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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서 1년을 돌아보며

작성일2015.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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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이현동

2014년 3월 11일 나는 캐나다로 떠나왔다.

누구나 한번쯤 꿈꾸던 외국에서 생활과 아메리칸 드림을 그리며 비행기에 올라 탔다. 1년 동안 영어, 돈, 여행, 운동 그리고 여자친구 모든 것을 가지리란 목표를 품었다. 그렇게 많은 것들을 꿈꾸며 캐나다에 왔었는데 이제 가야 할 시간이 다 되었다.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앞두고 나의 지난 1년을 한번 돌아보았다.


첫 시작은 밴프에서


여름의 밴프
여름의 밴프

첫 시작은 '밴프', 캐나다 로키산맥에 있는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나는 도시보다는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에서 살고 싶었다. 이유는 작은 마을의 조용한 카페에서 일하며 커피를 만들고 예쁜 여자친구와 꽃동산을 뛰어다니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싶어서였다.



뭐 첫 발 디딘 밴프의 풍경은 눈만 덮여있었지만 다가올 여름을 기대하며 일 자리를 찾아 다녔다. 나는 영어를 못 한다. 이력서를 돌리고 면접을 보고 일을 시작해야 하는데 걱정만 앞섰다.

여기는 이력서를 돌리는 것 보다 매니저를 만나는 게 제일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일하고 싶은 곳의 매니저 얼굴을 봐두었다가 그 사람이 지나갈 때 길을 묻는 척, 일 하고 싶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물었고 내가 하이어링 매니저고 만나서 반갑다며 그 자리에서 면접을 보고 합격했다.


처음 시작했던 일, 쿡



그래서 시작한 '밴프 센터'에서의 쿡! 그래도 꽤나 좋은 곳에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곳은 나랑 맞지 않았다. 단지 재료 손질만 하는 것이라 하루 종일 칼질만 했고 나의 코워커들은 나이가 많아 대화주제도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일하고 운동하고 잠만 자는 게 하루의 끝이었다. 그래도 그 곳에서 여름까지 오래 일했고 돈도 많이 모았었다.


먹는 데는 돈을 안 아꼈던 내가 사먹거나 만들어 먹었던 음식, 대부분 한식이다.
먹는 데는 돈을 안 아꼈던 내가 사먹거나 만들어 먹었던 음식, 대부분 한식이다.

한국에서 나는 평범한 대학생이었고 일이라 해 봤자 집 근처 고깃집에서 아르바이트하고 과외 하던 게 전부였다. 그래서일까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한다는 느낌 한달 식비, 방값, 기타 요금, 생활비 등등 내 생활 모든 것에 처음으로 자립했다.

돈 걱정에 먹는 것도 줄이던 즈음에 시작했던 세컨잡. 세컨잡은 레스토랑 서버였다. 여름의 밴프, 그때는 정말 돈을 많이 벌었다. 하루에 팁만 무조건 100불(10만원 정도) 이상 벌었다. 지금까지 내 인생 중 가장 돈을 많이 가졌던 때고 또 조금 철이 없었던 때라 사고 싶은 거 먹고 싶은 거 다 사고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시원하게 한번 딱 내고 돈 걱정 없이 지냈다.


꾸준히 썼던 가계부, 가장 돈 많이 벌었던 7~9월의 가계부
꾸준히 썼던 가계부, 가장 돈 많이 벌었던 7~9월의 가계부

뭐 저축이 중요하긴 하다만 이억 만리 먼 타국에서 잘 먹지도 못하고 돈 걱정하며 지내고 싶지 않아 한달 동안 쓰다 남으면 그게 저축하는 돈이라 생각했다. 저축은 많이 못 했지만 그래도 좋았던 것이라면 친구들과 돈 계산이나 돈 문제에 쿨해질 수 있고 형, 오빠로서 밥 한번 사줄 수 있는 여유가 있어 좋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 산 차


내 로망을 이루려고 샀던 2003년식 포드 ESCAPE
내 로망을 이루려고 샀던 2003년식 포드 ESCAPE

그렇게 모은 돈으로 정말 많은 것들을 샀다. 휴대폰, 헤드셋, 카메라, 옷 그리고 차. 8월에 차를 샀다. 6개월 남짓 남았는데도 차를 샀던 이유는 이 멋진 여름날 음악과 함께 옷은 깔끔하게, 한 팔은 창문에 걸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시며 이곳 저곳 달리고 싶어서였다.

정말 많이 달리고 달렸다. 한껏 차려 입고 로키산맥의 드라이브 코스를 달리고 있노라면 정말 세상 다 가진 것 같았다. 정말 행복했다. 하루의 스트레스는 친구들과 혹은 혼자서 차를 가지고 나가 웅장한 로키산맥과 흐르는 강을 보며 날려보냈다.



