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달빛이 집집마다 드는 동네, 중계본동 104번지를 가다

작성일2010.12.08

이미지 갯수image 7

작성자 : 기자단

고등학교 시절의 반 이상을 한 걸음이 멀다 하고 학원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보낸 기억이 있다. 은행사거리는 노원구 내 학원가로 유명한 만큼 아파트 단지가 밀집되어 편의시설 또한 다양하게 갖춰져 있다. 이런 은행사거리에서 버스로 불과 5정거장 밖에 되지 않는 거리에 달동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작 며칠 전에 알게 되었다. 그곳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중계본동 104번지, 104마을이었다.

 

▲ 104마을 모습

 

더 이상 갈 곳도 없다는 듯 104마을은 마침 버스의 종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풍겨오는 향은 서울에서 맡은 시골 할머니 댁의 향처럼 오묘함을 지니고 있었다. 산의 경사를 억지로 깎아내지 않고 그 위에 한집 한집 소박하게 지어냈기 때문에 동네에 들어가기 전 도로에서도 동네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살짝 돌리면 빽빽한 아파트 단지가 보이는 이곳은 한국의 시대별 풍경을 전시해 놓은 박물관이었다. 중계본동 104번지는 1970년대 이후 멈춰버린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 104마을을 도는 연탄장수 

 

104마을에 들어서니 골목 곳곳마다 까만 속을 다 태워내고 희끗희끗한 연분홍빛을 발하는 연탄이 손님을 반겼다. 오늘날 이전보다 쓰임새가 줄어 슬슬 자취를 감추고 있는 LPG 가스통은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104마을에서 LPG 가스통이 갖는 의미는 더 발달된 집의 형태라 할 수 있을까.

 

                         ▲ 104마을 곳곳에 있는 연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104마을의 역사

 

중계본동 104번지의 역사는 1960년대 말 시작된다. 1967년 도심 불량주택과 청계천 정비사업으로 용산, 남대문, 청계천 일대가 개발되면서, 이곳에서 판잣집을 짓고 살던 주민들은 다른 터를 찾아야 했다. 철거민들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뿌리내리기로 결정한 곳은 주소가 104번지인 산기슭. 여기서 유래하여 오늘날 행정구역상 중계본동 30-3번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104마을로 불린다. 현재 1170동의 건물에 35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04마을이 서울이라는 한국 개발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 안에서 평균적인 발전속도와 그 발걸음을 맞추지 못한 데는 이유가 있다. 104마을은 1971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되어 대부분의 주택이 노후된 불량주택으로 정비가 매우 시급한 지역이었다. 하지만 주민들 간 개발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개발사업은 진전되지 못하였다. 그렇게 서울의 다른 지역들과 104마을의 차이는 작은 틈에서 시작해 그 폭이 빠른 속도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 104마을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단지   

 

한 도시 내 지역이라 하기엔 너무도 다른 104마을의 모습.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정부의 방안은 바로 재개발이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진통을 겪었던 104마을의 재개발은 지난 달 5월 재개발 설계안이 확정되면서 탄력을 얻기 시작하였다. 철거와 이주, 공사착공 등 단계를 거쳐 공사착공까지 약 3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측된다고 한다.

 

▲ 텅빈 집   

 

 

철거민만 두 번째… 104마을 주민들이 갈 곳은

 

104마을 가옥들의 노후 정도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다. 때문에 올 여름 이상적인 폭우 현상과 태풍 곤파스는 104마을 주민들의 몸과 마음 모두 힘들게 한 시기였다. 104마을 주민의 약 60%가 월 10~20만원의 사글세 세입자인데, 보통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집 상태에 대해 수리를 요청할 수 있다. 하지만 물이 새는 욕실로 수리를 요구하며 집주인과 티격태격하는 풍경을 104마을에선 거의 볼 수 없다. 그 이유는 의 입장인 집주인이 정 불편하면 나가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기 때문이다. 104마을 세입자 입장에선 재개발을 앞둔 마을을 떠나면 임대아파트 혜택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풍전등화와 같이 불안한 집에 몸을 의지하여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다.

 

▲ 104마을 골목  

 

104마을 주민들은 몇 십 년 전과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 인생에서 철거민만 두 번째인 것이다. 물론 임대아파트를 늘려 주민의 재정착률을 높이려는 정부차원의 대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104마을 주민들은 지금 당장 안전이 전혀 보장되지 않은 집에서 생활을 해나가고 있으며 적어도 수 개월은 더 이런 생활을 버텨내야 한다. 두 번째로 선택한 터마저 낯선 것들로 채워질 104마을 주민들에게 더 이상의 상처는 없길 바란다.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