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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이여, 열정이 없다면 청춘에 대한 모독이다.

작성일2012.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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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하루가 마무리 되어가는 이 시점. 오늘도 내가 사랑스럽다! 유성웅이 비로소 나여서 좋은 순간! 끝까지 청춘을 짜내보자! 쭉쭉쭉!”

2012.9.20.일자로 하루 일과를 마치며 본인의 페이스북 담벼락에 쓴 이야기이다. 열정이 없다면 청춘에 대한 모독이라 이야기하는 유성웅씨, 그에게서 어떤 열정이 숨어 있을까 지금부터 승승장구 MC를 맡게된 영현대 기자가 그를 샅샅이 파헤쳐보겠다!

 

 

 

 

 

 

안녕하세요. 승승장구MC를 맡은 영현대 기자 박종문입니다. 오늘은 청춘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대학생 유성웅씨를 만나보겠습니다! 승승장구에 왔다면 빠질 수 없는 공식 첫질문이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맛과 멋의 고장 전주시에서 후회없는 청춘을 살아가는 20대 유성웅입니다!”

 

 

 

 

 

 

 

매번 인터뷰를 하기위해 취재를 다니면서 정작 본인에게 인터뷰를 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쑥쓰러워하는 모습이 보이네요. 첫 답변을 하는 그의 모습에게서 쑥스럽지만 유쾌한 모습을 통해 대학생다운 모습을 볼 수 있네요. 다음으로는 영현대 독자를 위해 본인에 대한 소개를 자세히 해주시죠!

안녕하세요. 저는 전북대 신문방송학과에 재학중인 26살 유성웅입니다. 현재 스포츠 언론인 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스포츠 언론인의 준비를 위해 지금은 대한축구협회(KFA)에서 초중고리그 기자활동을 하면서 올해로 3년째 활동중에 있습니다. 그리고 경영학을 복수전공을 하며 스포츠마케터 로도 관심을 가지면서 이 분야로 시야를 넓히고 있는 중입니다.”

 

 

 

 

유성웅씨는 인터뷰 전 날에도 김해시로 취재를 다녀왔다고 하죠 매번 취재를 다니는 것은 4학년이란 중요한 시기에 시간적으로 부족한 점이 어려울텐데 자신의 꿈을 위해 투자하는 시간이기에 아깝지 않다고 하네요. 유성웅씨는 대학생이라면 관심있어할 대외활동을 한 경력이 있다고 하는데요. 그의 화려한 경력들을 살펴볼까요

 

 

1. 대한축구협회(KFA)에서 명예기자로 활동을 시작. 3년동안 활동을 하며 지금은 취재기자로 승격

2. 영상제작 동아리에 속해있다는 유성웅씨. 전주시의 티브로드 케이블방송의 티브로드에 지속적으로 영상작품을 출품하면서 동아리에 관련된 많은 경력

3. 한국마사회 기자단에서 활동

4. 병무청에서 ‘청춘예찬’ 블로그 기자단으로 활동

5. 한국농어촌 기자단을 활동하며 농어촌공사 사장상의 최우수상을 받는 영예를 얻어 제주도 34일 여행권을 받으며 가족과 여행

6. 내셔널 축구리그에서 명예기자 로 활동하며 기사와 영상을 제작하는 활동을 하였다.

7. 대한축구협회(KFA)리그의 신문기자 로 활동하며 본인의 기사가 메인으로 실림

8. 부산KT소닉붐 프로농구단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스포츠마케팅을 배울 수 있는 프런티어즈 3에서 활동하며 경기지원팀의 팀장을 맡았다.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면서 배운 영상제작에 대한 기술을 가지고 부산KT소닉붐 프로농구단의 홍보영상이나 프런티어즈 3기의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만들며 기술을 마음껏 펼쳤다. 열심히 활동한 결과  프런티어즈 최우수상에 버금가는 프런티어즈 차상을 받음

9. 그는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이 쪽으로도 활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는 군대에 있으면서 꿈꿔온 것이 해외아동후원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취재기자로 활동하며 나오는 활동비를 조금씩 모아서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고등학생때 한국 근현대사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한다. 그래서 지난 해 1000번째 촛불집회에 참여하면서 후원금도 내고 할머니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도 위안부 할머니들께 금전적인 후원이나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지원활동을 하면서 청춘을 함께하고 있다고 한다.

