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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를 통해 알아보는 한국 금속공예의 아름다움

작성일2011.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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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기자단

 

복식은 그 나라의 문화와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장신구에 쓰이는 재료와 기법은 신분을 넘어서 그 나라의 경제, 예술적 수준까지 짐작하게 한다. 여러 왕조시대를 거치며 선조들이 남긴, 예술적 경지에 이른 이 ‘보물’들은 후손인 우리에게도 감명 깊게 다가온다. 단순한 신분의 표식을 넘어서 깊은 아름다움과 유구한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우리 역사의 장신구를 통해 한국 금속공예의 아름다움에 대해 알아보자.


 

먼저 지금의 장신구, 액세서리와의 개념과는 달리 고대 국가의 장신구 개념은 ‘신분 표식’의 의미가 강했다. 부와 힘을 상징하는 동시에 의식을 위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장신구란 왕실의 소유였다. 특히 금, 은 세공이 발달한 삼국시대는 더욱 그랬다. 그렇기 때문에 삼국시대의 장신구는 특히 기법과 세공이 정교하고 세련되어 졌으며 이를 통해 삼국시대의 정교한 공예문화를 잘 알 수 있다.


금속공예품은 열을 가하면 녹고 두드리면 펴지며 잡아당기면늘어나는 금속의 특성을 이용하여 만들어진다. 금속 공예품을 만드는 방법은 형태를 만드는 기법과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으로 나뉜다.


형태를 만드는 기법


주조 - 열을 가하여 녹인 쇳물을 거푸집에 부어 형태를 만드는 방법이다. 청동기 시대에 시작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크고 정교한 형태의 향로와 불상을 만들 정도로 발전하였다.


두드림 - 금속을 두들기고 펴서 형태를 만드는 방법으로 삼국시대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활용되었다.


무늬를 표현하는 기법


낱알 장식 기법 (누금세공) - , , 구리 등의 금속으로 가는 실을 만들어 그 실을 토막을 내어 알갱이로 만든 후 표면에 붙인다. 이러한 누금세공 유물은 고도의 기술을 필요 하기 때문에 공예적, 미적 가치가 높다.


타출기법 - 타출기법은 금속의 늘어남을 이용하여 금속 판을 두들기거나 새김으로써 금속에 입체적인 문양을 표현하는 방법이다. 이는 입체적이고 섬세한 형태 표현을 할 수 있다. 선새김, 맞새김, 돋을새김, 구슬무늬 새김, 무늬박이 기법 등이 있다.

 

<귀걸이>


귀걸이는 장신구 중에서도 가장 섬세한 기술을 요구한다. 각 국의 이식, 즉 귀걸이는 각종 새김, 세공 등 조소적인 요소뿐만 아니라 금, , 옥 등 사용된 재료에서도 조금씩의 차이를 보인다.

고구려는 검소하고 소탈한 복식문화에 따른 듯 간결한 장식의 장신구가 출토된다. 백제의 장신구는 대체로 섬세하고 부드러운 세공기법, 세밀하고 정교한 문양을 사용하고 있으며 양식도 다양하다. 이러한 백제의 장신구는 신라, 중국 요서지역, 일본에도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특히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귀걸이는 고리, 중간식, 수하식을 갖추어 우수한 세공기술을 보여주고 있다. 재료 역시 금과 함께 옥이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신라시대는 다른 왕조보다 유물의 수와 형태가 다양하다. 그만큼 이식, 장신구를 지배계층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었으며 기술도 우수했음을 알 수 있다. 중심고리의 형태에 따라 굵은 고리와 가는 고리의 귀걸이가 있다.


- 고구려

 


굵고 둥근 고리 아래의 노는 고리와 둥근 샛장식, 그리고 원추형의 드리개를 땜질하여 연결해 고정시킨 전형적인 고구려 귀걸이다. 위쪽의 굵은 고리는 속이 비었다. 노는 고리와 드리개에는 금판을 오려붙여 돌기를 만들고, 그 주변에 금알갱이를 붙여 인동무늬와 다섯 개의 꽃무늬를 표현하였다.


