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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의 숨겨진 보석, 크라쿠프

작성일2010.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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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동유럽의 숨겨진 보석, 크라쿠프

 


 동유럽을 여행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체코의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빈과 짤즈부르크,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폴란드의 바르샤바를 방문하고자 한다.
 열거된 도시 모두 아름답지만 동유럽에 숨겨진 보석이 폴란드에 있으니 그 곳은 바로 크라쿠프. 크라쿠프는 예전 폴란드의 수도였으며,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유일하게 독일군의 폭격을 당하지 않은 도시이기도 하다. 혹자는 히틀러도 이 아름다운 도시를 보고 감동을 받아 크라쿠프만은 폭격을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사령부가 크라쿠프에 있었다.
 사실 크라쿠프는 우리에게 생소한 도시이다. 그러나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가 공부한 야기에오 대학이 있는 곳, 2005년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의 고향,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실제 배경 무대, 그리고 홀로코스트가 자행된 아우슈비츠가 근교에 있는 곳, 그리고 얼마전 불운의 사고로 타계한 故 카친스키 폴란드 대통령 내외가 잠든 곳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크라쿠프가 어떤 곳일지 새삼 궁금해질 것이다.
 역사의 중앙무대는 아니었지만, 세계사 속에서 끊임없이 등장했던 곳이 폴란드의 크라쿠프, 지난 날의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구시가지 광장을 방문하는 것만으로도 크라쿠프만의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관광하는 사람들이 꼭 방문하는 비엘리츠카 소금광산, 아우슈비츠, 바벨성, 성모마리아 성당을 관광한다면 크라쿠프의 진가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 비엘리츠카 소금광산(Wieliczka)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제 1호는 무엇일까 놀랍게도 폴란드 크라쿠프 근교에 있는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이다. 197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은 거대한 규모처럼 폴란드 경제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과거 소금이 귀하던 시절 이 곳 광산에서 생산된 소금은 폴란드 왕국의 중요한 재원이었다.
 700년 넘게 소금 채굴이 이루어진 이 곳의 매력은 무엇일까 이 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소금을 이용해서 만든 작품들이 그 답이 될 것이다. 최근 칠레에서 발생한 광산 매몰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광부라는 직업은 큰 위험을 감수하는 직업이다. 더욱이 비엘리츠카 소금광산은 광산의 붕괴뿐 아니라 광산에서 생성되는 메탄 가스 때문에 폭발의 위험이 늘상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광부들은 일반적인 안부 인사가 아닌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이란 말로 인사를 나누었으며 광산 곳곳에 자신들의 안전을 기원하기 위해 예배당을 만들어 끊임없이 기도드렸다.
 소금을 조각하여 만든 최후의 만찬을 비롯한 성경의 이야기들을 소재로한 여러 작품들을 보면 아마추어가 만든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탄이 나온다. 어쩌면 유명 예술가가 아닌 광부들이 작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 가치가 빛나는 듯 하다.

 

▲ 비엘리츠카 광산에 얽힌 킹가공주 전설을 소금을 이용해 조각화한 작품

 

▲ 광산 내부 모습

 

▲ 광산 내부의 큰 홀

 

▲ 소금을 이용하여 만든 샹들리에

 

▲ 소금을 조각하여 만든 성모마리아와 예수상

 

▲ 요한 바오로 2세의 조각상

 

▲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작품을 소금으로 이루어진 벽에 새긴 작품

 

 

 

2. 아우슈비츠(Oswiecim)

 

 어쩌면 우리나라의 역사보다 잘 알고 있는 것이 홀로코스트일것이란 생각이 든다. 끊임없이 책으로, 그리고 영화를 통해 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홀로코스트의 역사가 이루어졌던 아우슈비츠가 크라쿠프 근처에 있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웠다. 유대인 집단 학살지로 독일의 도시가 아닌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유럽 전역에서 유대인들을 이송시켜오기에 편리한 위치 때문이다.

 이 곳이 아우슈비츠인줄 모른다면, 그저 한적한 교외에 자리잡은 대규모의 빌라단지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붉은 벽돌의 건물과 길 따라 자리잡은 가로수들. 그러나 건물 하나하나를 방문할 때마다 전시품들과 기록들, 더욱이 희생당한 사람들의 사진을 본다면 이 곳은 평범한 빌라단지가 아닌 다시는 반복되어선 안될 역사의 현장이란 사실을 실감할 수 있다. 12명의 사람을 한꺼번에 처형했던 교수대, 손톱자국이 가득한 콘크리트 벽이 있던 가스실, 열악한 생활을 재현한 전시실을 보면 불과 60년전에 이러한 참극이 발생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아니 믿고 싶지 않는다. 

