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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과의 소통을 열망했던 키스해링을 만나다

작성일2010.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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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미국 출생인 키스해링(1959-1990), 처음에는 단순한 그래피티 아티스트로서 주목 받았다.  1980년대 지하철역 광고판에 덮혀 있는 검정 종이에 여러 가지 사회문제를 다룬 분필 그림으로서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게 되었다.
 그는 스케치도 하지 않고 과감하고 빠르고 명료하게 간결한 선으로서 작은 종이에서부터 커다란 벽화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캔버스에 에너지를 표출해 낸 천재 팝 아티스트이다.
 단순한 그림이지만 세련된 원시주의를 닮은 듯 한 그의 그림은 대담하면서도 인종차별 반대, 반핵 운동, 동성애자 인권 운동, 에이즈 교육 문제 등의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기도 하였지만 유머러스하고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상업적 뛰어난 감각으로 (비평가들이 비난을 받기도 하였지만) 뉴욕과 마이애미에 자신의 아트숍을 오픈하여 성공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키스해링의 작품을 올림픽 공원 소마 미술관에서 직접 키스해링의 작품과 사진 자료 등을 포함한 총 150여 점을 만나 볼 수 있다.

 

★ 전시 기간  2010년 6월 17일 ~ 2010년 9월 5일까지
★ 전시 장소  올림픽공원 소마미술관
★ 관람 시간  10:00~19:00 (수, 토요일 21:00)
★ 입장 마감  18:00 (수, 토요일 20:00)

★ 관람요금 - 괄호의 가격은 20명 이상의 단체관람 가격
                     일  반 (만19~64세) 개인 12,000원 (10,000)
                     청소년 (만13~18세) 개인 10,000원  (8,000)
                     어린이 (만 4~12세) 개인  8,000원  (6,000)

★ 홈페이지 참조: www.haring.co.kr

 

 인터넷에서 예매를 하고 갈 시에는 더 저렴하게 갈 수 있지만 당일날 가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송파구 주민은 신분증 제시 시에 동반 1인까지 천원 할인이 가능하고 대학생(대학원생) 또한 학생증을 제시할 경우 천원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학생증을 꼭 챙겨가도록 하자.

 

 전시장 밖에서도 키스 해링의 다양한 전시 작품들의 모형을 만나 볼 수 있다.
 미술관 주변, 기념포스터, 포토존, 전시 광고 앞에서 가족,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는 사진을 찍고 키스해링전 네이버 공식 까페(cafe.naver.com/kharing)에 올리면 다양한 경품들이 준비 되어 있으니 조형물, 포스터 앞에서 재밋는 포즈를 취해보는 즐거움을 맛보자. 



 

 전시실은 제1전시실부터 제6전시실까지 있다.

 그의 초기 작품부터 형광물감으로 제작한 작품들, 그리고 300여명의 아이들과 같이 작업하여 만든 <자유의 여신상> 등 단조롭지만 그의 사회의식이 돋보이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제 3전시실에서는 ‘키스 해링은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는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으니 꼭 지나치지 말고 보길 추천한다.
 입구 로비에서 작품들을 소개해 주는 오디오 가이드를 3천원에 대여할 수 있으니 좀 더 깊게 전시작품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전시회 밖으로 더욱 키스해링에 대해 알고 싶다면 전시회 홈페이지를 참고해도 좋고 미국 공식사이트인 http://www.haring.com/ 에서 그의 작품 활동에 대해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다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적합하지 않은 작품들도 있기 때문에 만 18세 이하는 http://www.haringkids.com/에서 그의 작품을 만나 볼 수 있다.

 

↑ 키스해링의 영문 정식 홈페이지 메인화면


 32도를 넘나드는 여름의 무더운 날씨였지만 즐거웠던 전시회 관람이었다.
 가기 전까지는 키스해링의 대표작들의 이미지는 기억하고 있을지만 그가 누군지는 몰랐다.  그러나 전시관람을 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인가는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추구하는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종과 나이와 어떤 사회 경제적 여건에 얽매이기보다는 `사람과 사람간의 이해와 유대`를 엮고자 했던 그를 그림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언뜻보면 낙서같은 그의 그림에는 그렇게 많은 사실들이 담겨 있었다.

“ 나는 그리는 능력으로 세상에 이바지 한다. 나는 가능한 한 오랫동안,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위해, 가능한 많이 그릴 것이다”라고 말했던 그. 그는 진정으로 대중과 좀 더 가까운 예술을 하기 위해 생애를 바쳤던 사람이다. 그가 31살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대중들 속에서 계속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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