- 백제

 


가운데가 뚫어진 원통형에 누금세공을 하고 그 끝에 심엽형을 달았으며, 큰 심엽형 앞뒤에 다시 작은 심엽형 금판을 달았다. 긴 내림장식은 누금세공이 된 구슬 모양 5개를 연결하고 끝에는 금모자를 씌운 비취곡옥 1개를 달았다. 왕비의 금귀걸이와는 다른, 매우 호사스러운 형식을 보여준다


 

- 가야


귀걸이는 고리와 연결장식, 드리개로 구성되며 가느다란 고리가 특징이다. 연결장식은 공 모양과 사슬 형태로 이은 것이 있고, 드리개는 나뭇잎 모양 등이 있다.


- 신라

 


 

커다란 굵은 고리 밑에 타원형의 중간 고리를 달아 아래 장식들과 연결되어있다. 중간부분은 작은 고리를 중심으로 아래 위에 고리를 여러 개씩 연결하여, 전체적으로 주판알같이 만들고 상·하를 연결시켰다. 주판알같은 고리에는 작은 나뭇잎 모양의 금판을 금줄로 꼬아서 2단으로 달았다. 귀걸이 중심부 밑에는 펜촉 모양의 커다란 장식을 달았다.


<목걸이>


고대 국가의 장신구는 금속, , 유리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하였다. 금과 은 등 금속은 상위계층이 사용하여 각종 세공장식을 더한 화려한 것들이 많다. 옥 역시 귀히 여겨졌기 때문에 상위 계층이 사용하였다. 그중 곱은 모양의 옥을 사용한 장식이 많은데 이것은 일반적인 장식의 형태로 백제, 신라, 가야 등 많은 국가의 장신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곱은옥은 하늘의 달, 생명의 근원인 태아의 모습을 본뜬 것으로 신라에서 가장 많이 발견된다.

재료는 청옥, 자마노, 수정, 호박, 벽옥 등이 사용되었으며 형태는 편구형 관형, 대추형, 모난 주판알형 등 여러가지 형태를 보인다.

 

백제 / 무령왕비 금목걸이 - 백제, 충남 공주시 무령왕릉

 


활 모양으로 약간 휘어진 육각의 금막대를 끝으로 갈수록 가늘게 하여 고리를 만들고 다른 것과 연결시켰다. 고리를 만들고 남은 부분을 짧은 목걸이의 경우 10∼11, 긴 목걸이는 6∼8회 감아서 풀리지 않게 하였다. 오늘날 보기에도 간결하고 세련된 형태이다.


 

신라

 

 


 

(왼쪽) 목걸이 - 경북 경주 황남대총

 

금실을 꼬아서 만든 금 사슬 4줄과 속이 빈 금 구슬 3개를 교대로 연결하고, 늘어지

는 곳에는 금으로 만든 굽은 옥을 달았다. 경주지역 신라의 무덤에서 발견되는 대부분의 목걸이가 푸른빛의 옥을 사용한데 반하여 전체를 금으로 만든 특이한 목걸이이다. 금 사슬, 금 구슬, 굽은 옥의 비례와 전체적인 크기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우아하고 세련된 멋을 풍기고 있다.


(오른쪽) 목걸이 - 경북 경주 금령총


고신라시대의 목걸이로, 금고리를 여러 개 연결하여 속이 빈 구형을 만들고, 심엽형의 금판을 금줄로 연결하여 장식한 것을 44개 연결한 다음, 그 끝에 비취 곱은옥을 달았다. 화려한 장식을 통해 신라의 금세공 수준이 높았음을 보여준다.


<구슬 목걸이> 

 

위와 같은 금속 목걸이 뿐만 아니라 유리 목걸이도 많이 보여지고 있다. 유리는 옥보다 가공, 제작이 쉬웠기 때문에 수정, 마노, 경옥 등의 대용품으로 사용되었다. 유리구슬 장신구는 다양한 계층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는데 이를 보아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하던 장신구의 종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유리의 종류, 색의 조합 등을 통해 사회적 신분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유리가 옥의 대용으로 사용된 만큼 색이나 형태에 있어서도 옥과 비슷한 옥색 계열이 선호되었기 때문이다.

