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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좋은 명화 best 10] 그 작품몰라요? 왜 그래요? 마치 지금만 깜빡 잊은 것 같이.

작성일2010.05.17

이미지 갯수image 18

작성자 : 기자단

 

 

 

분명 아는 그림이고, 초등학교 때 부터 미술 시간에 배워온 작품인데

'고흐' 인건 알겠는데 (혹은 '해바라기') 도무지 작품과 작가가 매치되지 않는 상황!

있지 않으신가요 (전 그래요..................;;)

다이어리는 기본이고 버스카드 에서도 명화를 만나 볼 수 있는데요! 

그래서 제 마음대로 알아두면 "오~ 제법인데"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누이 좋고 매부좋은 명화 best 10 을 선정해보았습니다.

 

 

 

1907년 作

 캔버스에 은박, 금박, 유채, 180x180 cm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인,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라는 작품입니다.

작품이 좀 어둡게 나왔지만, 블링블링 하니 금빛색이 화려한 작품입니다.

 마치 허공 속에 키스를 하는 연인만이 존재하는 것 같지요

적극적인 남자와 소극적인 여자가 하나 되어 매혹적인 이미지를 풍겨냅니다.

 그는 여성을 좋아했으며 (여성과 고양이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여성은 성녀 혹은 요부로만 보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작품중에는 외설적인 작품이 많습니다.

키스에서는 어떤 위험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두 연인을 자세히 보시면 허공 끝에 배치되어있습니다.

그들이 무릎을 꿇고 있는 바닥은 꽃으로 가득하지만, 그 너머는 보이지 않습니다. 아슬아슬하지요.

위태위태한 사랑, 두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였습니다.

 

 

1503∼1506년 作

패널화 77x52 cm

 

 너무나 유명하지만 작가이름이 종종 생각나지 않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입니다.

비하인드 스토리는 워낙 유명하죠~ (다양한 소문이 있습니다만..)

특히 눈썹이 없다는 것, 웃는 듯 무표정인듯한 웃음이 모나리자의 특징입니다.

일찍이 모나리자가 대낮에 루브르 미술관에서 도난당해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2년 후, 범인이 피렌체의 미술상에게 팔러 나가다 미술상의 기지로 다시 햇빛을 볼 수 있었죠.

 

이 초상은 눈썹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에 대해서는 당시 넓은 이마가 미인의 전형으로 여겨져,

여성들 사이에 눈썹을 뽑아버리는 일이 유행하였기 때문이라는 설, 미완성작이라는 설,

원래 눈썹이 그려졌으나 복원 과정에서 지워졌다는 설 등이 있습니다. (네이버 백과사전 검색)

또 2009년에는 프랑스의 미술전문가가 240메가픽셀의 특수카메라를 사용하여 분석한 결과,

다 빈치는 이 그림을 3차원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유약으로 여러 겹을 특수처리하였고,

가장 바깥에 그려졌던 눈썹이 수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화학반응을 일으켜

사라지거나 떨어져나간 것이라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불분명한 점이 많아 모나리자에 대한 신비성은 깊이를 더해가고 있습니다.

 

레오나드로 다 빈치의 모나리자 였습니다.

 

 

1889년 作

 캔버스에 유화, 73.7х92.1㎝

 

빈센트 반 고흐,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네덜란드 화가이지요

별이 빛나는 밤이라는 작품은 고흐가 그 삶의 마지막 1년, 정신병과 싸우며 그린 작품입니다.

공동생활을 하고 있던 고갱과 다투다가 자기 귀를 자른 고흐는 아를의 병원에서 퇴원한 후에도 간혹 발작을 일으켜

"나는 자신에게 과(課)해진 미치광이 역할을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생각한다"며 1889년 5월 아를에서 가까운 상 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됩니다.

고흐는 그해의 7월과 12월에도 발작을 되풀이하였으며, 이 그림은 그 발작 사이에 그린 상 레미 시대의 작품이다.

 

고흐는 37살의 젊은 나이로 사망하였습니다.

그는 27세가 되던 1880년에야 화가의 길에 들어, 불과 10년의 작품생활에 숱한 명작을 남겼습니다.

 

 

위에서 먼저 살펴 본 바있는 해바라기는 물론, 카페 테라스 라는 작품도 인기가 많은 명작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였습니다.

 

1893년 作

 템페라화, 83.5×66㎝

 

영화든 코메디든 많이 패러디되는 이 작품! 뭉크의 절규입니다. (스쿠림)

우리를 보고 소리를 지르는 듯한, 유령같은 남성의 모습에서 절규 혹은 공포가 느껴지시죠

같은 주제를 그린 소묘 작품에는 뭉크의 다음과 같은 글이 덧붙여 있습니다.

"두 친구와 함께 산책을 나갔다. 햇살이 쏟아져내렸다. 그때 갑자기 하늘이 핏빛처럼 붉어졌고 나는 한 줄기 우울을 느꼈다.

친구들은 저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나만이 공포에 떨며 홀로 서 있었다. 마치 강력하고 무한한 절규가 대자연을 가로질러가는 것 같았다."
 절망적인 심리상태를 왜곡적으로 잘 나타내어 신선함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입니다.

 

뭉크의 절규였습니다. 

 

 

1495-1497 년 作

회벽에 유채와 템페라, 460×880cm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패러디도 많고 미용실이나 버스에도 많이 붙어있는 작품이죠

개인적으로는 다빈치 코드를 읽고 난 후 굉장히 큰 관심을 갖게 된 작품입니다.