 

 

 

유성웅씨의 대외활동의 경력들을 살펴보면 본인의 학과에 관련된 분야로 활동한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스포츠 언론인을 꿈꾸는 그에게 가장 적합한 대외활동을 찾아 활동하는 부분에 있어 유기적으로 연관성을 가지며 본인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며 청춘을 보내고 있네요. 그리고 스포츠마케터가 되면서 이 분야도 공부를 하고 있다는데요. 한없이 꿈을꾸고 또 꿈을 꾼다는 유성웅씨의 모습을 알 수 있네요. 유성웅씨, 이렇게 많은 대외활동을 하면 임한 마음가짐은 무엇이며 느끼는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지방 거점 대학교인 전북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보니 자칫하면 우물안 개구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학교를 입학하면서 선배들의 모습을 많이 보면서 나만큼은 후배들을 이끌어줄 수 있는 선배가 되어보자 생각했습니다. 전주시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있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외부로 많이 나가고자 했습니다. 저는 2학년부터 대외활동을 시작하면서 시야와 견문을 넓혀야겠다는 생각에 일단 부딪쳐보자는 생각으로 대외활동에 임했던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처음에 한 대외활동은 20101월에 서울 한강 마라톤대회 자원봉사단이었습니다. 당시 군대를 제대하고서 새로운 틀을 짜야 할 시점이 왔고 군대에서 계획했던 것을 하나 둘씩 발을 디뎌가는 순간이었는데, 소위말하는 스펙이란 말이 있잖아요 대외활동을 하기위해선 이러한 스펙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것을 당시 처음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당시 가진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맨 땅에 헤딩하기식 으로 하나씩 경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자원봉사 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자원봉사를 하기위해 전날 밤 서울에 올라가서 찜질방에서 자며 12일을 했었죠. 친구들은 자원봉사를 하려고 1박을 하느냐라는 이야기를 많이했습니다. 당시 추운 겨울이어서 추웠지만 목토시도 하고 장갑을 끼면서 재미있게 즐기면서 활동한 기억이 남네요. 당시 혹독한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코너는 유성웅씨를 상징할 수 있는 단어를 들어보겠습니다. ~ ‘구멍난 신발프레스 카드라고 이야기 해주셨네요. 무슨 의미가 담겨있는지 먼저 구멍난 신발에 대한 이야기부터 들어볼까요

 

 

제가 이 신발을 작년에 부산KT소닉붐 프런티어즈 3기에 활동하기위해 마련하였습니다. 전주에서 부산을 오갈 것을 마음먹고 장만했죠. 이 신발이 닳을때까지 전국을 방방곡곡 누려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부산에 다니면서는 신발이 닳지 않더군요. 그런데 이번달에 제천, 부산, 안동, 통영을 취재를 하기위해 돌아다니다가 신발에 구멍이 나더군요. 열심히 전국을 누비면서 저의 분신이 되어주는 건은 신발이죠. 자가용이 없는 대학생이니 이러한 표현이 있죠신발 타고 다닌다.’ 제가 돈을 벌고 사회에 진출하면 고급 세단을 타고 다니는 것이 저를 대변하는 척도가 될 수 있겠지만 아직 20대 청춘인 저에게는 고급 세단에 못지않은 저를 상징할 수 있는 것이 신발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신발을 사더라도 이 구멍난 신발은 절대 버리지 않을 겁니다. 이 신발을 가지면서 신발이 구멍 날 정도로 누볐던 열정과 패기, 치열했던 자세를 잊지 않을겁니다.”

 

이 구멍난 신발은 유성웅씨에게 의미가 깊군요. 구멍난 신발을 신고다니는 것은 앞으로 어렵지만 신발 주인의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상징물이네요. 다음으로 프레스카드라고 이야기 해주셨네요. 수 많은 프레스카드를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죠!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집을 방문하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메달을 보면 문득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 방엔 무엇이 있지비록 메달은 없지만 메달 못지않은 다양한 프레스카드들이 저를 상징하는 표현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에게 있어 프레스카드는 최고의 가치를 가지는 금메달에 못지않은 저만의 행운의 메달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수많은 프레스카드를 직접보니 대단하다는 생각만 드네요. 정말 놀라웠고 프레스카드는 유성웅씨의 열정을 대변하는 상징물이라고 생각이 드네요. 이 글을 보는 대학생분들도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평소 페이스북으로 SNS활동을 즐겨한다는 유성웅씨, 그에게서 흥미로운 제보가 들어왔는데요. 유성웅씨가 직접 1980년도에 전주시를 연고로 출범한 쌍방울 레이더스팀의 팬페이지를 운영을 한다고 합니다. 얼마전 좋아요버튼 횟수만 약 오천번이었다고 하네요. 그에게서 팬페이지 운영을 하게 된 이야기에 대해 들어보죠!

