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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포토그래퍼다. 그들만의 특별한 시선

작성일2013.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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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스산한 기분까지 들었던 지난 주말. 비장한 각오로 4명의 외국인 친구들이 뭉쳤다. 각자 1~4년간 있었던 한국에서 관광명소만 구경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도 깊숙이 알고 싶다는 이유에서였다. 전 세계 중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한국의 아픔에 함께 공감하고 싶어 파주로 향한 그들! 취재 전날,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고 올 정도로 열정이 지대했던 기자들에게 장마철의 비바람 따위는 상관없었다. 영현대 9기 외국인 기자, 양신, 카샤, 이반반과 객원 멤버 파벨까지! 대한민국 어디까지 가봤니 파주로, DMZ로! 

 

 

 
 
 “카샤 언니, 머리카락 진짜로 염색 안 했어요”, “이반반 언니~ 한국 음식 중에 가장 매웠던 음식이 뭐에요”라는 유치찬란 질문은 그만. 한국과 북한의 관계, 그리고 분단의 아픔에 관해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나누고 직접 느끼는 시간을 보냈다. 외국인에게 생소할 뿐만 아니라, 다소 무거운 주제였기 때문에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이었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첫 여행지를 정하기 위해 서로의 관심사를 공유할 때였다. 군대, 정치, 남북 간의 관계 등 한국인조차 어려워하는 주제가 금발과 파란 눈의 외국인의 입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니 각자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한국 역사와 관련된 수업은 한 학기에 하나씩은 꼭 듣는다던 그들이었다. 한국으로 유학 온 만큼 뼛속까지 한국을 느끼고 싶다던 당찬 각오와 함께 전원 동의로 파주행을 결심! 아울렛, 영어마을, 바람개비 동산으로만 파주를 알고 있다면, 집중하도록. 외국인 기자가 직접 찍은 사진으로 한국과 북한의 분단 현실을 보여줄 테니까 말이다! 

 

 

 

  
 

 

  임진각공원 전망대에서 아무 말 없이 북쪽을 향해 한참을 서 있었던 양신 기자. 갑자기 한 지점을 보고 한숨을 내쉬는 그녀였다. 양신 기자의 시선 끝자락에는 이제는 무용지물이 된 자유의 다리가 있었다. "남과 북을 연결해주는 다리가 있지만, 날카로운 철망으로 두 쪽을 갈라놨네요. 우리가 타고 온 기차로 북한까지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시선에는 슬픔이 담겨있었다. 

  더욱 가깝게 북한을 보기 위해 도라 전망대도 향했다. ‘군사지역이므로 노란선 밖에서는 사진촬영이 금지된다.’라는 방송이 울려 퍼졌다. 전망대에는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이 난관에 기대어 북한을 바라보고 있었다. 모두 어떤 마음으로 북한을 보고 있었을까 망원경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북한을 바라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직접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양신 기자는 그러한 간절함을 표현하기 위해 북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뷰파인더에 담았다. 

 

 

 

 


  
  북한과 가장 가깝게 맞닿은 남한의 마지막 역인 도라산역의 이정표에는 ‘평양↔서울’이라고 적혀있다. 도라산역에서 205km를 더 가면 평양이었던 것이다.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던 평양. 카샤 기자는 이 이정표에서 한반도 통일에 대한 희망을 느낄 수 있었다. ‘도라산역이 실제로 운영한다면….’이라는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희망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기차로 2시간 만에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도라산역이 항상 비어있고 군인이 지키고 있어야만 하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했지만, 씁쓸함이 더 크다고 말했다. 

  카샤 기자가 찍은 사진을 구경하던 중, ‘하나된 한반도 보고 싶어요.’라는 글귀가 적힌 리본 사진에서 버튼을 누르던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그녀에게 단순히 이 글귀가 글자로만 전달되지는 않았을 이유에서였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꾹꾹 펜을 눌러 담았을 대한민국 국민의 바람이 느껴졌을 터. “자기 땅을 밟게 하지 못하는 북한과 남한. 저희가 북쪽을 보고 있는 것처럼, 북한에서도 남쪽을 보고 있지 않을까요”라며 전망대에서 북한을 향한 카샤 기자의 초롱초롱한 눈망울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영현대 기자는 아니지만, 베스트프렌드인 카샤 기자를 따라 일일 객원 기자로 자처한 파란 눈이 매력적인 훈남 파벨! 여행 직전 들었던 수업에서 한국과 북한의 분단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가 생생하다던 그는 한국전쟁의 흔적을 하나, 둘 찾아 나섰다. 

  파벨에게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1950년 북한의 남침 시, 북한이 남과 북을 잇는 자유의 다리를 폭격하고 남아있던 잔재였다. 이날 관광 온 우리나라 사람들도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는데, 이방인의 눈에는 얼마나 잔혹해 보일까 한국 군인들이 북한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다리를 없애야만 했던 그 순간, 파벨은 그 당시를 상상하기만 해도 무섭고 화가 난다고 말했다. 한민족의 이름 아래 피 튀기며 싸워야만 했던 치열했던 시절. 역사의 잔재로부터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아픈 감정에 그 역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명랑 쾌활한 이반반 기자의 사진을 보던 중, 그녀의 환한 미소처럼 사진에 희망을 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과 북한이 얼마나 가까운지 몰랐다던 그녀는 전망대에서 강 너머 북한을 볼 수 있었던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도라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북한까지 갈 수 있다면서요 눈으로 직접 볼 수도 있고, 길도 뚫려있는데…. 통일만 되면 갈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라며 도라산역이 본래의 역할은 잃은 채, 아직은 사진으로만 남겨야 한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쉬웠다고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다른 국가도 비자와 여권만 있으면 어떤 곳이든 갈 수 있지만, 같은 민족, 같은 언어, 같은 생활양식을 가진 북한에 갈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북한을 가고 싶은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다는 이반반 기자. 그녀의 바람대로 도라산역이 다시 따뜻한 활기로 가득 찼으면 한다. 

 

 

 


  이른 아침부터 서울 도심에서 빠져 나와 8시간 내내 진행된 취재. 궂은 날씨와 진지한 주제로 힘들었을 법도 한데 지친 내색을 보이지 않았던 우리의 양신, 카샤, 파벨, 이반반 기자였다. “왜 같은 땅에서 태어난 한민족인데 서로 볼 수 없는 거죠 너무 마음이 아파요.”라며 모두 하나의 소리로 슬픈 마음을 표현했다. 그러한 마음을 사진으로나마 전달하기 위해, 또 분단의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 팔을 걷어 붙이고 땀을 흘린 시간이 값진 경험으로 남았으면 한다.

 

 

 

 
  도라산역에는 ‘남쪽의 마지막 역이 아니라, 북쪽으로 가는 첫 번째 역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조금만 바꿔 생각하면 의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우리와는 다른 시각을 가진 외국인 기자를 통해 무엇을 느낄 수 있었나 역사에 관한 관심이 점점 사그라지고 있는 요즘, 한국인보다 한국역사에 관심이 더 많은 그들을 보고 내심 부끄러웠을 수 있다. 어쩌면 같은 한민족은 아니지만, 분단의 아픔에 공감한 그들이 놀라웠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느낀 바가 다르듯이 바라보는 이유, 바라보는 각도 또한 다를 터. 어떠한 이유, 어떠한 각도건 상관없다. 그 시선을 두는 자체가 중요한 것이니까 말이다. 자, 그럼 당신의 시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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