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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정원을 산책하다, 월미전통정원

작성일2011.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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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자연환경은 언제나 인간 생활 바로 옆에서 스스럼없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간단하게는 최근의 폭설이나 극한의 추위, 크게 보아서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도 그들의 영향력을 찾아볼 수 있다. 대체적으로 우울한 날씨에 척박한 토지 속 생존을 위협받던 지역인 독일은 공생을 목표로 기계주의가 발달했다. 세계적인 명차 BMW, 벤츠를 생산해 낸 배경에는 그러한 자연환경이 끊임없이 존재해 왔었다. 사람 살기에 좋은 기후에 많은 바다로 둘러싸여있고 농업 기반도 확고한 프랑스에서 화려한 고딕이나 로코코 양식이 꽃을 피운것도 당연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떨까 이미 수업시간에서도 익히 들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4계절이 뚜렷하며 산수가 수려한 경관을 이루어 뛰어난 자연환경을 품에 안고 있는 땅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그렇기에 자연과 대적하려 한 것이 아니라 자연과 친하고자 하여 언제나 자연 속에 머물러 살아왔다. 풍수지리, 자연숭배사상이 그러한 사고방식을 대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선조의 모습을 우리는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부석사와 같은 건물을 보면 그러한 모습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선조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의 조화를 통해 내세를 표현한 구조는 월등히 앞선 사상들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곳에서 선조들의 자연친화적 사고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건물과 밀접한 공간, 정원이다.

 

 

▲ 월미 전통정원의 지도.

 우리의 전통공원을 재현해 놓은 곳이 있다. 바로 월미도에 있는 월미전통공원이 그 곳이다. 크게 궁궐정원, 별서정원(농사를 위해 따로 지은 집), 민가정원으로 이루어져 전통정원 양식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 양진당의 구조.

 

 민가정원을 대표하는 곳으로 하회마을의 양진당을 이 곳에 재현해 놓았다. 양진당 내부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높은 집구조이다. 거기에 ‘ㅁ`자 형태로 구성된 건물구조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높은 집구조, 즉 고상형 구조는 습한 기후, 많은 강수량 등의 자연환경 때문이다. 실제로 하회마을에 있는 양진당은 홍수로 사랑채가 무너지기도 했다고 한다(단순히 남방 고상구조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ㅁ`자형 구조는 추운 고위도 지방의 특색으로 열 손실을 최대한으로 막기 위한 방책이다.

 

 

▲ 양진당의 구조.

 

 양진당은 그 외에도 자연적인 요소들을 포함하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양진당은 마루 밑이 땅에서 조금 떨어져있다. 그 붕 뜬 공간으로는 바람이 지나다녀 무더운 여름을 더 시원하게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구조를 양청형이라 하며 이 구조를 과거 왕궁의 침전으로 사용했었다는 태조실록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저 좁은 길 하나를 내는 것만으로 큰 효과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 양진당의 처마부분.

 

 양진당은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바로 처마부분과 기둥부분이다. 안타깝게도 월미전통공원에서는 이 기둥부분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조금은 아쉽지만 처마부분을 보면 양진당 전체에 흐르는 사상을 알 수 있다. 양진당은 겹처마로 되어 있는데 이 겹처마를 잘 살펴보면 안 쪽은 둥그런 서까래로 되어 있는데 바깥쪽은 네모난 서까래로 되어 있다. 하나로 통일하지 않으면 공사비용과 노동력이 더 많이 든다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왜 이렇게 해 놓았을까 하회마을의 양진당은 기둥 또한 이런 형식이다. 기둥은 하나의 나무로 이루어잔 통자 기둥인데 툇마루 아래로는 네모난 기둥인데 그 위로는 둥근 원통형 기둥이다. 하나의 나무임에도 위 아래의 모양새를 달리 깎은 이유가 무엇일까 흔히들 하는 해석으로는 ‘네모에서 원이 나왔다’ 는 방출원(方出圓)과 ‘땅은 네모지고 하늘은 둥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즉 이러한 설들은 결국 음양오행과 상통하는 것으로 음양이 조화를 이루어 우주만물을 만들어 낸다는 사상을 잘 표현한 것이다.

 

 

▲ 높이가 다른 지붕끼리 곡선처리로 우아하게 연결된 모습.

 

 또한 실제 양진당은 배산임수의 길지라 불리는 하회마을에 입지하고 있다. 선조들의 자연친화적이며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도 조선시대 사상을 잘 반영한 예라 할 수 있다.

 

 

 

▲ 월미전통정원 곳곳에 마련되어 있는 전통놀이기구들.

 

 월미전통정원은 양진당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마당에 굴렁쇠, 널뛰기, 윷놀이 등을 마련해 전통놀이를 즐기도록 시설을 잘 준비해 두고 있었다. 또한 내부로 들어가 그 구조를 살펴볼 수 있게 해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이끌어내고 있었다.

 

 

▲ 민가의 전경과 그 앞에 있는 농업체험장.

