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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함으로 세계를 사로잡은 '괴짜' 영화감독 이상우!!

작성일2012.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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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우리나라 영화계 현실은 너무나도 열악하고 치열한 경쟁이 존재한다. 누구는 50~60억으로 영화를 찍지만 누구는 500만원으로 영화를 찍어 세계영화제에 한국 영화를 알려 국위 선양을 한다. 돈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만 가치의 크기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여기, 끝없는 열정으로 세상의 부름에 외칠 준비를 하는 사람이 있다. 남들과 다른 독특한 전략과 시선 그리고 남들과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괴짜' 영화감독 이상우씨다.

 

이상우 감독에게는 영화’ 가 숙명이라는 단어와 가깝다. 그의 어린 시절은 공부보단 영화 이야기가 좋았고 노는 것 보다는 영화 보러 다니는 것이 좋았다. 극장에 살다시피 했으며 장르불문하고 영화를 봤다. 그러니 당연히 성적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가고 싶은 영화학과를 지원했지만 4수를 했음에도 그의 성적으로는 받아 주는 학교가 없었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그는 자신을 자책했다. 학업에 대한 자학이 자신의 얼굴을 얼룩지게 하고 있었다. 그는 결심했다.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무작정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돈을 모아 미국행 티켓과 여권을 만들고 미국으로 향했다. 물론 부모님의 반대도 많았지만 영화에 대한 열정은 부모님도 꺽 을 수 없었다. 미친듯이 토플 공부를 해서 UC버클리주립대 영화학과에 입학했다.

 

 

  

▲(좌)2012년 '전주영화제' 상영된 '지옥화 (우)2011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된 '바비'

 

 

영화학과에 들어갔다고 해서 꿈을 이룬 것은 아니였다. 95년 당시 미국은 한국에 비해 물가가 워낙 비쌌기 때문에 알바를 하면서도 돈을 어떻게든 아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모님에게 전화를 하러 공중전화에 들어갔는데 폭탄이 터졌다. 그가 일어난 곳은 병원 이였고 눈은 실명위기, 몸에는 파편이 박혀있었다. 그런데도 부모님이 걱정할까봐 깨어나자마자 부모님을 걱정시켜드리지 않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그때의 상처들로 몸엔 자국이 있으며 왼쪽 눈 또한 좋지 않다. 또 한번은 심리 상담을 한적이 있는데 너무 편한 어머니 같은 분이 상담을 해 자살 하고 싶다고 장난스레 한말이 덩치 큰 두사람에 의해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됬다. 정신병원에서의 일주일간은 미국 마약중독자. 정신병자들과 함께한 잊을 수 없는 날들 이였다. 그는 다행이 정신병 증세가 없었기 때문에 풀려났지만 이 모든 일들이 이 상우 감독에게는 왠만한 시련을 겪을 수 있을만한 갑옷역할을 하게 됐다.

 

 

험난했던 많은 일들을 겪고 한국에 오게 되었지만 그의 시나리오를 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단돈 1만원도 투자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인생에 좌절이란 없었다. 직접 아르바이트를 해 자금을 모으고 시나리오를 쓰고 무대를 만들고 편집과 영상을 촬영했다. 최대한의 인력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일어나 준비한 결과이다. 그런 반복을 8번이나 해낸 끝에 8편의 독립영화를 완성해낸다. 보통 독립영화는 투자를 받지 못해 한 번이상 찍기 힘든데 그는 무려 8편이나 찍은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좌절하지 않는 그의 천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상우 감독을 여기까지 오게 만든 그의 작품들

 

 

아무리 영화를 많이 찍는다고 해도 관객들이 봐주지 않으면 감독들에게는 크나큰 상처와 아픔들로 돌아온다. 6~8개월을 힘들게 찍은 영화를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면 누구나 그럴 것이다. 그는 남들과 다른 전략을 택하기로 한다. 사람들이 볼 수 밖에 없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엄마는 창녀다><아버지는 개다>이다. 처음에 악플도 많았지만 그것 또한 관심이라 생각한 그는 악플러에게 직접 전화해 고맙다고 인사까지 했다. ‘부산영화제’ ‘전주영화제를 비롯해 외국에 있는 많은 영화제에서는 한국 에서온 변태감독이라는 칭호로 알려졌다. 이제는 그런 칭호가 즐겁게 들리는 애칭이 된 것이다.

 

 

그가 그런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집안이 그런 것은 절대 아니였다. 그의 집안은 누구보다 행복했고 화목했다. 그는 관찰력이 뛰어난 것 일 뿐이였다. 많은 시련을 겪은 그에게는 사회문제가 눈에 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아주 사소한 사건들도 항상 메모하고 사건전말과 결과를 알아내는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런 이야기들이 시나리오로 쓰이게 되고 촬영을 하게 되고 연기까지 하게 된다. 누구보다 그 사건에 대해 더 잘 담아 낼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모든 걸 발로 뛰고 열정적으로 움직였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2012년 '지옥화'를 통해 '모스크바영화제' 참여한 이상우 감독과 배우 차승민 원태희

 

 

이런 노력 끝에 그는 다수의 외국영화제에서 상을 받고 여러 투자제작 의뢰도 들어왔다. 또한 교수로 활동하면서 제자들에 대한 사랑도 남다르다. 자신과 재능과 열정을 항상 강조하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영화를 찍는데 돈이 많이 들면 인력을 줄이고 카메라가 없으면 폰으로라도 찍고 폰이 없으면 친구한테 빌려서라도 찍어라” “환경을 탓하기 전에 열정으로 부딪쳐 보는게 영화감독의 자질이다라고 항상 강조한다. 그를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든 것은 모두 자신의 경험과 노력 끝에 나온 것 들이다.

 

  그는 바쁜 활동을 하는 와중에도 자신의 영화 찍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1년에 한편이상의 영화를 찍고 영화제에 출품시킨다. 올해만 전주영화제’ ‘모스크바영화제’ ‘이탈리아영화제에 초청을 받았으며 장편 상업 영화 <조선 성형의 꽃> 도 준비중이다. 그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영화를 찍는게 목표다. 또한 미국에 진출해 한국감독으로 국위선양 하는게 목표다. 9년간 그곳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누구보다 미국의 환경과 감성들을 잘 알기 때문에 그의 영화가 전 세계 잘 될 일은 얼마 남지 않았을 것이다.

 

▲2012년 '모스크바영화제' 기자회견중인 이상우감독과 배우들

 

그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을 좋아하고 찍고 싶어한다. 그의 오뚝이 같이 일어서는 정신과 어떠한 시련에도 좌절하지 않는 열정이라면 그의 꿈의 무게는 이미 기울어 져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앞으로 <타이타닉>을 능가하는 영화를 완성해내 전 세계적으로 국위선양을 하는 그의 모습이 전 세계 신문의 1면을 차지하는 날을 기다며 항상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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