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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의 조건2. 돌아봄 _ 학문] 학문의 즐거움

작성일201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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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주위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의 전공에 대해 후회하거나 바꾸고 싶다고 말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자신의 뜻이 아닌 부모님이나 선생님의 뜻에 의해 전공을 결정했거나, 별다른 고민 없이 ‘취업이 잘 되는’과라 온 경우도 있다. 입학 후에 전공을 변경하거나 복수전공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것 또한 대부분은 취업을 위한 선택이다. 그러다보니 많은 대학생들의 행태는 학문(學問)한다기 보다는 취직을 위해 ‘참고 견디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욱 적합할 것이다. 

 진정한 대학생이라면 본인이 진정으로 원하는 길 위에서 열정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 아닐까. 이러한 본질적 질문에서 시작해 진짜 대학생이 되기 위하여 작은 실천을 한 두 친구가 있다고 하니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나는 어려서부터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이길 좋아했다. 말이나 그림보다 글로 생각을 표현 하는  게 좋아서인지 내 비밀노트 안은 시부터 수필까지 다양한 창작물들이 가득했다.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았던 날, 맘에 드는 음악을 라디오에서 만난 날, 그것을 들려주고 싶은 친구가 생긴 날.  나의 하루하루가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그 노트는 부끄럽지만 소중한 나의 발자취이다. 야자를 마치고 돌아가던 어느 날 밤에 생각하길, 대학에 가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후에 글을 써보면 어떨까 싶었다. 지금은 많이 부족하지만 언젠가는 내 글도 두꺼운 표지를 입고 점잖게 서점에 자리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상상했다. 그렇게 자연스레, 무엇을 배우는지는 잘 모르지만 국어국문학과를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내 의지가 약했던 것일까. ‘현실은 네 생각과 많이 다르다’라고 충고해주시는 어른들과의 길고 긴 상담 끝에 나는,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행정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그렇게 ‘행정학’과의 무미건조한 만남이 시작되었다. 싫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절대로 좋다고는 말할 수 없는 나의 전공. 시기에 맞춰 외야 할 부분을 외려 노력하지만, 다음 페이지가 궁금하지 않는 나의 전공. 그래서 전공(專攻)이란 말을 붙이기도 쑥스러운 나의 전공. 이대로 대학 생활을 마치기는 너무 아쉬운 맘이 들었다. 그래서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국문학과 수업을 들으며 고3 시절 나에게 위로의 선물 하나 보내기로 했다. 

“국문학과 수업이 궁금해서 신청했습니다.”

 교수님께서 행정학과 학생이 어떤 이유로 수업을 신청했는지 물으셔서 솔직하게 답했다. 한 과목을 들어서 제대로 알 수 있겠냐마는, 나는 정말로 국문학과에서는 무엇을 어떻게 배우나 궁금해서 들어온 것이었다. 



 강의 명은 ‘현대시론’. 수업을 들으며 오래 만에 지적 욕구가 충족되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시에 대한 새로운 내용을 배워나가는 과정이 즐거웠고, 다음 페이지에는 어떤 내용이 있을지 궁금했다. 맘에 드는 시를 발견할 때면 몇 번이고 곱씹으며 참 맛을 잡아내려 애썼다. 김용택의 ‘그 강에 가고 싶다’를 통해서는 마음의 여유를 찾았으며, 특히 서정주의 ‘자화상’은 읊으면 읊을수록 그 깊이가 더해 곁에 두고 아꼈다. ‘수능 공부하듯’ 읽었을 때와는 감상 자체가 달랐다. 가장 맘에 드는 점은 사색과 상상의 시간을 자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강의실 내에서 말이다. 창 밖의 풍경을 보며 학우들과 자유로이 감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시인이 살며시 숨겨놓은 시어들의 비밀을 추측해 보기도 했다. 머리가 활짝 열리는 느낌이랄까 생각이 생각의 꼬리를 물때면 기분 좋은 두통을 느끼며 펜촉을 굴렸다. 사실 가끔 졸기도 하지만, 학생의 졸음마저도 그야말로 ‘시적으로’ 풀어내는 교수님의 수업이 나는 정말로 좋았다. 



