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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 가는 기차를 타다 - 대천, 군산

작성일2010.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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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오직 만 25세까지, 한정된 연령에게만 제공되는 ‘내일로’ 를 탐내지 않을 젊은이들이 어디 있을까 올 여름에만 5만명이 ‘내일로’ 를 이용할 거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정답을 알 수 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놀러갈 것만 생각해 온 네 명의 대학생도 기꺼이 5만 대열에 합류했다. 영현대 사이트에도 몇 번 소개 된 바 있는 내일로. 이번에는 실제 이루어지는 내일로 여행의 모습을 가감없이 파헤쳐 보자!

 

 

 

 

 체력 있을 때 열심히 놀자는 생각으로 이른 아침부터 용산역에 모인 네 명의 대학생들. 2시간 반 정도 걸리는 대천역을 첫 목적지로 삼고 새마을호에 몸을 실었다. 이 이후로 타게 될 자유석 없는 무궁화호에 대한 생각은 되도록 하지 않으면서 편안한 좌석에 몸을 맡겼다.

 

 

 

 대천역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역무실로 가서 짐을 맡겼다. (짐을 맡아주는 역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역들도 만날 수 있으니 주의 해야 한다.) 대천 하면 해수욕장, 대천 해수욕장 하면 보령 머드 축제! 허나 이미 머드 축제는 그 전날에 끝나 버린터라 이 대학생들은 해수욕장 바로 근처에 있는 ‘보령 머드 체험관’을 가기로 결정했다.

 

 

 

 

 

 보령 머드 체험관으로 향하는 여정은 은근히 쉽지 않았다.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호객행위가 줄을 이어 일일이 대응하기도 힘이 들었고 버스를 타고 도착한 해수욕장에서 길을 물어도 다들 그곳을 잘 모르는 분위기이다. “이미 끝났는데..” 라며 말끝을 흐리시며 머드 축제가 이루어질 때 마련되었던 부스가 있는 장소를 알려주시기도 했다. 그러니 대천역에서 지도를 꼭 받아 확인하며 가는 것이 좋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보령 머드 체험관은 언뜻 보면 공중 목욕탕 같은 분위기이다. 그러나 역시 특이한 점은 ‘머드’를 몸에 바를 수 있도록 한 켠에 머드가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다. 또한 한쪽에는 커다란 창이 있어 해수욕장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 두었다. 비록 축제를 즐기진 못했지만 체험관에서 즐긴 머드도 꽤 즐거웠다.

 

 

 

 

 짐을 맡기고 군산을 돌아봐야겠다는 이들의 생각은 산산히 부서졌다. 바로 이 군산역이 짐을 맡아주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당황한 네 대학생. 그러나 받아주시지 않는 데 억지로 짐을 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단 당장 군산의 대형마트를 찾아 보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군산 철길마을 바로 옆에 대형마트가 있어 그곳에 짐을 넣어두고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다.

 

 

 

 

 어려움은 극복하면 기회가 되는 것.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대형마트 앞에 있는 신호등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가니 곧장 철길 마을이 나타났다. 마치 해리포터에 나오는 9와 4분의 3번 승강장을 건넌 기분이었다. 소란스러운 도로 바로 옆에 이렇게나 고요한 철길 마을이 있다니. 무언가 어색할 법도 한데 이 마을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있었다.

 

 

 


 예전엔 기차가 질주했을 곳엔 빨래만 너풀대고 있다. ‘선로 통행 금지!’ 라는 표지판은 무색해진 지 오래다. ‘철길’ 이라는 의미는 잃었지만 관광객들의 소소한 발걸음이 이어지는 그 곳은 이제 ‘사람길’ 이 되었다. 흔히들 이 곳을 ‘시간이 멈춘 마을’ 이라고 하지만 어느 새 시간은 다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철길 마을을 나와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이성당 빵집’ 이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시대에 문을 열고 이후 우리나라 사람이 인수해 이어져가고 있는 빵집이다. 바로 이 곳이 한국 최초의 빵집인 것이다. 주인이신 할머니의 철저한 운영방침에 따라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고 있는 이 곳은 빵맛도 다른 곳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따끈따끈한 빵 산이 하나 세워지는가 싶으면 어느 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카운터에는 한 번에 만원어치 빵들을 거뜬히 사가는 사람들이 줄을 지어 서 있다.

 

 

 


 위기 의식을 느낀 대학생들은 당장에 뛰쳐가서 빵과 케익을 골라 사 들고 가게 안에 마련된 탁자에 앉았다. 한 입 먹고는 다들 홀린 듯이 재잘댄다. ‘촉촉하니 부드럽고 달달하니 맛있다’ 같은 말들로도 잘 표현이 안 된다. 특히 케익은 정말 사르르 녹는다. 쉐이크는 양이 적어보이지만 빨대로 잘 빨지도 못할 만큼 내용물이 충실하다. 이것이 바로 명불허전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다.

 

 

 

 

 


 원래는 히로쓰 가옥을 목표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는데 안타깝게도 찾지 못했다. 그래도 주변 집들을 살펴보면서 군산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잔재를 볼 수 있었다. 군산은 일제 강점기 때 호남평야에서 재배 된 쌀들을 일본으로 보내는 다리 역할을 한 곳이라 이런 형식의 집들이 많았다. 그냥 걷기만 해도 어쩐지 일본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빈 집도 많았지만 낡아 허물어진 부분을 보수 해 아직도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집들이 대부분이었다. 군산에서 이런 일본식 건물을 대표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 히로쓰 가옥과 동국사이다. 찾아가 보지 못해 조금 아쉬울 따름이다.

 

 

 

 

 


 군산에서 머물만한 숙소를 잡지 못해 익산에 숙소를 잡게 되었다. 그래서 시간에 쫓겨 은파 유원지도 가 보지 못한 채 군산을 떠나게 되었다. 아쉬움은 컸지만 앞으로 있을 여행을 생각하며 익산에 도착했다.

 

 

 

 

 

 익산역에 도착해 대기실로 들어서자마자 기념 도장이 보였다. 아뿔사! 지금껏 기념 도장을 찍어야 한다는 걸 깜빡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쉬움이 더해져 갔지만 이미 지나간 것은 지나간 것이었다. 첫 도장인 익산역 기념 도장을 찍으면서 앞으로는 들리는 모든 역의 기념 도장을 꼭 찍고 말겠다는 굳은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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