구슬목걸이는 주로 백제, 신라, 가야 등 남부지방의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백제 / 유리 목걸이

 

 

 

신라 / 유리 목걸이 - 경북 경주 금령총

 

 


 

삼한(변한) / 목걸이 - 경남 김해 양동리 무덤

 


수정을 여러 면으로 다듬은 구슬과 곱은옥을 꿰어 만든 목걸이이다. 유리, 수정, 마노, 호박 등으로 다양한 형태의 구슬을 만들었다.

 

- 유리 구슬의 제조

기원전 2세기 초의 충남 부여 합송리 널무덤에서 유리 대롱옥이 출토된 것을 보아 유리 구슬의 사용은 상당히 오래 전 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유리 구슬은 주로 봉에 유리용액을 감아 늘려서 자르는 방법으로 만들었지만, 삼한 이후에는 거푸집을 이용하였다.


거푸집 - 삼한(마한), 경기 하남 미사리 집터


유리구슬을 만드는 거푸집으로 수십개 내지 수백개의 작은 구멍이 뚫려 있다. 이 구멍에 가는 심을 끼우고 용액을 부어 구멍이 있는 구슬을 만든다.


<팔찌>


백제 / 금제 팔찌 - 충남 공주 무령왕릉

 


무령왕비의 금제 팔찌는 금으로 만든 봉을 원형으로 휘어서 만들었으며, 크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양끝이 약간 벌어진 형태이다. 내면은 매끈하게 처리되었으며, 외면은 ‘V’자형의 홈을 파서 톱날 모양으로 장식하였다.

 

신라 / 팔찌

 


 

가야 / 팔찌

 

 

<관>


관은 가장 상징적인 신분 표식이었다. 각국은 모두 다른 형태의 관을 사용하였으며 신분에 따라서도 형태, 재료 등 다른 관을 착용하였다. 이러한 관과 관 꾸미개들은 고대국가 지배 계층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으며 동시에 가장 화려한 금속 세공 기술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국보이기도 하다.

 

고구려 / 불꽃 맞새김무늬 관 - 평양시 대성구역

 


인동무늬를 맞새김한 테두리 위에 아홉 개의 불꽃무늬를 세워 장식하였으며, 테두리의 양쪽에는 드리개 장식을 늘어뜨렸다.

 

백제 / 관 꾸미개 - 백제 6세기, 충청남도 공주시 무령왕릉

 


무령왕비 관의 좌우에 꽃은 꾸미개로 얇은 금판을 뚫어 무늬를 새긴 것이다. 중앙의 꽃병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연꽃잎들이 그 위로는 넝쿨이 펼쳐진 모습이다.

 

신라 / 금관, 금허리띠 - 경북 경주 황남대총

 


금관은 나무, 사슴뿔, 새를 상징하는 형태를 지닌다. 각각 나무는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존재로 왕을 상징하며, 사슴뿔은 시베리아 지역의 사용하는 모자에 등장하는 요소로 쓰인다. 곱은 옥과 달개로 장식되어 있다.

허리띠는 가죽 허리띠를 장식하였던 금속의 띠꾸미개만 남아있는 것이다. 드리개에는 물고기 모양, 주머니 모양, 족집게, 곱은 옥 등이 달려있는데 고대 북방유목민족들이 생활에 필요한 작은 도구들을 허리에 찼던 풍습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있다.

 

가야 / 금동관 - 경북 고령 지산리 무덤

 

 

가야의 관은 관테와 풀꽃모양 세움장식이 있는 형태를 지닌다. 관테의 위아래에는 점무늬와 점줄문살무늬가 새겨져 있고 둥근 달개가 달리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관의 외관은 신라의 영향을 받은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경북 고령의 지산리 무덤에서 발견된 금동관의 형태는 무늬가 없는 테두리에 세잎무늬를 새긴 모양의 관 형태를 띠고 있으며 맨 윗부분에 금동봉이 있는 국내 유일의 특이한 형태이다.


 

더욱 많은 종류의 유물이 있지만 분량 상 모두 소개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장신구마다 각국, 지역에 따른 다양한 디자인과 소재를 보이고 있어 당시의 기술력을 엿볼 수 있다. 유물에 대한 사진과 설명을 통해 접하는 것 역시 좋은 공부가 되겠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유물과 직접 만나는 것이다. 선조들이 남긴 이 보물을 직접 보고 느끼며 살아 숨쉬고 있는 역사의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설명인용 :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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