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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로 가는 기차를 타다 - 광주

작성일2010.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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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익산 -> 광주
 
 아침 일찍 일어나자마자 새벽길을 달려 광주행 기차를 탔다. 타야 될 기차가 자유석이 없는 무궁화호라서 타면서 많은 걱정을 했지만 역시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이 얼마 없었다. 쪽잠을 자면서 민주화의 성지, 광주로 향했다.

광주 -> 떡집
 

 


 잠에 든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도착한 광주 역.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광주에서 유명하다는 떡집을 찾아갔다. 백화점만큼이나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이 떡집은 광주 역에서부터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내에 위치하고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원래 목적이었던 인절미 치즈 스틱과 치즈 떡볶이를 주문했다. 곧이어 나온 음식들은 따끈따끈해서 그런지 치즈들이 쭉쭉 늘어났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무거운 짐을 메고 낑낑대며 걸어온 보람이 느껴졌다. 맛 또한 기대를 넘어섰다. 다시 광주에 가게 된다면 꼭 또 들리고 싶은 떡집이다.

떡집 -> 구 전남도청
 

 


 1980년 5월 18일. 민주화의 기반을 다지며 그 성장을 촉진시키는 운동의 최초 시작일이다. 그것은 광주에서 일어났으며 그 마지막 불꽃이 일어났던 곳이 바로 구 전남도청이다. 폭압에 굴하지 않고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마지막까지 싸운 시민군이 피를 흘린 곳이다. 영화 ‘화려한 휴가’를 본 사람이라면 이 곳이 어떤 곳인지 금방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 까지는 많은 분들이 내부에 들어가셔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지만 네 대학생들이 찾아갔을 때는 들어갈 수 없었다. 한창 구 전남도청 별관을 철거하겠다는 논란이 있었고 현재는 공사를 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끊임없이 철거를 반대하는 여론들이 들끓고 있는 곳이었다. 외관만 보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지만 금남로와 구 전남도청은 아직도 민주화를 말하고 있었다.

구 전남도청 -> 김대중 컨벤션 센터
 

 


 이번에는 김대중 컨벤션 센터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역 내에도 815 기념관을 설치해 그 때의 정신을 잊지 않고 말해 주고 있었다.

 

 김대중 컨벤션 센터 1층에 있는 전시관을 가고 싶어서 들어갔더니 정비중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줄이 쳐져 있었다. 어떻게 가는 곳 마다 이렇게 아쉬움이 남게 되는지 좌절을 계속 느끼게 되었다. 그래도 줄 밖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으로 구경하고 잘 안 보이는 것은 카메라로 줌 까지 해 가며 열심히 보고 왔다. 아직도 정말 아쉽다.

김대중 컨벤션 센터 -> 518 기념공원

 


 원래는 시간 관계상 518 기념공원은 생략하고 518 자유공원만을 가기로 계획했었다. 그러나 극도로 아쉬운 기억력으로 인해 기념공원과 자유공원을 착각해 택시를 타면서 518 기념공원을 향했다. 도착해서야 원래 가기로 했던 곳이 518 자유공원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촉박한 기차시간 때문에 518 국립 묘지도 포기하고 가기로 했던 자유공원인지라 큰 좌절감에 빠져 허둥대는 걸 관리인 아저씨가 보시고는 안타까움을 느끼신 듯 했다. 네 명의 대학생들을 부르시더니 남은 것이 이것뿐이라 이정도밖에 주지 못하겠다며 518 민주화운동 책자 네 권과 광주 민주화 운동에 관한 만화책 한 권을 주셨다. 마지막 남은 것들이었는데 얻어가는 것이 죄송하면서도 고마웠다.

 518 기념공원은 좀 더 공원의 역할에 충실한 곳인데 광주 민주화 운동을 기념한 문화관과 현황조각 등이 있는 곳이다. 제대로 구경하지 못하고 나온 것이 아쉬웠다.

518 기념공원 -> 518 자유공원

 

 역시 기차 시간에 쫓겨 택시를 타고 도착한 자유공원에서도 역시 친절한 광주 시민분들과 만날 수 있었다. 곧장 들어선 자유관에는 그곳을 관리하시고 설명하시는 직원분이 계셨다. 방명록을 작성하고, 그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광주 민주화 운동이 얼마나 우리에게 자랑스럽고 다시 있기 힘든 민중항쟁이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시는 모습 또한 ‘내가 정말 민주화의 성지에 와있구나’를 느끼게 해 주었다. 자유관 안에는 당시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에 쓰였던 궐기문들, 전남대 조선대 총학의 입장 표명글, 계엄군이 쓰던 총기의 모형 등등을 보면서 과거를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충격적으로 다가온 것은 핏자국이 말라붙은 죄수복과 당시 희생자들의 관을 감쌌던 태극기였다. 내가 지금 어떤 과거를 지나 현재를 살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게 해 주었다.

 자유관 직원 분께 부탁해 가방을 맡기고 그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들을 향했다. 그 건물들은 518 민주화 운동 당시에 실제로 쓰였던 건물들을 복원한 것이다. 복원이라고는 해도 당시 시민 분들이 벽돌 하나하나를 보관해 두셨다가 다시 지은 건물이니, 실제 그 때의 건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담에는 당시의 사진들이 죽 붙어 있었다. 건물들 옆에 심어놓은 꽃들은 대부분 무궁화였다.

 

 헌병대 중대 내무반 안에는 놀랄 만한 것들이 없어서 다른 건물들 내부도 그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헌병대 본부 사무실 건물로 들어서자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밀랍인형으로 당시 취조 받던 상황을 재현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인형들을 보는 순간 어릴 때 갔었던 서대문 형무소의 밀랍인형들이 떠올랐었다.

 

 영창 또한 밀랍인형들이 있었다. 험악한 인상을 쓰고 있는 헌병 인형과 철장 안에서 끝없이 항거하고 있는 인형들이었다. 마치 그 때로 돌아가 그 상황을 직접 보는 듯 현실적이었다.

 

 그 이후로 간 상무대 법정에도 밀랍인형들이 있었다. 당시 법정은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고 오직 그 많은 좌석에는 그들이 생각하던 ‘죄수’ 들이 앉았다고 한다. 한 의자에 앉아 보았다. 당시 그곳에 앉아 있던 시민들이 보는 광경을 똑같이 보고 있으려니 어쩐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들었다.

 

 건물들에 들어가 보느라 시간을 지체해 정신없이 짐을 찾으러 자유관으로 돌아갔다. 짐을 맡아 주셨던 직원분이 가기 전에 꼭 해야 할 것이 있다며 멈춰 세우셨다. 사진을 찍어주시겠다면서 로비에 붙어있던 사진 앞에 서 보라고 하셨다. 대학생들이 이곳을 방문하면 꼭 그 앞에서 사진을 찍어 주신다고 하셨다. 그 사진은 1980년 5월 16일 도청 앞 분수대 민족민주화설회의 모습을 담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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