제가 스포츠언론인과 스포츠마케터로 꿈꾸기 까지 스포츠에 가장 먼저 눈을 뜨이게 한건 쌍방울 레이더스입니다. ‘쌍방울 레이더스1991년부터 1999년까지 전주시를 연고로 활동했던 야구팀입니다. 전라북도에 사는 친구들은 쌍방울 레이더스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IMF의 영향으로 아쉽게도 해체가 되었습니다. 유치원, 초등학생 시절을 함께해왔는데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꺼내고 싶어서 팬페이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얼마전에는 쌍방울 레이더스 회장님을 4시간 동안 인터뷰를 한적이 있었어요. 인터뷰를 하면서 상업적인 목적을 배제하고 쌍방울에 대한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활동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의 꿈을 만들게 해준 쌍방울 레이더스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그러던 도중 페이스북을 통해 팬페이지를 만들어 홍보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인터넷에 쌍방울 레이더스에 관련된 기사나 사진들을 수집하고 포스팅을 하면서 많은 이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운영할 초창기에는 좋아요나 댓글이 별로 없었어요. 지속적인 활동을 거듭할수록 점차 규모가 커지면서 SNS의 힘을 비로소 알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쌍방울과 관련해서 전북야구는 뛰어야 합니다. 좋아요로 응원해주세요.’ 라고 글 쓴적이 있는데 현재 좋아요 수가 5천건이 넘어가고 있더군요. 게다가 약 오만번이나 이 게시글을 보셨더라구요. 처음에는 나비효과를 기대하고 제가 시작을 했던 것 같아요. 이러한 추억들을 하나둘씩 올림으로써 쌍방울 레이더스에 대한 관심이 하나둘씩 늘어가다보면 언젠가는 전라북도 도민들의 야구장에 대한 성원과 관심이 모아질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제가 그토록 바라던 전라북도에 10구단의 유치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팬페이지를 운영하면서 제가 취재기자로 활동하면서 나오는 활동비를 할애해서 쌍방울 레이더스이 모자를 구입해서 이벤트로 상품을 걸면서 홍보를 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좋아요버튼을 한번 더 눌러주시면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여태껏 많은 이야기를 나눠보니 유성웅씨의 열정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열정적인 자세를 지닌 계기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유성웅씨! 무엇인가요

이런 말이 있잖아요 확실히 보는 만큼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 제가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분들을 만났어요. 대한축구협회 기자로 활동하면서 현 국가대표감독님 최강희 감독님을 비롯해서 홍명보 감독님,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16강을 이뤄냈던 박지성 선수, 이영표 선수과 기타 어린 선수들을 많이 지켜보고 인터뷰를 했습니다. 병무청 기자단을 통해 병무청장님도 만나 뵙고 전라북도 기자단을 통해 도지사님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부산kt 프런티어즈 3기 활동에서는 또래의 청춘들과 소통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대외활동을 하다보니 다양한 사람들과 호흡하고 부딪치고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보이진 않지만 내면의 성장 이 일어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의 신조가 저보다 낙천적인 사람들도 물론 많겠지만 개인적으로 화가 나거나 짜증을 내는 것이 손에 꼽을 정도인 것 같아요. 이러한 저의 성향 덕분에 다양한 활동들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또래들을 만나서 청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는 유성웅씨. MC인 저도 개인적으로 유성웅씨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요. 이번엔 이 기사를 읽게 될 다양한 또래 친구들 위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저 나름대로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저를 능가하는 20대의 후회없는 청춘을 보내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봅니다. 저보다 열심히 사는 친구들을 보면 자극을 받기도 하고 깨닫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저의 글을 보고 새로운 동기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도 늦지 않았고 주저하는, 안주하는 순간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3, 4학년때 취업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저도 또한 하루종일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힘들게 지내지만 그럴때마다 저만의 주문을 외웁니다. 자기도 모르게 힘들면 얼굴이 굳기도 하고 상기되기도 합니다. 얼굴에 여유를 묻히는 연습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타인들에 대한 자그마한 배려라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리 힘들고 바쁘지만 그 순간에도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습관을 들이는게 어떨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성웅아. 얼마전에 페이스북에 멋진 글을 만들었는데, 니가 가진 능력 하에서 너의 역량을 최대한 끌어모으고 있는 모습에 한번 씩 반할때가 있단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나고 다시 한번 운동화의 끈을 동여매게되는 것 같단다. 정말 남부럽지 않게 청춘을 즐기는 너의 모습을 보면 대견스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단다. 남은 청춘 얼마 남지 않았지만 백발의 노인이 되고 이 세상을 끝나고 소풍을 떠나는 그 날 후회없는 삶을 살았구나라고 느낄 수 있게 남은 청춘을 쭉쭉쭉! 짜내보자~ 한번 살다가는 인생, 다른 사람들에게 멋진 사람이 이 세상을 살다갔구나 라고 느낄 수 있게끔 인생의 한 획을 긋는 멋진사람으로 살아보자!

 

 

후회없는 청춘이 되지 않도록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유성웅씨를 만나보았다. 같은 또래인 영현대 기자가 직접 MC를 맡아 인터뷰를 진행했는데 그에게서 상당히 배울 점이 많았다. 유성웅씨는 군대에 복무할 시절에 작은 수첩에 본인이 청춘시절에 하고 싶은 일을 매일 생각나는대로 적었다고 한다. 150가지가 있지만 아직 30여개를 성공하였다고 한다. 앞으로 인생이 마무리 되는 시점까지 150가지의 목표를 모두 달성하길 바란다. 이 글을 읽으면서 유성웅씨를 통해 열정에 대한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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