 국문학과를 들어갔다면 어땠을까. 진정 행복하고 후회가 없었을까. 어쩌면 잠깐의 만남이라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것일지 모르지만, 이번 만남을 통해 수업 넓게는 삶에 임하는 자세를 조금은 깨닫게 되었다. 절로 책에 손이 가고, 내일 배울 내용이 궁금해 수업 시간이 기다려지는. 그런 면에서 볼 때 대학 수업은 나를 옭아매는 존재가 아닌, 관심분야에 심도 있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였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수업을 듣고 난 후에 행정학 수업과도 부쩍 가까워졌다. 또한 학문은 전공 등으로 선을 긋고 벽을 쌓는 것이 아니라 문을 열어 맞아들이는 것이라 할 때, 인문학관 강의실에서 벌인 건전한 일탈은 내 대학생활의 끝 무렵을 환기시켜주었다. 참으로 의미 있는 시간. 마지막으로 예쁜 시 한 편을 소개하며 글을 마칠까 한다. 내가 느낀 행복이 그대로 전해졌기를!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고 문화재에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던 나. 하지만 나는 지금 충남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 재학 중이다. 대학 다니는 동안 외국어 하나를 정복하자는 마음으로 중문과에 입학하여 올해로 3년째 대학생활을 이어오고 있지만 중국어와 중국문학만 배우기엔 대학생활이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교양수업만은 내가 관심 있었던 분야를 듣자 다짐하여 미술의 이해, 무용의 이해 등 예술방면의 과목을 찾아 들었으나, 뭔가 좀 알만 하면 종강이다. 그래서 내가 찾은 대안은 바로 타 학과 수업 청강하기다.



 나는 일요일 아침에 하는 유물 감정프로그램을 꽤 어렸을 때부터 봤다. 그때는 우리 집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도자기가 몇 천 만원을 호가하는 것을 보고 우리 집에 있는 도자기들도 저기 가져가보자고 부모님께 말했었는데, 고등학생이 된 후로는 그 유물의 물질적 가치보다는 어떤 아름다움이 높게 평가 받는지에 더욱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 후 한동안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질 기회도 여유도 없었는데 대학 입학 후 고고학과에서 이러한 분야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듣게 된 ‘한국 고미술의 이해’.

 고고학과 교수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문화유산 탐방기를 듣는 것도, 미처 모르고 봤던 석굴암의 건축학적 위대함을 아는 것도 너무 즐겁다. 고구려 시대 사람들은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고구려의 고분벽화들을 보면 당시 사람들에게 빙의되어 고구려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정말 이게 대학 수업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듣고 있지만 수업의 내용이 마냥 재밌고 즐겁지만은 않다. 불편한 진실들 때문에 마음이 불편한 적도 많았다. 손재주가 뛰어났던 선조들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문화재들이 역사적 사건에 의해 약탈도 많이 당했고 어둠의 경로를 통해 유출된 경우도 허다했다. 이런 식으로 고국이 아닌 타국에 나가있는 문화재는 대략 7만 점 이상이라고 하니 몇 백 년 전 죽어 땅 속에 묻힌 선조들이 벌떡 일어날 일이다.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 내 전공과목인 중어중문학과와 이를 연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데 수업 초반에는 그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반 정도 수업을 듣고 난 지금은 어느 정도 답을 찾은 듯하다. 내 전공과목인 중어중문, 즉 중국의 언어, 역사, 문화, 정치 등을 잘 활용해 해외에 반출된(특히 중국에 반출된) 문화재를 환수하는 일이다. 아무 관계가 없을 것 같던 중어중문학과와 고고학과. 하지만 이 두 학문이 잘 만나 시너지를 내면 우리 문화재를 지키고 후손들에게 잘 물려주는 아주 보람된 일을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흥분된다.  




 이렇게 자신의 전공만을 고집하지 않고 것이 자신이 관심 있는 다른 과의 전공수업을 청강해봄으로써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대학생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며 이를 잘 활용하면 모두가 가는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 있다. 혹시 '타과 수업이라 온통 낯선 사람뿐이라 민망한데…'라거나 '교수님이 수업을 못 듣게 하면 어쩌죠'라는 기우를 하고 있다면 곱게 접어 하늘 위로~♬. 의외로 전공과목 학생보다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받을 수도 있다. 전공과목에 무료함을 느낀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심이 된다면 두려워말고 타과 수업 듣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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