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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전환점, 2014 미스코리아 미 김명선 씨 인터뷰

작성일201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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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최연준
지덕체를 겸비한 대한민국 최고의 미인을 선발하는 미스코리아 대회! 지역심사와 본선심사, 약 4주간의 합숙 등을 통한 공정하고 엄격한 과정을 거쳐 선발된 미스코리아들은 당선 이후 각종 홍보대사, 사회공헌활동, 국제미인대회 출전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게 됩니다. 미스코리아에 도전하며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는 김명선 양, 영현대 기자단이 직접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 아침 일찍 인터뷰가 시작됐지만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정성껏 인터뷰에 임해준 김명선 양
▲ 아침 일찍 인터뷰가 시작됐지만 시종일관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정성껏 인터뷰에 임해준 김명선 양

Q1.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재학 중인 25살 김명선입니다. 그리고 2014 미스코리아 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Q2. 미스코리아 도전, 언제부터 꿈꿨었나요?

원래부터 미스코리아에 대한 로망이 있던 건 아니에요. 고3 때 길을 지나가다가 권유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거절했었거든요. 그때 당시에 부모님도 반대하시기도 했고요. 미스코리아에 도전하게 된 건 모델 활동을 하고 난 뒤였어요. 모델이라는 직업을 1년 정도 경험해보니까 미스코리아도 재미있을 것 같아서 나가게 되었어요. 그 물꼬는 흔히 말하는 미용실 원장님이 터주셨죠. 하하

Q3. 미스코리아 준비 과정이 궁금합니다.

사람마다 준비 기간이 다 다른데 길게 준비하는 분들은 1년이 넘어가기도 해요. 저는 대회 한 달 전쯤부터 준비하기 시작했어요. 워킹이나 자기소개, 장기 같은 것을 연습했었어요. 저는 특기로 날씨 뉴스를 준비했었어요. 다른 분들은 보통 악기나 춤을 준비하곤 합니다.


▲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낯선 일에 도전하는 용기가 생겼다는 김명선 양
▲ 미스코리아 대회를 통해 낯선 일에 도전하는 용기가 생겼다는 김명선 양

Q4. 미스코리아 대회를 준비하고 거치면서 자신의 어떤 점이 가장 바뀌었다고 생각하나요?

저의 성격이요. 특히 세상을 보는 생각이 가장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원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도 싫어하고 사진 찍히는 것도 싫어했거든요. 어렸을 때는 말썽꾸러기였는데 사춘기를 겪고 나서 낯가리는 성격으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사람 많은 곳도 안 좋아하고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미스코리아 대회를 나가면서 180도 달라지진 않았지만 ‘낯선 상황이 오면 일단 부딪혀 보자’라는 마인드가 생겼어요. 그 전에는 ‘피하는 게 상책이겠거니’ 이렇게 생각했거든요. 많은 사람도 만나고 외국도 많이 나가다 보니 그 순간을 즐기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공간, 상황들이 흥미로워졌어요.

Q5. 미스코리아가 되면 어떤 활동을 하게 되나요?

크고 작은 기업행사 진행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행사 제의가 들어오면 무조건 갔던 것은 아니에요. 가장 우선했던 기준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같은 이제 막 발돋움을 시작한 회사들의 일을 도와주는 거였어요. 미스‘코리아’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활동하는 만큼 국가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많이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독거노인들을 도와드리는 봉사활동 역시 주로 했어요. 해외에 가서 한복을 알리는 패션쇼도 기억나네요.

Q6. 이렇게나 많은 활동을 할 줄은 몰랐는데요, 사실 미스코리아 하면 무조건 예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이런 시선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예쁜 사람이 무조건 미스코리아라면, 저는 안 됐을 거예요. 그때 당시 저보다 예쁜 분들도 많았거든요. 저는 제가 완벽한 미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미스코리아는 절대 외모만 보는 건 아니랍니다. 그 사람의 인성이나 생활 태도, 마음가짐을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 한 달 가까이 50명의 후보자와 합숙을 하면서 생활태도 같은 것도 확인하고 점수를 주셨거든요. 점수표도 있었는데 워낙 극비문서다 보니 직접 보진 못했네요!

Q7. 미스코리아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1년 동안 주말마다 남산에서 시민분들과 함께 마라톤을 뛰는 행사를 했었어요. 근데 새벽부터 나와서 무지 배고팠거든요. 그래서 행사 직전 그 찰나 동안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저희끼리 차 안에서 허겁지겁 먹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매니저님이 얼마나 처량하게 봤을까 싶어요. 근데 그때는 정말 배고팠거든요. 뭐라도 먹고 뛰어야 했어요. 보통 미스코리아 하면 우아하게 커피나 한 잔 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답니다!


