모습들 )

 

 

MC : 회장님 젊으셨을 때 정말 잘생기셨어요! 회장님의 청년시절은 어땠나요

峨山 : 난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건강근면함을 물려받았어. 그 두가지만 있으면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발전할 것이고, 모레는 내일보다 한걸음 더 발전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 농사꾼의 자식으로 태어난 내가 서울로 올라와 고된 막노동을 했을 때에도 난 그러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언제나 활기찼고 행복했단다.

 

 

 

 

 

 

 

(100% 국산차 포니와 정주영 회장의 사진들)

 

 

MC : 포니 사진이 보이네요. 회장님께서는 자동차를 필생의 사업이라고 항상 강조하셨는데,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 자체가 없었던 우리나라에서 굳이 자동차 산업에 관심을 많이 가졌던 이유가 무엇인지요

 

峨山 :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라고 생각해왔어. 우리의 자동차가 수출되고 있는 나라라면 어느 곳에서나 자동차를 자력으로 생산, 수출할 수 있는 수준의 나라라는 이미지 덕택에 다른 상품도 덩달아 높이 평가되지. 그리고 사실 자동차를 완벽하게 생산하면 그 나라의 기계공업은 항공기든지 뭐든지 다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거란다. 그러니까 그 당시 한국 경제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자동차 산업의 성공이 필수였지.

 

 

 

 

 

 

(현대 직원들과 어울려 격의 없는 경영주의를 꿈꿔온 아산 정주영 회장의 사진들)

 

MC : 여기에 있는 사진들에선 누가 대기업에 회장님이고, 누가 직원인지 모를 정도로 허물없이 즐거워 보여요. 회장님에게 근로자들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峨山 : 나에게 그들은 같이 몸을 부딪히며,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란다. 나 자신이 노동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고, 지금도 나 자신을 그저 꽤 부유한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나의 일생은 기능공, 근로자들과 함께한 세월인 거지. 작업을 몰아칠때는 혼이 나가도록 무섭게 몰아쳤지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과 한데 어울려 허물없이 술잔도 나누고 팔씨름도 하면서 육체적으로 고달픈 그들의 휴식에 동참하고자 했었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편하고 행복했었으까...

 

 

(하계 수련회에서 직원들과 씨름도 하고 트럼펫을 불던 아산 정주영)

 

 

MC : 회장님에 취미가 궁금합니다. 혹시 회장님도 노래나 스포츠를 좋아하시나요

 

峨山 : 그럼 물론이지. 난 주로 윤향기의 이거야 정말과 송대관의 해뜰날, 서유석 가는 세월 같은 노래들을 즐겨 부르곤 했지. 스포츠도 마찬가지로 많이 좋아했었어. 씨름이랑 야구를 특히 좋아해서 하계 수련회 같은 곳에 가면 내가 그때 나이가 꽤 많았었는데도 새내기 사원들에게 배지기 같은 기술로 이기곤 했었지.

 

MC : 회장님에게 가족의 의미는 남다를 것 같아요.

 

峨山 : 난 유가적 전통에 따라 대가족을 이끌길 원했어. 그래서 많은 식구가 살았지. 무엇보다 이러한 대가족을 이끌게 해준 나의 아내에게 항상 고마움이 있지. 우리 아내는 아직도 재봉틀 한 대를 유일한 재산으로 알고, 자신이 부자라는 인식을 전혀 하지 않는 점을 난 많이 존경한단다.

 

 

 

(아산 정주영 회장과 아내 변중석 여사, 밑으로는 정주영의 대가족 사진)

 

 

 

 

 

 

 

MC : 이렇게 회장님과 인터뷰를 하면서 사진전을 보니 100여점이 넘는 사진들도 어느새 다봐가는 것 같아요. 이번 사진전은 인상적인 부분이 전국에 9개의 대학교를 순회하면서 전시한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대학교에 사진전을 순회전시하신 이유가 있나요

 

峨山 :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지성인들인 대학생들에게 10년 동안 조용히 지켜봐 오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았단다.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자신의 꿈을 향해 부딪혀야 할 대학생들이 어려운 취업난에 허덕이고, 그로인해 수치화된 학점이나 영어성적에만 매달리고 있는 현실이 많이 안타까웠어. 사실은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말이지.

 

MC : 그렇다면 끝으로 대학생들에게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峨山 :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해내는 법입니다. 의심하면 의심하는 만큼밖에는 못하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꿈을 가지고 과감하게 도전하세요.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개척해 나가십시요. 그렇게 한다면 어느샌가 자신이 꿈꾸던 꿈이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와 있을 겁니다.

 

 

  어느덧 사진전의 길이 끝을 달하고 있었다. 무서울 것이라 생각해서 잔뜩 긴장을 했던 내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가족과 나라를 사랑하고, 직원들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는 아산 정주영 회장님의 인간적인 모습에서 편안함 마저 들었다. 사실, 비록 그를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실제로 만난 것 보다 더욱 가까이에서 함께 함을 느꼈고, 그의 존재가 이 시대에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는지를 전시장 마지막 통로에서 그는 말해주고 있었다.

 

 

 

 

 

 

- 영현대 글로벌 대학생 기자단 7기 취재 기자 구명찬 -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