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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공기, 기자가 인터뷰한 기자! - 한국경제신문 김홍열 기자를 만나다.

작성일2012.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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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영현대 기자단으로 활동하면서 어렴풋이나마

‘기자 생활이란 이런 것이구나.’라고 느끼고 있다.

한편으로는 현직 프로 기자의 생활에 대해 궁금하기도 했다.

그들은 어떻게 기사를 쓰는지 알고 싶었고,

어떻게 하면 나도 그들처럼 멋진 기사를 쓸 수 있을지 늘 고민해왔다.

영현대 기자가 인터뷰한 기자!

한국경제신문 김홍열 기자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김홍열 기자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한국경제신문 본사.

 

 

기자탐구생활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다. 기자는 누군가에게는 선망의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인 기자 생활은 어떨까

기자가 되어 신문사에 들어오면 업무 강도가 굉장히 세다. 공무원들은 보통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이라는 것이 대체로 칼같이 지켜진다. 하지만 기자는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또한 외근기자들은 출근부터 퇴근까지 자신을 풀가동 시켜야 한다. 일간지 기자들은 매일 오후 4시까지 기사마감을 하고, 그 이후에는 다음 기사를 위해 계속해서 취재를 다녀야 한다. 기사가 나간 뒤에는 특종이냐 낙종이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기사를 쓰는 과정에서, 그리고 쓴 이후에도 따라오는 스트레스와 압박도 엄청나다.

 

 언론사는 일반 기업처럼 직급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고, 한 부서 내에 차장과 부장만 있다. 차장 역시 발로 뛰며 직접 기사를 쓰고, 부장은 담당 부서의 전반적인 기사들을 검토하고 총괄하는 역할을 한다. 보통 회사와 다르게 직급이 엄격하게 나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부장 이외에는 모두 동등한 지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만의 창조물, 즉 기사를 올린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기업이 제공하는 보도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하는 것은 기본이고, 직접 발로 뛰어 다니며, 더 정확하고 많은 정보들을 수집해야 한다. 기자에게는 수위부터 대통령까지 만날 수 있는 일종의 특권이 주어지는데, 이 기회를 잘 활용하여 여러 사람을 만나고 더 많은 정보를 알아낸다. 여기서 캐낸 정보들은 똑같은 주제의 다른 기사들과 차별화를 둘 수 있다. 같은 소재의 기사를 쓰더라도 자기만의 색깔이 담겨 있고, 더 많은 정보력을 가진 기사를 쓸 수 있는 것이다. 남들이 알아내지 못한 더 정확하고 중요한 정보를 덧붙일수록, 나아가 특종기사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특종기사를 많이 발굴할수록 기자로서의 진가가 높아진다.

 

 프로 기자의 생활을 들으며 기자 생활이 만만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독자들에게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기자들이 많은 노력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 영현대 기자단이 글을 쓰는 과정도 역시 이와 흡사하다. 한 편의 기사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많은 노력 끝에 얻어지는 결실임을 또 한 번 느꼈다.

   

늘 인터뷰를 하는 입장이었다가 이번에는 인터뷰를 받는 입장이 된 김홍열 기자.

 

 

 김홍열 기자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서 기자가 되었다. 기자가 되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인관계와 관심영역의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견문을 쌓으며 오픈마인드와 세상을 바라보는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먼저 국내에서 여의도 증권거래소 등 주식시장을 5년간 다니며 취재를 했다. 그리고 나서 산업부에 소속되어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포스코 등 대기업들을 주로 취재했고, 정치부에 몸담으면서는 총리실과 2007년 대통령 선거, 2008년 총선에 대한 기사를 썼다. 이후 국제부 소속으로 미국으로 발령이 나서 올 상반기까지 4년동안 워싱턴 특파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했다.

 

 

워싱턴에서 생긴 일 - 미국 특파원으로 가다

 그는 미국 워싱턴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워싱턴에 있는 백악관, Fed, IMF(국제통화기금), IBRD(세계은행), 미국상공회의소, 연방의회, 국무부 등 주요 기관들을 방문하여 취재했다. 여기서 알아낸 따끈따끈한 소식들을 매일 한국으로 보내는 역할을 했다.

 

 역사적인 순간에 김홍열 기자는 모든 상황을 직접 보고 들으며 그 현장에 함께 있었다. 정확히 2008년 8월 1일에 그는 워싱턴에 도착했다. 곧이어 그 해 9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하고 월스트리트 발 금융위기가 닥쳤다. 혼란과 격동의 시기였던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정신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때의 분위기는 정말 미국이 망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심각했다.

 

 그러나 2009년, 2010년이 되면서 차츰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어느 정도 살아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미국 경제의 위기와 회복, 모든 과정을 지켜보면서 워싱턴이라는 도시가 단순한 미국이라는 국가의 수도가 아님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세계의 정치, 경제, 외교 1번지임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워싱턴 내에 있는 백악관, Fed, 재정부 등 주요 기관에서 발표한 내용들은 전 세계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미친다. 이곳에서 전 세계인들은 오바마와 벤 버냉키의 입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인다. 워싱턴이 세계의 중심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고 한다.

 

대학선배이자 인생선배로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도 아끼지 않았다.

 

 

영어 뽀개기! - 영어 인터뷰 정복기

 한국 젊은이들의 최대 관심사이자 골칫거리는 바로 '영어'다. 신문사 국제부에 소속되어 미국 특파원으로 활동할 만큼의 뛰어난 영어실력을 가진 김홍열 기자. 그는 어떻게 영어 공부를 했을까

 

 그는 영어로 된 시사 잡지를 보며 영어 실력을 쌓아갔다고 한다. 영어뿐만 아니라 시사에 관한 내용 역시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시사 잡지 속에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일들을 다루기 때문에 공부하기 좋았다고 한다. 이 공부법으로 경제와 영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었고, 실력 있는 경제 기자로서의 밑바탕이 되었다. 

