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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마지막 달동네 … 104마을

작성일2010.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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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1960년대, 도시 개발이 한창이던 때에 정부는 개발을 위해 사람들을 강제이주 시켜야만 했습니다.

당시 청계천에 판잣집을 짓고 살던 이들을 비롯하여, 용산, 안암동 판자촌에 살던 이 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처음 이들이 중계동 104번지, 혹은 104마을이라고도 불리는 이곳에 오게 되었을 때는 따듯한 집은 고사하고 천막으로 된 집이 고작이였습니다. 30평 남짓한 천막을 분필로 선을 그어 몇몇 가구가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 104마을이 생겨나게 된 배경입니다.

 

 

104마을에 들어 선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마치 70년대 영화 속으로 들어 온 듯한 느낌` 이였습니다.

아직까지도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마을의 모습을 보며, `아직 서울에도 도시화에 때묻지 않은 곳이 있구나` 하는 신기함과 아직까지도 이런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까지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 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는데요, 물론 사는데 바쁘고 여유가 없었던 것도 이유이지만 확실히 해결되지 못하고 지속된 재개발 문제 때문이였습니다.

재개발 이야기가 나온지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속시원하게 해결 되지 못하였고, 그 때문에 40년이 지나 금세 허물어 질 듯한 집들과 축대들이 재개발이라는 이유로 고쳐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세월을 이곳에서 보내고 이제는 백발의 노인이 된 이들은 개발이 되던 안되던, 하루빨리 결정이 났으면 좋겠다며 그동안의 마음 고생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았습니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이 마을을 나갔고, 현재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 대다수는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분들 입니다. 

 

 

 

마을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던 김성년 할아버지(80)는  "그땐 참 많이 힘들었지. 지금도 많이 나아진거야. 그땐 먹을 것도 없었고, 버려진 아이들도 많았어. 그저 딸이라는 이유로 쫒겨난 여자 아이들도 많았었지" 라며 이곳으로 처음 오던 때의 일을 회상하였습니다. "이제는 자식들도 전부 커서 먹고 살만해 졌어. 나도 어려운 시절을 겪었던 터라,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그냥 지나 칠 수가 없겠더라고. 그래서 도와주며 살고있어. 사람은 베풀면서 살아야 하는거야." 라며 자신처럼 어려운 시절을 겪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마을의 재개발 이야기에 할아버지는 "나같은 사람이야 임대 아파트하나라도 주면 갈까하지. 마을도 재개발을 하루 빨리해서 나아져야해. 이런데서 더 어떻게 살어. 그런데 마을엔 아직 어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그런사람들은 갈데없이 막막하지..." 라며 말꼬리를 흐리셨습니다. 마을을 위해선 재개발을 해야하지만, 이미 다른곳에서 강제이주된 이곳에서 다시 다른 곳으로 향해야하는 안타까움이 느껴졌습니다.

 

 

마을 구석구석 아직 미쳐 치우지 못한 연탄들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한 아주머니께서는 겨울이면 하루에 연탄 두장으로 버텨내야 한다며, 따듯한 봄이 그저 고맙다고 하였습니다. 벽으로 스며들어오는 한기로 뼛속까지 차가움을 견뎌야 했던 그들의 겨울을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져 왔습니다. 연탄은행은 겨울에 얼어있는 104마을 주민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녹여주는 존재입니다. 다시 겨울이 오면 이 연탄들을 싣고 쉴새없이 언덕을 오르겠죠

 

 

마을어귀를 거의 다 돌아내려왔을 때, 동네 할머니 분들께서 저녁 찬거리로 고구마 줄기를 다듬고 계셨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조심해서 가고 다음에 또 와야혀" 라는 말과 웃음으로 배웅해 주셨습니다.

사실 104마을은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출사지로도 유명하기에 하루에도 마을의 모습을 담으려는 많은 이들이 사진을 찍으러 오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겐 마을의 모습을 담을 때도 항상 조심하게 되기 마련이구요. 할머니에게 이런 `낯선` 젊은이들은 반가운 손님이자, 친구이며, 담소를 나눌 대상이었습니다. 언제부터 이곳에서 사셨냐는 물음에 "수돗물도 안 나오고 전기도 없던 때에 살았어. 매일 물을 길러 다니는게 일이였지. 세월 참 빨라" 라며 웃음지으셨습니다.

이제 재개발의 문턱 앞에 다가선 104마을. 이미 마을주변에는 제2의 강남이라고 불리는 학원가와 명문고들이 즐비해 있습니다. 마을의 어떤 이는 하루 빨리 개발이 되어 마을이 변하기를 원하고, 어떤 이는 또다시 보금자리를 옮겨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무거워집니다. 오늘도 그렇게 104마을의 하루는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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