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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을 걷다.

작성일2011.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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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궁궐’, 역사와 전통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거나, 데이트 코스이거나, 혹은 그저 시간을 때우기 좋은 한적한 장소. 서울에 위치한 조선왕조의 다섯 궁궐의 현 주소이다. 그러나 서울의 궁궐은 한때 조선왕조의 생활의 공간이었다.

 

 대한민국에서 높은 건물이 가장 많은 도시, 서울. 빽빽한 빌딩숲이 도심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도시는 600여 년 전에 개국한 조선왕조가 서울을 수도로 정한 이후, 지금까지 6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리나라의 수도로써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긴 시간 중에 지금으로부터 채 100년도 되지 않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서울에는 조선의 왕가가 살아가고 있었다. 서울 안에서 전통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다양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잘 보전된 우리의 전통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은 바로 궁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서울에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경희궁 등 조선시대의 다섯 궁궐이 자리 잡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위엄이 있고 절제된 아름다움은 우리 궁궐들에서 느낄 수 있는 아름다움이다. 궁궐은 그저 ‘옛 조선 왕조의 거처’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이루어졌던 우리 역사의 수많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역사의 공간으로, 그리고 조선왕조의 생활이 담긴 삶의 공간이다.

 

 

 

 

 

 서울의 다섯 궁궐 중 조선말기 개화의 바람과 고종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궁궐이 덕수궁이다. 지금은 ‘덕수궁 돌담길’이 유명해져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도 자리 잡고 있는 공간이지만 덕수궁역시 조선의 다양한 이야기가 담긴 공간이다. 현재 시청역 부근에 자리 잡고 있는 덕수궁은 서울의 도심중의 도심에 위치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바쁜 하루를 보내는 공간 안에 가장 여유롭고도 가장 치열했던 공간인 덕수궁이 위치하고 있다.

 

 

 

 

 덕수궁은 원래는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던 곳이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궁궐이 모두 불타버려 없었기 때문에 임시로 선조의 거처로 정하고 궁궐로 사용되었다. 광해군 시절부터는 ‘경운궁’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지만 순종이 고종에게 장수를 비는 뜻으로 지어올린 ‘덕수’라는 궁호가 그대로 궁궐의 이름이 되어 현재까지 ‘덕수궁’으로 불리고 있다. 이름에서부터 느낄 수 있듯이 덕수궁은 고종의 이야기가 가득한 궁궐이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에 오른 이후 세상을 뜰 때까지 머물렀던 곳이다. 덕수궁은 외전과 내전, 그리고 서양식 건물이 들어서있는 곳으로 나눌 수 있는데, 외전에는 궁궐의 정전인 ‘중화전’과 고종의 편전인 ‘즉조당’과 ‘석어당’, ‘준명당’ 등이 있고, 내전에는 고종의 침전이자 고종이 승하한 장소이기도 한 ‘함녕전’과 외국 사신을 접견했던 ‘덕흥전’이 있다. 그리고 개화기 서양의 건축양식을 받아들여 지은 ‘석조전’과 커피를 즐겨 마셨다는 ‘정관헌’등도 위치하고 있다. 특히 ‘석조전’이 서양식 건물로만 지어진 건물이라면 ‘정관헌’은 서양식과 전통양식을 섞어서 지은 전각으로 독특한 모습과 아름다움이 있다.

 

 

 

 

 덕수궁을 관람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먼저 덕수궁의 수문장교대식이 몇 시에 시작하는지를 알아보고 가는 것이 좋다. 덕수궁의 유명한 볼거리 중 하나인 덕수궁 수문장교대식은 경복궁의 수문장교대식에 비하면 그 규모가 작지만 볼거리는 충분하다. 덕수궁의 수문장교대식은 ‘대한문’에서 하루 세 번 오전 11시, 오후 2시, 오후 3시 30분에 진행되는데, 시간을 조금 넉넉히 잡고 가는 것이 좋다. 매번 정확한 시간에 진행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도 3시 30분에 정확히 맞춰가려다 조금 일찍 도착하였는데, 만약 정시에 도착했다면 짧은 수문장교대식을 중간부터 보게 되었을 것이다. 수문장교대식은 한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어와 중국어로 설명을 하며 진행된다. 여유롭고 조용한 덕수궁에서 가장 활기찬 모습이니만큼 덕수궁에 간다면 꼭 보아야 할 것 중에 하나라고 하겠다.