 “저 역시 원어민이 아니고 한국에서 자랐으니 영어가 쉽지만은 않았어요.”

 그는 영어학과를 졸업하고 입사 당시 영어 성적 1등이라는 실력자지만, 본토에서 영어로 취재하는 것은 그가 언어의 장벽을 느끼게 했다.

 

 영어 인터뷰를 하다 생긴 에피소드들도 많다. 존 립스키 IMF 수석 부총재를 인터뷰하는데 부총재 측에서 김홍열 기자의 영어실력을 확인하고자 인터뷰 원고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날 밤새서 토씨하나 빠트리지 않고 인터뷰한 내용을 바로 보내주자, 이렇게나 빨리 보냈냐며 깜짝 놀랐다고 한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즉 미국의 중앙은행) 의장을 인터뷰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가 인터뷰를 완전히 이해하고 알아들었는지 여부가 궁금했는지 인터뷰 내용을 메일로 보내 달라고 했다. 인터뷰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니 분량이 10장이나 되었다고 한다. 이 원고를 보내고 나서 그린스펀이 직접 잘못된 부분을 첨삭해서 보내주었고, 이런 식으로 서너 번 정도 첨삭메일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세계적인 유명인사와 인터뷰를 하고 첨삭을 받은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회상했다.

 

 

18년산, 그만의 기자 스토리

 1995년에 한국경제신문에 입사하고 난 후, 20년이 다 되어가는 기자 경력동안 수많은 취재와 인터뷰를 해온 김홍열 기자. 많은 기사를 쓰면서 어떤 취재가 가장 인상 깊었을까

 

 IMF 최초의 여성 총재인 크리스틴 라가르드를 취재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녀가 IMF 총재로 취임하고 나서, 워싱턴에 있는 각국을 대표하는 하나의 언론사 기자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다. 그때 한국대표로 유일하게 한국경제신문의 김홍열 기자가 그 자리에 초청되었다. IMF 회의실에서 각국을 대표하는 언론사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취재를 했다. 그가 질문을 던지고 라가르드 총재가 대답하는 이런 취재 과정들이 기자로서 영광스럽고 뿌듯했다고 한다.

 그녀의 취임 당시 그리스 재정위기가 빅 이슈였다. 한국, 중국 등 신흥국가들이 돈을 모아 유럽과 그리스를 도와야하고, 이와 관련해 한국과 IMF 사이에 긍정적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라가르드가 대답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그는 다음날 1면 전체에 이 내용에 대한 탑기사를 실었다.

 한국 정부는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러운 일이라 이것에 대해 사실여부를 답하지 않았다. 다만 워싱턴을 방문했던 기획재정부의 고위 관계자가 그에게 말하길, 굉장히 임팩트 있는 기사를 썼다고 등을 두드리며 칭찬했다. 이후에 이 기사가 현실화 되었다. 올 상반기에 한국은 거금을 들여 그리스를 돕겠다고 밝혔다. 그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고 중요한 정보를 담은 기사를 썼다는 것이 입증되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기사를 정확하게 쓰고, 자신의 기사가 사실로 증명됐을 때 기자로서 뿌듯함을 느껴요. 기자생활이라는 게 그런 거예요.”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와 함께한 김홍열 기자.  (사진제공)

 

 

 기자 활동을 하며 언제 힘들었냐고 물으니, 취재원과의 신뢰관계가 깨질 때라고 말했다. 예를 들면 어떤 기업의 CEO를 취재하고 싶다고 그가 가장 먼저 인터뷰 신청을 했는데, 경쟁 언론사의 다른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가 몇 번 있었다. 기업 홍보실과 관계자를 믿고 취재 신청을 했는데, 인터뷰를 하기 위한 그의 노력과 신뢰에 어긋나게 다른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배신감을 느끼기도 하고 힘들었다고 한다.

 

 보람 있을 때는 자신의 기사가 어떤 기업이나 혹은 누군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됐을 때라고 했다. 나의 기사가 독자들에게 알려져 반향을 일으키고, 기업이 전략을 짜거나 정부가 정책을 세울 때, 내 기사가 도움이 되면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언론은 사회의 공기라고 할 수 있어요. 그 공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고 스스로 인정할 만큼의 성과가 있을 때, 뿌듯하고 보람차요.”

 

 기자를 꿈꾸는 이들에게 한마디를 청했더니, 가장 먼저 '관심'을 강조했다. 주변에 일어나는 사회, 경제, 정치적인 현상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기자는 주변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되고, 더 나아가 열정이 돼요. 공부도 관심이 없으면 학습속도가 안 나가잖아요. 기자도 마찬가지에요. 사람과 이슈에 대한 관심이 없다면 언론사에 입사한 뒤에 회의감에 빠질 수 있어요. 뭐든지 관심을 가지고 열심히 추구하세요. 그러다보면 뭔가 더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고, 그 욕심은 열정이 되어 기자 활동에서의 원동력이 될 거예요.”

 

 

다음 기사를 위해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는 김홍열 기자.

 

 

인터뷰를 마친 후에도 기사 마감으로 인해 바쁘지만

대학 선배, 인생 선배로서 유익한 조언들을 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곧바로 다음 기사를 위해 바쁘게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정말 기자라는 직업은 열정이 없으면 하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가를 즐길 시간마저도 부족하지만, 가장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스트레스와 압박을 즐길 줄 아는 진정한 프로 기자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필자 역시 영현대 기자단 활동을 하며 그의 모습을 본받고 싶다.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그의 멋진 기사들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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