 

▲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Arbeit Macht Frei)`가 적혀 있는 아우슈비츠 입구

 

▲ 길가의 가로수와 수용소

 

 

 

▲ 희생자들의 셀 수 없이 많은 안경들

 

▲ 자신의 이름과 생일을 큼직하게 적어 놓은 가방들. 독일군들은 유대인들에게 퇴소할 때 가방을 돌려준다고 거짓말하며 이후 돌려 받을 수 있게 자신의 가방에 이름을 적으라고 하였었다.

 

 

▲ 총살이 이루어졌던 죽음의 벽. 죽음의 벽 옆 건물들은 처형하는 것을 알지 못하게 창문들이 모두 가려져 있다.

 

▲ Cyclon B를 이용하여 유대인들을 대량 학살했던 가스실

 

▲ 가스실 내부 벽에 빼곡한 손톱자국들.

 

  

▲ 수 많은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던 아우슈비츠 복도의 모습

 

 


3. 바벨성(Wawel castle)

 

 바르샤바가 오늘날 폴란드의 수도이지만, 지난 1039~1596년까지 558년동안 폴란드의 수도는 크라쿠프였다. 바벨성은 폴란드의 국가적인 행사가 주로 이루어지며 특히 역대 왕들, 영웅들, 위인들이 묻혀 있는 의미 있는 곳이기도 한다.
 많은 이들이 잠든 아름다운 대성당 이외에도, 화려한 지난 날을 돌이켜 볼 수 있는 접견실, 왕실사궁, 무기고, 용에 관한 전설이 내려오는 용의 동굴이 있다. 
 바벨성의 대성당 안은 무척이나 화려하지만 아쉽게도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 있다. 경비요원들이 곳곳에 상주하고 있기 때문에 성당 내부 모습을 사진에 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 바벨성에서 내려다 본 비스다강의 모습

 

 

▲ 바벨성 안의 대성당 외관

 

 

 

▲ 접결실이 있는 궁궐의 외부 모습

 

▲ 접견실 내부의 모습

 

▲ 접견실 내부의 아담과 이브를 소재로 한 작품

 

 


4. 성모마리아 성당(St. Mary`s Basilica)

 

 구시가지 광장에 위치한 성모마리아 성당은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되기 전 대주교로 봉직했던 곳이다. 성당의 외관은 무척이나 특이하다. 두개의 서로 다른 모습의 첨탑이 자리잡고 있으며 각각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매 시각 정시마다 첨탑에서 헤이나우가 연주되는데 연주가 끝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중간에 끊긴다. 이는 예전에 타타르족의 침략을 알리려 헤이나우를 불던 중 타타르족의 화살을 맞아 숨진 병사를 추모하기 위한 것으로, 병사가 불던 소절까지만 헤이나우를 연주하는 것이다. 
 성모마리아 성당 내부에는 비스트보슈가 만든 성모마리아 제단이 있다. 12사도에 둘러싸여 성모마리아가 승천하는 순간을 나타내고 있으며 상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천사들과 함께 성모마리아를 천국으로 인도하려는 모습이 나타나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들로 화려하게 장식된 아름다운 성당을 찍고자하는 사람은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하며, 포토 티켓을 사지 않고 찍는다면 곳곳의 경비원들이 주의를 주고 티켓을 구매하기를 권하기 때문에 티켓을 안 사고 찍으려는 꼼수는 일찌감치 포기해야한다. 

 

▲ 성모마리아 성당의 외관

 

 

▲ 화려한 제단의 모습들

 

▲ 성모마리아 성당 내부 모습

 

 

 

 

 

 위 관광지 외에도 구시가지 광장의 야경은 너무나 아름답다. 곳곳의 노천 카페들과 중세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한 건물들의 모습은 크라쿠프의 매력을 더욱 배가 시킨다.

 

▲ 구시가 광장 속에 위치한 직물회관의 야경

 

▲ 구시가지 거리

 

 

 

 

 프라하-크라쿠프, 바르샤바-크라쿠프 등 다른 도시에서 크라쿠프를 오는 야간 열차, 버스 등 교통수단이 많다. 그러므로 동유럽을 여행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크라쿠프를 방문하여 직접 그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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