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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성곽이 선사하는 자연과 역사의 풍미

작성일2011.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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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조선왕조의 역사를 담고 있는 서울성곽. 태조는 즉위한 지 한 달도 안 돼 한양천도를 계획했다. 그리고 정도전이 수립한 도성축조 계획에 따라 서울성곽을 수축하기 시작했다. 본래 서울성곽은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을 잇는 공사로, 총 길이 59,500자(약 18.2km)였다. 당시 전국에서 11만 8천 명을 동원해 성곽의 대부분을 완공했다. 그 후 세종은 서울성곽을 전면 석성으로 수축하는 대대적인 보수 확장 사업을 벌였고, 전국에서 약 32만 명의 인부와 2,200명의 기술자를 동원해 완공했다. 당시 서울 인구가 약 10만 명인 것을 생각하면 대대적인 공사였으며, 사망자 또한 872명에 달했다.

 

 

서울성곽은 조선왕조의 시작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 뒤 각종 보수 공사를 통해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다. 태조 때에 지어진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어 쌓아 올렸으며, 세종 때는 장방형 돌을 기본으로 사이사이에 잔돌을 섞어 쌓았으며, 숙종 때는 석재를 정사각형으로 규격화하여 튼튼하게 쌓아 올렸다. 즉 시대를 거치며 석재 기술이 발달함을 알 수 있다.

 

 

 

서울성곽 탐방로에는 숙정문이 남아 있다. 남대문인 숭례문, 동대문인 흥인지문은 익히 들은 이름일 것이다. 숙정문은 그 4대문 중 하나인 북대문이다. 1968년 1·12 사태 이후 북악산 일대가 군사지역으로 일반 시민들에게 통제되며 북대문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2007년 4월 5일 북악산 일대 및 서울성곽이 탐방로로 개방되며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조선시대에 숙정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통로로 사용하기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4대문의 격식을 차리기 위해 지어졌기 때문이다. 가뭄이 심할 때는 남쪽은 양, 북쪽음 음이라는 풍수지리에 따라 남대문을 닫고 북대문을 열어두었다고 한다. 그만큼 북악산은 음기가 강한 곳이기 때문에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를 보게 되면 “숙정문을 열어놓으면 장안 여자들이 음란해지므로 항시 문을 닫아두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조선왕조의 역사가 서려 있는 서울성곽을 눈이 쌓여 있는 겨울에 찾아갔다. 숙정문에서부터 창의문까지 걷는 길은 대략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가 걸린다. 어찌 보면 북악산을 등산하는 것이라 생각하면 짧은 구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산은 산인지라 꽤나 가파른 길을 걸어야 했다. 조용히 눈 쌓인 성곽을 따라 걷다보니 서울의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숙정문에서는 삼청각과 함께 성북동 일대가 눈에 들어오게 되고, 좀 더 길을 걷다보면 광화문, 경복궁 등 종로 일대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다. 그리고 북악산 아래로는 바로 청와대와 연결된다. 그래서 보안상 펜스가 쳐져 적외선 감지기가 설치돼 있다. 종종 급한 용변으로 그 펜스를 넘는 탐방객이 있는 데 그 곳에서 감시 역할을 맡고 있는 군인들에게 잡히니 탐방객은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본인도 군복무 시절 서울성곽을 지키는 근무를 했기 때문에 이곳에 대해 다른 사람보다는 잘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추운 날씨였지만 설경이 참 좋다. 하지만 눈 내리는 날은 찾지 않았으면 한다. 길이 가파르기 때문에 넘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눈이 그치고 그 다음 날 찾는 것이 좋다.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길을 잘 정비해놓기 때문에 위험이 적고, 서울 전경과 함께 서울에서 눈이 쌓인 산을 볼 수 있는 찬스다.

 

 

 

 

 

 

서울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잘 조성된 공원이더라도 자연보다는 사람의 손때가 묻었다는 생각을 버리기 쉽지 않다. 또한 등산을 하며 역사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은 서울성곽 탐방로가 갖고 있는 매력이다. 서울성곽 탐방로 중간에 촛대바위를 볼 수 있다. 이는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의 정기를 끊는다는 생각으로 바위에 굵은 말뚝을 박아놓은 것이다. 이 모습이 마치 촛대와 같다고 하여 촛대바위라고 명명됐다. 조선왕조에서부터 일제강점기, 그리고 1·21사태로 군사지역으로 통제됐을 당시까지의 역사가 묻어있다.

 

 

오히려 군사지역으로 통제됐기 때문에 북악산 그대로의 자연이 남아 있게 됐다. 그리고 개방된 지금,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자연과 역사를 한 곳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1·21사태 당시 총격전을 느낄 수 있는 소나무가 그곳에 탐방로 상에 볼 수 있다.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들이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하여 바로 이 북악산에서 우리 군경과 치열한 총격전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그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소나무. 이 소나무는 그 이후 1·21사태 소나무라고 불린다.

 

 

 

서울성곽 위로 눈이 내려 탐방객을 찾은 사람들의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길게 늘어진 성곽 위로 눈이 내려 마치 길을 만들어 놓은 듯했다. 겨울의 서울성곽 매력이 바로 이런 점이라면 여름의 매력은 시원함이다. 북악산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여름에는 마음까지 뻥 뚫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본인이 여름에 이곳에서 매일 같이 근무했기 때문에 믿어도 된다. 여름에 찾더라도 천천히 풍경을 구경하다보면 시원한 바람 때문에 더위를 잊게 된다.

 

 

서울성곽 탐방로의 매력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탐방로로 들어가는 입구 중 숙정문 탐방로 입구 표찰을 받는 곳에서 북악 스카이 웨이에 위치한 팔각정으로 가는 길이 있다. 군사 초소가 남아 있는 데, 2007년 북악산이 개방되기 전까지 실제로 군 초소로 경계 근무를 서던 곳이다. 이 길도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이 되었는데 길을 따라 가파른 계단을 오르다보면 팔각정에 도착하게 된다. 팔각정은 야경이 매우 뛰어나다. 서울의 야경을 한 눈에 볼 수가 있는 곳이다. 동대문, 종로, 성북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참고: 서울성곽에 탐방에 대해 자세한 사항을 알고 싶다면 북악 서울성곽 홈페이지(http://www.bukak.or.kr)를 참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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