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나르키소스의 반란, 나를 사랑한 2030

작성일2011.01.04

이미지 갯수image 6

작성자 : 기자단

 

 

나르시시즘은 ‘자기애(自己愛)’로 번역된다.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 속 나르키소스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르키소스는 님프인 에코의 사랑을 거절해 아프로디테의 벌을 받아 옹달샘에 빠져 죽는다. 그리고 나르키소스는 수선화로 변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이 나르키소스의 반란이 일어나고 있다. 그 중심은 바로 인터넷이다. 트위터, 블로그 등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증폭되며 자신의 매력을 한껏 뽐내고 있다. 요즘 나오는 신조어도 그 트렌드를 반영하고 있다. ‘건어물녀, 철벽녀, 초식남’ 등의 신조어는 바로 자기 정체성과 자기애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에 반해버린 현주소를 짚어보자.

 

 

자신의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셀카족’은 ‘족’이라는 의미가 사라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카메라를 자신에게 돌리고 있다. 셀카 얼짱 각도를 통해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자신이 직접 담는 것이다. 예전 겸손을 떨며 ‘저 그렇게 예쁘지 않아요’나 ‘그냥 평범해요’라는 말은 2030세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PR이 중요해지는 만큼 당당하게 자신의 매력을 말해야 한다.

 

대중가요 속에서도 나르키소스의 반란은 시작됐다. 연인과의 사랑과 이별, 그리고 쓰라린 아픔이 예전의 소재였다면 지금은 당당한 자신을 말하는 가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나도 어디서 꿀리진 않아’ (G-드래곤의 ‘하트브레이커’ 중),

‘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진 않아, 나는 예쁘니까’ (씨야의 ‘여성시대’ 중),

‘내가 정말 예뻐 그렇다는데,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좋아 좋아’ (f(x)의 ‘NU 예삐오’ 중)

‘두 눈을 깜박이며 살짝 미소 지으면 이젠 모든게 완벽하죠’ (카라의 ‘Pretty Girl’ 중)

 

젊은이들은 카메라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폰에서부터 똑딱이 카메라 등 어느 곳에서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그 중 자신을 찍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자신이 중심이라는 의식이 반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기가 중심에 선다는 것이 부담스럽기보단 오히려 반가운 일인 것이다. 김난도 서울대 교수는 ‘셀프-홀릭(self-holic)’으로 자기애가 강한 세대을 표현하며, “이들은 개인으로 자라난 첫 세대다. 형제가 적어 어릴 때부터 방을 혼자 썼고, 성인이 돼서도 하숙이나 룸메이트보다는 원룸을 선호한다. 또한 이들은 소비문화의 세례를 받은 행운아들이다. 핸드폰 등 개인화된 기기로 무장하고, 온라인 게임을 하며 혼자서 논다. 자기가 세상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나르시시즘은 어쩌면 어두운 세상의 단면을 그려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즉, 자신에게 당당해져야만 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젊은이들의 목을 조여 오는 취업난과 경제난에서 찾아오는 현실의 좌절감이 그것이다. 그 속에서 젊은이들은 자기애를 통해 이 상황을 뚫고 있는 것이다. 어두운 현실 속에서 좌절과 절망 속에 빠져 있기보단 그 반대 급부로 자신에게 당당함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액세서리와 의상, 그리고 타인과의 구별을 통해 자신의 차별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매장을 찾은 사람들은 물건을 사기 전에 ‘요즘 잘 나가는 물건이 뭐예요’라고 묻기 쉽다. 하지만 이젠 그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잘 나가는 물건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이것을 모두 갖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나만을 위한, 나만의 상품은 아닌 것이다. 예전 다른 사람들도 같은 옷이나 비슷한 스타일을 하고 있으면 안심을 했지만, 지금은 뭔가 불편함이 마음을 지배한다. 같기보단 달라야 한다는 의식이 생기고 있는 것. 그래서 다양한 브랜드와 수없이 쏟아지는 차별화된 상품들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의 나르키소스는 차별화를 통한 자기애의 구현을 원한다.

 

 

나르시시즘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것은 독일의 정신과 의사 네케가 1899년에 만든 말이다. 자신의 육체를 이성의 육체를 보듯 하고, 스스로를 애무함으로써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황홀함을 느끼는 것도 나르시시즘의 일종이다. 그 뒤 이 말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프로이트에 의해서다. 자기의 육체, 자아, 자기의 정신적 특징이 리비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쉽게 말해 자기 자신에게 리비도가 쏠려 있는 것이 나르시시즘인 것이다. 여기서 리비도는 라틴어로 욕망을 뜻하는 것으로, 성적인 욕구를 뜻하기도 한다.

 

초식남이 이성을 위해 자신을 꾸미고 가꾸기보단 자신의 만족을 위해 외모를 가꾸는 것도 나르시시즘인 것이다. 예전 세대에 있어 만족의 기준이 타인의 평가였다. 그땐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눈이 중요했다. 그에 반해 이제 만족의 기준은 자기 자신에게 맞춰져 있다. 타인의 눈을 아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에게로 그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성보단 개성이 더욱 중요해지는 것이다. 이 트렌드는 더욱 거세게 몰려 올 것으로 예상된다. 개인화된 전자 기기의 발달과 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진화, 그리고 그 속에 나를 드러내길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해당 콘텐츠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는 저작물로 영현대 저작권이 있습니다.
                                            해당 콘텐츠의 상업적 이용을 금지하며, 비영리 이용을 위해 퍼가실 경우 내용변경과 원저작자인 영현대 워터마크 표시 삭제는 금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