최후의 만찬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만찬을 나누었다(마태 26:20, 마르 14:17, 루가 22:14)는

매우 낯익은 주제를 전무후무한 방식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왼쪽의 인물이 성모 마리아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데요.

잘 보시면 아시겠찌만 놀라는 표정의 제자들이 보이는데요, 예수가 그의 제자중 한명이 배반할 것이라고 말하자

제자들이 놀라서' 그게 저입니까' 하고 묻는 장면 묘사했다고 하네요.

 

영화보다는 서적, '다빈치 코드'를 읽으면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레오나드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이였습니다. 

 

 

 

1930 년 作

캔버스에 유채, 50.3 x 50.3cm

 

의상디자인에서 많이 활용되는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입니다.

몬드리안이 이 그림을 그렸을 당시, 사진이 유행하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는

사진이 아닌 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그 어떤것을 보여주고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림이란 비례와 균형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견해를 갖고 있어

이와 같은 단순한 기하학적 도형을 통하여 자신의 미술관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수평선은 여성을 수직선을 남성을 상징하여 서로 대립함과 동시에 조화를 이루어 나감을 암시하고 있다고 하네요.

 

피에트 몬드리안의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이였습니다.

 

 

1857 년 作

캔버스에 유화, 83.82×111.76cm

 

광고 속에서 재 탄생했을 만큼 (커피 광고였나요 ;_;)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입니다.

금방 튀어나올 것 같은 생생함과 농촌의 아름다운 색채감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죠!

일하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소란스러움은 멀리 원경으로 밀려나 있으므로 화면은 깊은 정적에 잠겨 있어 세 사람의 모습에서는 엄숙함까지 느껴집니다.

당시 비평가들은 농민의 모습만을 계속 그리는 밀레를 사회주의자라고 비난하였으며,

1857년 살롱에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도 농사 일을 하는 가난한 여인들의 모습이 지나치게 거만하게 표현되었다거나

'하층민의 운명의 세 여신'이라는 비평을 받았습니다.

밀레는 물론 정치적인 이유에서 농촌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그린 것은 아니었으며,

스스로 가난한 생활을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인간을 미화하거나 이상화할 수 없었다고 하네요.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 이였습니다.

 

 

1907 년 作

캔버스에 유화, 243.9x233.7㎝

 

피카소의 대표작이자, 20세기 미술의 시작을 알리는 아비뇽의 아가씨들입니다.

그의 동료인 조르주 브라크는 이 작품을 처음 봤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자네는 마치 우리에게 솜뭉치를 먹이고 석유를 마시게 해서 불을 뱉어내게 하려는 것 같군.”

펠릭스 페네옹이나 앙리 마티스, 피카소의 무조건적인 지지자였던 기욤 아폴리네르마저 그의 그림을 비판했다고 합니다. 

오직 한 친구 칸바일러만이 그 그림의 가치를 알아 보았다. 초대한 친구들의 반응이 시원치 않자,

그는 그림을 둘둘 말아 화실 한 구석에 처박아 놓았는데요. 이 그림은 현대 회화의 첫걸음을 알리는 기록이 되어버렸습니다.

 

네 여자는 서 있고, 한 여자는 앉아 있다. 그런데 그 여자들은 익히 보아왔던 그림들 속 여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때까지 화가들의 화폭 속 여인들은 항상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여인들은 아름답지 않고 오히려 보기가 흉합니다.

. 아니 그런 여자의 모습은 존재하지도 않는데요.

큰 눈, 정면의 모습에 담긴 옆 모습의 코, 오른쪽 여자들의 모가 난 얼굴, 엄청나게 큰 발, 도무지 정상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오른쪽 여자는 난폭하게 쭈그리고 앉아 몸의 등을 보이고 있네요, 그런데도 여자의 얼굴은 정면이라니 가능한 일일까요

어떻게 얼굴 정면과 등이 함께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처럼 입체적인 회화 기법으로 현대 회화에 이바지한 작품

아비뇽의 아가씨들! (네이버 캐스트 _ 파블로 피카소 아비뇽의 아가씨들이라는 글을 참조하였습니다.)

 

파블로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 이였습니다.

 

 

1883 년 作

캔버스에 유화, 180x90 ㎝

 

행복을 그린 화가, 르누아르의 대표적인 작품(제가 생각하기엔 그렇습니다.ㅎㅎ) 시골 무도회입니다.

그는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한결같이 '밝고 행복한' 그림만을 그려(평생) 행복을 그린 화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데요.

시골 무도회라는 작품 역시 행복이 절로 묻어나는 작품입니다.

시골 무도회는 따뜻하고 활기찬 서민적 분위기를 흠씬 뿜어냅니다.

배경의 식탁보, 커피 잔, 모자 등 아기 자기한 소품들도 일상의 행복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죠

 

 

그의 또다른 (유명)작품인 피아노 치는 소녀들 역시 밝고 행복한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보기만 해도 푸근해지는 르누아르의 작품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시골 무도회 이였습니다.

 

 

1885 년 作

캔버스 위에 유채, 207x308 ㎝

 

 따스한 일요일 오후가 생각나는,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입니다.

쇠라는 신인상주의미술을 대표하는 프랑스의 화가입니다.  

이 작품은 점을 찍어 그리는 점묘법으로 그린 그림이며, 색채학과 광학이론을 연구하여

그것을 창작에 적용해 점묘화법을 발전시켜 순수색의 분할과 그것의 색채대비로 신인상주의의 확립을 보여준 작품이지요.

파리 근교의 그랑드자트섬에서 맑게 개인 여름 하루를 보내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무수한 점이 모여 하나의 작품이 탄생한다. 굉장히 멋있지 않나요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자트섬의 일요일 오후 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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