한달 보험료, 기름값이 부담이 되었지만 좋았던 것이라면 차가 있어 사람이 너그러워 질 수 있었다. 친구들과 놀러 갈 때 렌트 할 필요 없이 내 차로, 버스 끊긴 친구 집까지 바래다 주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돌아가는 친구들을 공항까지 바래다 줄 수 있었던 것이다.

나에게는 그게 참 의미 있었다. 그거 하나면 보험료, 기름값 뭐든 상관없었다. 또 이것은 하나의 적금, 내가 집에 돌아갈 때 이 차는 다시 팔 수 있으니 나에게는 2000~3000불 (200만원~300만원 정도)의 움직이는 적금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사고가 난 차


눈 길에 미끄러져 인도를 박아 휠이 나갔던 내 차
눈 길에 미끄러져 인도를 박아 휠이 나갔던 내 차


폐차장을 돌아다니며 겨우 찾은 똑 같은 차종의 차와 떼어낸 타이어와 휠
폐차장을 돌아다니며 겨우 찾은 똑 같은 차종의 차와 떼어낸 타이어와 휠

뭐 아쉽게도 이 차는 2014년 11월 9일 바로 내 생일날 눈 길에 미끄러져 인도에 박았고 휠이 손상되었다. 그래서 눈 오는 날 폐차장을 뒤져 똑같은 연식과 차종의 휠을 어렵게 떼어왔으나 이번에는 얼라이먼트가 틀어졌고 노후 된 차량이라 그 동안의 문제들이 한번에 터졌다. 견적만 2000불(200만원 정도)이 나와 그 자리에서 폐차시켰다.

그렇게 내 차는 떠나갔지만 썼던 돈이 아깝지는 않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정말 잘 탔기 때문이다.


휠을 떼오려고 눈 속에서도 찾아 헤매었던 폐차장. 내 차도 이곳 어딘가에 묻혀 있겠지
휠을 떼오려고 눈 속에서도 찾아 헤매었던 폐차장. 내 차도 이곳 어딘가에 묻혀 있겠지


옛날 이야기를 하자면, 한국에 있을 때 차가 있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 차를 타라고 할 때도 나는 안탔다. 쓸데없는 생각인건 알지만 뭔가 위축되는 느낌이 싫어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철 없던 행동이지만 차를 갖고 싶다고 졸랐고 그리고 받은 내 인생 첫 차. 그 차로 친구들을 집까지 바래다 주고 놀러 갈 때 내 차를 끌고 다녔다.

그래, 남자에게 차는 자신을 더 당당하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나는 친구들의 발이 되어주었고 추억도 더 많이 만들 수 있었고 당당해 질 수 있었다. 그래서 정말 좋았다.


쇼핑에 눈 떴던 나



밴프에서 지내다가 가끔씩 한 시간 거리의 캘거리란 도시에 놀러 가게 되었고 그러다 보니 이제는 쇼핑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나는 옷 잘입는 방법을 모르고 또 학교가 공대인지라 트레이닝복도 아니고 등산복만 입고 다녔다. 그래도 옷에 관심은 많아 가끔씩 혼자 백화점에 들어가 옷은 안 사고 입어만 보고 돌아다니곤 했다.


쇼핑의 결과물들, 특히 거금을 주고 샀던 카메라
쇼핑의 결과물들, 특히 거금을 주고 샀던 카메라

여기는 캐나다니깐, 한번 패션에 도전하고 싶어 셔츠를 사서 청바지에 넣어 입기도 하고 꽃무늬 셔츠도 입어보고 캐쥬얼한 정장도 사서 입고 다녔다. 쑥스럽긴 하지만 내가 못 생겼다고 생각하진 않는데 꾸미니깐 정말 괜찮았다! 그래서 신이 나서 이것저것 마음에 드는 것은 다 샀다. 저축은 못해도 잘 먹고 많이 사는 게 남는 것 같더라. 그래도 등산복만 입고 다니던 내가 멋지게 차려 입어 보니 참 새롭고 나의 재발견인 것 같다.


캘거리로 지역 이동


내가 살았던 일본인 가정집의 귀여운 아이들
내가 살았던 일본인 가정집의 귀여운 아이들

쇼핑에 관심을 가지니 캘거리로 지역이동을 했고 캘거리에서 찾은 집의 조건도 쇼핑몰과 가까운가가 일 순위였다. 이유는 웃기지만 그렇게 이동해서 온 캘거리! 도시와 시골 중간 크기, 도시와 시골의 느낌 둘 다를 느낄 수 있는 도시다. 쉽게 말해 소박하고도 멋진 도시이다! 기껏해야 2~3층의 건물만 보다가 마천루를 보니 신기하다.