▲ “외국에서 한국을 알리는 일이 가장 보람찼어요!”
▲ “외국에서 한국을 알리는 일이 가장 보람찼어요!”

Q8. 미스코리아 활동 중 가장 보람찼던 일은?

중국에 가서 우리나라 디자이너 분들의 옷을 입고 했던 패션쇼가 보람차면서 가슴이 벅찼어요. 아무래도 모델 활동을 했었기도 했고, 해외에 나가 수많은 외국인 앞에서 미스코리아라는 이름으로 무대에 오르는 거잖아요. 내가 미스코리아가 되지 못했다면 그 나라에 가서 한국을 알리지 못했을 테니까 그때만큼은 ‘내가 한국의 미스코리아야. 잘 봐둬!’라는 마음으로 당당하게 걸었던 것 같아요. 미스코리아로서 무대에 오른다는 게 정말 뿌듯했거든요. 한정된 시간 안에 정해진 옷을 입어야 하는 스릴도 좋았고요.

Q9. 미스코리아 활동을 하며 학업을 병행하기는 힘들지 않았나요?

미스코리아로 당선되면 2년을 활동하게 됩니다. 2014년 7월에 대회가 열렸으니 그 연도에는 어쩔 수 없이 휴학을 해야 했어요. 다음 해에는 조금 욕심을 부려서 학업과 미스코리아 활동을 병행해보자고 다짐했죠. 그 결과는 처참했어요. 하하. 학점이 너무 낮게 나왔거든요. 해외 스케줄도 있었으니 당연한 결과였죠. 그래서 마지막 학기인 지금 열심히 복원시키려고 노력 중인데 잘 될지 모르겠네요.(웃음)

Q10. 미스코리아 활동 후 다시 평범하게 학교에 다니는데,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아요. 미스코리아라는 것을 알리고 다니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조용히 다니는 편이에요. 사실 알아보는 사람도 거의 없어서 불편한 건 하나도 없어요. 학교도 쌩얼로 자주 가구요. 친구들이 학교 홍보대사는 안 하냐고 가끔 물어보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없네요! 하하


▲ 생활 한복 모델로 활동한 김명선 양 (출처: 뷰티한국 화보)
▲ 생활 한복 모델로 활동한 김명선 양 (출처: 뷰티한국 화보)


Q11. 요즘엔 어떻게 지내시나요?

이제 학교생활이 거의 막바지라서 학업에 열중하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로 가끔 화보 촬영하면서 용돈벌이를 하고 있어요. 곧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다른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처럼 어떤 일을 하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중이에요. 지금은 미스코리아보단 학생이 더 어울리는 것 같네요.

Q12. 미스코리아 대회를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몰랐던 세계를 알게 됐으니까…? 미지의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만약 여행을 가지 않았다면 평생 그곳은 ‘미지’였을 테니까요. 미스코리아라는 새로운 사회를 겪으면서 서울 생활도 해보고, 해외에도 나가보고, ‘학생’이 아닌 ‘미스코리아’라는 신분으로 살아보는 것들, 모두 다 처음 해봤어요. 그만큼 미스코리아는 ‘내’가 달라질 수 있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대회에 나간 것만으로도 저에겐 터닝포인트가 되기 충분했어요.

Q13. 앞으로의 장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전공을 살린다면 아나운서의 길을 걷고 싶어요. 초, 중, 고등학교 모두 방송부 생활을 했거든요. 그만큼 방송이 좋아서요. 고등학교 때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DJ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잠자리에 들곤 했는데, 제가 그 DJ가 된다면 너무 행복할 것 같아요.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할 수 있다는 것, 매력적이지 않나요? 무대라고도 할 수 있는 스튜디오에서 뉴스를 전달하며 다른 사람들의 사연을 전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Q14. 마지막으로 미스코리아에 도전하는 학생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인생이 지루하다면 색다른 경험을 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이전에 저 역시 스스로의 삶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졌거든요. 20살 때까지 공부만 했었으니까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일을 자신이 할 수 있다면 설레지 않을까요? 20대에 도전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전통을 가진 미인 대회인 만큼 그만큼 얻어가는 것도 많으니까요. 이런저런 경험들도 얻을 수 있지만 좋은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저는 그때 친구들과 아직도 연락하면서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주면서 지내요.



인터뷰 내내 유쾌한 분위기가 가득했습니다. 대답할 때는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열정 있게 답변한 김명선 양. “일단은 직진하자!”가 자신의 좌우명이라고 합니다. 그녀의 말처럼 모든 대학생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두려움 없이 도전했으면 좋겠습니다. 지금까지 영현대 기자단이었습니다!


영현대기자단14기 최연준 | 전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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