 

 그 외에도 일반 민가를 꾸며놓은 곳도 있다. 바로 앞은 경작지(농업체험장)이고 집 한 켠에는 우물을, 그리고 그 뒤 볕이 잘 드는 곳에는 항아리들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마루에는 맷돌 등의 생활도구가 자리잡고 있었고 방 안에서는 벼를 깔아 놓았다. 지게 등의 생활도구도 직접 메 볼 수 있어 실제 당시의 민가에 방문한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봄이 오고 여름이 지나 가을이 되면 과연 이 민가는 어떤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을지 궁금해진다.

 

 

▲ 부용지와 물고기 모양.

 

 궁궐정원으로는 창덕궁의 부용지가 있다. 크고 네모난 연못 한 가운데 동그란 섬을 만들어 그 옆에 부용정을 만들어 놓았다. 물의 흐름을 따라 만들어 놓은 네모난 연못 위에 만들어진 동그란 섬은 ‘음양오행설’ 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었다. 거기에 연못 가장자리에 있는 물고기는 신선사상에 비유한 것이라는 해석이 있기도 하고 물과 물고기의 관계를 임금과 신하의 관계에 빗대었다는 해석이 있기도 하다. 결국 이 부용지는 군신의 화합과 땅과 하늘, 그리고 인간의 조화, 즉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사상이 부용지에 녹아있는 것이다.

 

 

 

▲ 애련지.

 

  부용지와 함께 궁궐정원의 미로 손꼽히는 것은 애련지일 것이다. 부드럽게 다듬어져 담장과 조화를 이루는 불로문을 통과하면 만날 수 있는 애련지는 꽃이 만개한 계절에 창덕궁에 직접 찾아가 관람하는 것을 추천한다. 흐드러지게 피어난 연꽃과 연못을 감싸는 우거진 숲의 만남은 전통정원 특유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이 머무르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창덕궁 후원에 흐르는 전체적인 분위기는 자연에 바탕을 두고 있다. 비록 군신의 화합과 같은 인간적인 사상도 숨어 있지만 결국은 그러한 사상을 뛰어넘어 자연의 순리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자연 속 하나의 존재가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창덕궁 후원이 속해있는 분위기일 것이다.

 

 

▲ 풍기대와 아미산굴뚝.

 

 그 외에도 궁궐정원의 요소로 풍기대, 굴뚝 등이 있다. 풍기대는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측정할 수 있도록 깃발을 세우는 대이다. 아래 기둥으로는 배수구를 뚫어 물이 차 정확한 측정을 방해하지 않도록 했다. 또한 이 전통정원에는 경복궁의 아미산굴뚝을 재현시켜 놓았다. ‘아미산’ 이란 원래 중국의 4대 불교 성지이나 경회루 연못을 파고 남은 흙들로 교태전 뒤뜰에 인공산을 만들어 거기에 ‘아미산’ 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산은 불교사상을 담았을 뿐만 아니라 백두대간에서 흘러나온 맥의 흐름을 경복궁까지 이어가겠다는 철학까지 담고 있다. 그러한 아미산 위에 있는 것이 ‘아미산 굴뚝’ 이다. 교태전을 따뜻하게 덥힌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지어놓은 굴뚝으로 기능적으로나 미적으로나 흠잡을 곳이 없다. 굴뚝에는 십장생부터 사군자, 부귀 등의 무늬를 입혀 여러 가지 소망을 나타내고 있다. 즉, 백두대간의 맥 위에서 개인의 평화부터 시작해 국익을 위한 소망까지 빌고 있는 것이다.

 

 

▲국담원.

 

 별서정원으로는 소쇄정원, 서석지, 국담원을 만날 수 있다. 아직 미완성된 별서정원이 몇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국담원은 비교적 완성도가 높았다. 18세기 초 관군이 의병장 주재성의 공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고 알려지는 국담원은 그 크기부터 주재성에 대한 존경심을 알 수 있었다. 부용지나 애련지의 크기와 비슷한 정도의 연못이 오로지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건 의병장으로서의 주재성이 얼마나 훌륭한 인물이었는가를 가늠케 한다. 딱 한 사람을 위해 만들어 진 듯 하환정은 아담한 크기였다. 연못쪽으로 나 있는 단은 광경을 즐기며 여유를 즐기기에 알맞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렇듯 전통정원에는 조형적인 아름다움 뿐만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하려는 선조들의 사상이 숨어져 있다. 단순하면서도 아름답고 또 알고보면 그 의미마저 깊은 조선시대 정원. 비록 아직 채 완성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지만 전국에 산재해있는 전통정원을 한데 모아 그 숨어있는 의미를 다시금 새기는 월미전통공원은 한 번쯤 가 볼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전통과는 빠른 속도로 이별하고 있는 이 시대에 살면서 우리가 과거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많을까 답은 ‘그리 많지 않다’ 이다. 사람들에게는 자연의 순리를 존중할 줄 알며 그 속에 동화되어 가는 지혜를 빌릴 수 있는 과거로의 여행이 필요하다. 그러한 순간을 여유롭고도 말 그대로 ‘자연스럽게’ 알아가는 것에 정원을 산책하는 것 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본다. 여유로운 어느 날의 한 때에 딱 알맞은 곳으로의 산책으로 월미전통공원이 딱 알맞지 않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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