새로운 나의 일, 바텐더와 서버



도시와 다운타운을 돌아다니며 새로운 매력에 빠져들어 돌아다니나 보니 배고파 아무 곳에나 찾아 들어간 일식 집이다. 들어가니 저 멀리서 천사 같은 아이가 주문을 받으러 왔다. 걸어오는 모습에 마치 살랑살랑 이라는 음향효과가 지원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에서 하이어링을 하는지 물어보았고 그 자리에서 매니저와 인터뷰 후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한 곳은 SHO라는 스시 레스토랑. 중상 급 정도 레스토랑이라 음식도 맛있고 일하는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서버들이 대부분 여자라 내가 일하고 있으면 돌아가면서 나에게 말을 걸어줬다. 정말 천국에서 일하는 것 같았다.



이 아이가 천사 같은 아이, 한국인 혼혈이고 이름도 스테파니 미영 문이다. 그리고 내 코워커이자 소중한 친구들!

나의 포지션은 바텐더와 서버. 바텐더라니 뭔가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맥주 받고 칵테일 몇 가지 만드는 게 전부다. 그래도 한국에 가서도 술과 재료만 있으면 10가지 정도 칵테일은 만들 수 있겠다. 서버는 정말 괜찮았다. 음식 맛이 좋아 손님들의 팁도 좋았고 일하는 날 하루 100불(10만원)정도 팁은 나왔다.

돈 버는 것 보다 정말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이렇게 좋은 친구들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었고 내 생일과 내 마지막 일하는 날 쓸쓸하지 않게 해주었다.


나의 회고록


마지막 일하던 날 나의 마지막 손님들
마지막 일하던 날 나의 마지막 손님들

자! 일년을 돌아보며 쓴 나의 회고록.

이상하게 배울 건 없고 쓸데없는 이야기들만 가득하다. 나도 누군가에게 교훈을 주고 싶지만 지난 1년은 이랬다. 공부는커녕 문법책 한 권만 끝내자고 들고 온 책의 첫 부분만 펴봤다. 캐나다로 떠나는 날 누군가 말했다. 한 가지 목표를 정하고 초심을 잃지 말라고. 하~ 그런데 하루에도 보고 듣고 배우는 게 다른데 어찌 목표가 한결 같으랴. 확고한 사람이거나 융통성 없는 사람이거나.

나의 목표는 갈대처럼 바람 불면 흔들렸다. 그래도 나쁜 길로 안 빠진 것만으로도 잘한 것 아니겠는가!



그래 그렇게 갈대처럼 흔들렸고 내 목표는 영어공부에서 돈 벌기, 여행으로 바뀌었다가 어느 날 캐나다에 정착해야겠다 마음먹었다. 그래서 이 곳 대학에 편입 가능여부와 대학 입학을 위해 학교도 가보고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모았다. 그래 여기서 새롭게 시작해보자 했던 어느 날 내 친구들의 취업 소식이 전해져 왔다. 내 주변 친구들이 잘 되었다니 정말 기뻤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이게 이 느낌이구나! 나는 전혀 신경 안 쓰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 앞길 준비해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캐나다엔 마음에 드는 게 없어 한국에서 해외직구 한 배낭과 카메라 그리고 혹시나 읽지 않을까 싶어 산 시집
캐나다엔 마음에 드는 게 없어 한국에서 해외직구 한 배낭과 카메라 그리고 혹시나 읽지 않을까 싶어 산 시집


스물다섯 이제는 어른이고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사회인이 되기를 선호하는 우리 문화 그리고 언제 은퇴할지 모르는 부모님과 나의 졸업 후를 기대하는 주위 사람들. 그래서 이제는 정말 마음 먹었다. 돌아가서 남은 1년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해 좋은 곳에 취업해 멋진 모습 보여줘야겠다고!


아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면 친구들과 가족들은 내가 영어를 정말 잘할 것이라 생각하겠지 많이 부담이 된다. 기대에 부흥해 주고 싶지만 내 실력은 외국인을 만나더라도 피하지 않고 짧은 대화 나눌 수 있을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분명 나에게 영어에 관해 많이 물어 볼 텐데 그것보다는 내가 보고 느낀 1년에 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폼 잡고 찍었던 내 일터에서의 사진
폼 잡고 찍었던 내 일터에서의 사진

오늘 짐을 다 싸고 한국으로 큰 짐들 먼저 다 보냈다. 이제 내 덩치만한 큰 배낭 하나 메고 미 서부를 돈다. 그리고 혼자 터키로 떠난다는 누나가 심히 걱정이 되어 보디가드가 되어주러 터키도 간다. 캐나다를 정리하고 미 서부 그리고 터키까지 여행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나의 1년은 정말 멋진 1년이고 멋진 내 인생 스토리일 것 같다.

그래 나의 1년은 누가 뭐라 하던 멋진 1년이였다!


영현대기자단10기 이현동 | 경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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