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공간 디자인의 1인자, 최시영 디자이너를 만나다

작성일2018.11.13

이미지 갯수image 8

작성자 : 기자단

공간 디자인은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인간의 생활 최전선에서 숨결을 불어넣고 있다는 점만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습니다. 이러한 가치를 섬세하게 빚어내 자신의 철학을 공간에 오롯이 쏟아내는 디자이너, 바로 2017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한 최시영 디자이너가 그 주인공입니다.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는 iF 디자인 어워드, IDEA 디자인 어워드와 더불어 세계에서 가장 공신력 있는 3대 디자인 상으로 디자이너들의 꿈이라 일컬어집니다. 최고의 자리에서도 세상이 원하는 디자인보다는 자신만의 디자인을 세상에 선보이겠다는 최시영 디자이너의 생각을 따라 성북동에 자리 잡은 그의 작업실로 향했습니다.


최, 최고가 되기까지


▲ 판화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시영 디자이너
▲ 판화 앞에서 포즈를 취한 최시영 디자이너

어렸을 적 최시영 디자이너에겐 두 가지 꿈이 있었다고 합니다. 하나는 글을 쓰는 것, 다른 하나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화가가 된 자신의 미래를 상상하곤 했습니다.

“초등학생 때 미술대회에 나가면 꼭 상을 받곤 했어요. 그냥 그리는 게 좋았던 거 같아요.”

그런 그에게도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언제나 무거운 짐으로 다가왔습니다. 순수 예술을 탐탁지 않게 여기시던 아버지의 곁에서 그는 건축과라는 타협점을 찾아야 했습니다. 물론, 현실의 어려움이 천재의 예술적 재능을 넘어설 수는 없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순수 예술을 탐탁지 않게 여기셔서 결국 현실과 타협하고 건축과에 진학했어요. 대학을 다니면서도 방황을 많이 했는데, 교수님께서 졸업하기 전에 “너는 인테리어 디자인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저를 포기하신 줄 알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까 제가 색과 모형을 다루는 게 독특해서 저에게만 추천장을 주셨다고 하셨어요.”

무작정 걷게 된 디자이너의 길. 최시영 디자이너는 그 길 위에서 숱하게 방황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기보다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자 다양한 경험들을 하며 호기심을 키웠습니다.

“신문을 정독하고, 책을 자주 읽었어요. 특히, 옛날에는 해외를 갈 수가 없으니까 외국 건축물들을 눈으로 볼 수가 없었는데, 어느 날은 친구가 선물한 외국 디자인 서적들을 보고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어요. ‘이런 공간 표현이 가능하구나.’라는 격한 감정이 들면서 마음속 호기심이 꿈틀대더라고요. 경험들을 통해 호기심을 갖고 그것들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 주상복합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타워팰리스의 내부 디자인 (출처 = 최시영 디자이너 제공)
▲ 주상복합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타워팰리스의 내부 디자인 (출처 = 최시영 디자이너 제공)

최시영 디자이너는 실패도 많이 겪었다고 답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현대자동차의 포니를 타고 다닐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지만, 그만큼 빨리 잃기도 했고 그때마다 그는 결심했습니다. 아프고 고통스러울 때 결심을 했기에 더 빨리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고 그는 말합니다.

“큰 아들이 태어나기 일주일 전에 사기를 당했어요. 그날이 12월 30일이었는데, 신문에 부도 기사가 난 걸 보고 매일 울었어요. 그때 속으로 네 가지 다짐을 했죠. 어음을 받지 않고, 계약을 안 하면 시작하지 아니하며, 경쟁을 지양하고, 시공이 아니라 오로지 설계만 하는 것이었어요. 무모한 결심이긴 했지만 다행히 기회가 찾아왔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키며 재기할 수 있었어요. 지금 디자이너들이 “최시영 디자이너 덕분에 설계비가 생겼다.”라고 인정을 할 정도로 저와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결심들이었죠. 만약 제가 성공을 하고 있을 때 결심을 했더라면 곧바로 자만에 빠졌을 거예요.”

비 온 뒤에 땅이 굳듯이, 그는 실패를 딛고 일어나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천재적인 영감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요. 최고의 디자인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보고, 듣고, 느끼는지 그에게 물었습니다.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그러면서 우연히 찾았어요. 어렸을 때 인터넷이 없었으니까 모든 것을 직접 경험을 해야 했고, 돈을 모으면 항상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요. 문헌도 찾아서 많이 읽었고, 영화도 많이 봤죠. 특히 저는 만화 영화를 보면서 트렌드를 읽곤 했는데, 만화 영화는 제작하는 데에 3~4년 정도 걸리니까 미래의 트렌드를 예측하면서 만들어야 해요. 그런 노력들로 만들어진 월트 디즈니 만화 영화들을 보면서 어떤 문화가 사랑받을 수 있을지 예측하는 감들을 많이 익혔죠.”


시, 시간과 공간이 살아있는 디자인이란


▲ 정원 콘셉트의 건축 디자인 모형
▲ 정원 콘셉트의 건축 디자인 모형

공간은 자동차를 비롯해 인간들이 살아가는 모든 곳으로 그 개념이 확장되고 있습니다. 최시영 디자이너는 이러한 확장된 개념의 공간을 다루며 인간의 감성적인 측면에 더욱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감성은 아날로그를 추구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자동차라는 공간은 한정적이지만 사람마다 독특하게 확장해서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인간이라는 동물은 참 섬세한 것 같고, 그래서 공간 또한 감성의 접근이 중요하죠. 인간의 감성을 반영해 ‘이런 생활이 가능하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공간이고, 제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이에요.”