 

 

 

 

 수문장교대식을 보았다면 이제 덕수궁 내부로 들어갈 시간이다. 덕수궁의 입장료는 성인기준 1,000원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다. 경복궁과 창덕궁의 입장료가 3,000원인 것에 비하면 1/3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관람이 가능한 것이다. 만약 다른 궁궐들과 종묘도 관람할 생각이 있다면 통합관람권(10,000원)을 구입하는 것도 좋다.

 

 

 

 

 덕수궁의 동문이면서 정문인 ‘대한문’으로 들어가면 작은 다리를 건너 소나무가 줄지어 서있는 길이 나온다. 그 길을 따라 들어가다 보면 오른편에 내전이 보인다. 내전으로 들어가면 바로 고종의 침전이었던 ‘함녕전’과 귀빈을 접대했던 `덕홍전`이 있다.

 

 

 

 

 

 

 ‘함녕전’의 모습을 돌아본 뒤 그 뒤쪽으로 올라가면 서양과 전통의 건축양식이 조화를 이루는 독특한 전각인 ‘정관헌’이 소나무 가지사이로 보인다. ‘정관헌’은 현재 거의 유일하게 건물 내부에 들어가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건물인데, 오후 4시까지로 그 시간이 정해져있기 때문에 내부에 들어가서 실내를 보고 싶다면 서둘러서 관람하는 것이 좋다. 그렇지만 밖에서도 충분히 내부가 보이는 3면이 뚫려있는 형식이므로 오후 4시를 넘었다고 하더라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정관헌’을 다 보았다면 그 왼편의 작은 문을 통과해 외전으로 갈 수 있다. 이 작은 문을 ‘유현문’이라고 하는데, 이 문이 있는 담은 덕수궁 안의 다른 담들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담을 ‘꽃담’이라고 칭한다고 한다. ‘유현문’을 지나면 ‘석어당’이 있다. ‘석어당’은 ‘석조전’을 제외하고 덕수궁 안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층 건물이다. 특이하게도 ‘석어당’에는 현판이 2개가 걸려있다. 이 중 1층에 걸린 현판은 고종이 직접 쓴 현판이라고 한다.

 

 

 

 

 ‘석어당’을 지나면 ‘즉조당’과 ‘준명당’이 있고, 그 맞은편에는 덕수궁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중화전’이 있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으로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부터 정전으로 사용되었다. 고종은 ‘중화전’에 특히 신경을 썼다고 하는데, 대한제국의 위상이 깃들도록 용 문양을 새기고 창호를 황색으로 칠한 것이 그 예이다. 그래서인지 ‘중화전’은 덕수궁 내에서 가장 화려한 건물이다.

 

 

 

‘중화전’을 마주보고 왼쪽으로 가면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이 있지만, 현재는 보수공사중이라 직접 볼 수는 없었다. 다만 공사 중임을 알리는 판넬 너머로 보이는 하얀색 건물이 덕수궁안의 전통양식으로 지어진 건물과 다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묘하게 어울린다는 느낌이 든다.

덕수궁 안을 모두 보았다면 이제 밖으로 나와 주변을 걸어보는 것도 좋다. ‘대한문’으로 나와 왼편의 골목으로 꺾어 들어가면 그 유명한 ‘덕수궁 돌담길’이 나온다. ‘정동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은 커플이 함께 걸으면 헤어진다는 속설로도 유명한길이다. 단풍이 물든 가을에 특히 예쁜 이 길은 덕수궁을 찾는 이들이라면 한번쯤 꼭 걸어볼 길이다.

 

 

 

 

 전통과 서양의 모습이 섞여있는 덕수궁. 오늘은 시간을 내서 아름다운 덕수궁을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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