‘좋은 디자인’이란 완전히 정의 내릴 수 없고, 여전히 풀기 위한 숙제로 남아있다는 겸손한 그의 대답. 그러나 디자인 과정에서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점은 그 누구보다 당당히 말했습니다.

“저는 계약을 따내도 즐겁지가 않아요. 의뢰인들은 평생의 꿈을 그 공간에서 이루고자 하는데, 완벽한 디자인이란 없고 완성하면 돌이킬 수도 없기 때문이에요. 저는 의뢰인들이 가진 기대감을 만족시킬 정도로만 열심히 하고, 끝나고 나면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했냐고 되묻죠. 제 좌우명이 ‘I do the best I can’인데요. 최선을 다하는 게 디자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해요.”


▲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한 선도전기 사옥 (출처 = 최시영 디자이너 제공)
▲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본상을 수상한 선도전기 사옥 (출처 = 최시영 디자이너 제공)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의 태도는 세계 3대 디자인상인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2017년, 선도전기 사옥의 디자인으로 본상을 수상한 그는 사람과 디자인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설명했습니다.

“사람에 대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상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 멋진 건물이 공장지대에 우뚝 서있는데, 벽돌로 시작해서 벽돌로 끝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독특했어요. 특히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식당 공간에 대한 배려를 많이 했어요. 사람들이 식사하는 장소이니까 조금 더 신경을 썼죠. 그런 점들을 높이 사준 것 같아요.”

사람을 생각하는 디자이너에게는 납골당이라는 또 하나의 멋진 공간이 마음 한편에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디자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비전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디자인 공간은 납골당입니다. 납골당은 사랑하는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가는 곳이고, 그래서 혼자 몇 시간 있어도 외롭지 않은 곳이어야 해요. 이러한 점을 고려하며 디자인 과정에서 문화 시설을 함께 배치했고, 모두가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어요. 모두가 비웃었지만, 현재는 결혼식도 하고 재즈 콘서트도 개최하고 있어요.”


영, 영원히 기억될 그의 철학을 따라서


▲ 최시영 디자이너와 녹색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 최시영 디자이너와 녹색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다

수많은 젊은이들은 해야 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고뇌합니다. 한때 세상이 좋아하는 디자인을 찾아다녔던 최시영 디자이너는 “미래를 따지면서 세상의 눈치를 보기보다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디자인에 녹여내면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다.”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녹색과 자연을 담아내는 ‘농사짓는 디자이너’로서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언입니다. 그는 자신을 ‘싸움꾼’으로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모든 디자이너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그의 자세가 오롯이 새겨져 있는 별명입니다.

“저는 아마 싸움꾼으로 기억될 것 같아요. 옛날에 기업 임원들이 모인 자리에 가서 용기를 내 이렇게 말한 적이 있어요. “디자이너들을 신뢰해주세요. 간섭하지 말고, 그냥 믿고 맡기세요.”라고. 다행히 가장 높은 분이 제 말씀을 새겨듣자고 모두에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당시, 저는 디자이너들이 활동하는 환경을 개선하는 게 제 역할인 줄 알았어요. 이런 일화들을 생각하면 후회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창작 이전에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시영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 최시영 디자이너의 꿈과 열정이 깃든 개인 농장 ‘FAMER’S DADDY’ (출처 = 최시영 디자이너 제공)
▲ 최시영 디자이너의 꿈과 열정이 깃든 개인 농장 ‘FAMER’S DADDY’ (출처 = 최시영 디자이너 제공)

도전은 끝이 없습니다. 최시영 디자이너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에게는 농장과 관련된 소박하지만 당찬 포부가 있습니다.

“농장에 대한 꿈이 있어요. 옛날에는 모르니까 뭐든지 땅에 심고 그랬는데, 이제는 땅에 맞는 식물이 무엇인지 알고, 디자인적으로도 생각이 많아지고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 밭처럼 디자인에 대한 고려가 없는 땅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밭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싶어요. 나중에는 제가 가꾸는 밭에서 패션쇼를 열고 싶네요.”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시절이 있었다는 그의 말 속에는 20대 청춘을 생각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호기심을 갖고 해소의 단계로 나아가라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그 어려움에 맞서라는 그의 조언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고, 호기심을 갖고 그 기회에 뛰어드는 게 중요해요. 성공하는 사람들도 속을 들여다보면 어려움이 되게 많아요. 파도가 몰아치더라도 그 파도를 이겨내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면 각광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물론 제 말이 들리지 않을 정도로 힘들 수 있지만, 100명 중 한 명이라도 제 말을 기억해주면 이 말이 소중해질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 최시영 디자이너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작업실의 벽면
▲ 최시영 디자이너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작업실의 벽면

최고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겸손한 태도로 묵묵히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최시영 디자이너. 꾸준히 노력하며 도전 정신을 잃지 않는 그의 이름은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공간 디자인의 미래도 그가 있어 환한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영현대기자단17기 김필호 | 서울대학교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